2부_04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

by melina

베레시트가 지금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특수 센서 개발이 결정적이었다. 신체를 아주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지렛대 효과처럼 아바타의 움직임이 증폭되어 구현되는 방식이었다. 현실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베레시트에서는 비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센서와 디바이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기꺼이 구매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어떤 디바이스 라인은 고급 외제차 값을 훌쩍 넘기도 했다. 자동차의 등장이 이동 거리를 늘려 사람들의 세계를 확장해 주었듯, 베레시트는 더 이상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세계의 확장이며 존재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 트윈의 범위가 전 지구와 대기권 공간까지 확장되자 사람들은 가만히 앉은자리에서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소원이던 세계여행을 언제든 떠날 수 있었고, 신체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공간을 유영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현실보다 저렴하고, 안전하고, 보장되어 있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 베레시트는 그렇게 또 다른 현실이 되어갔다. 이제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민은 로비 전면을 뒤덮고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디지털 유화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반고흐 풍의 과감한 색채와 붓터치가 넓은 화면 안에서 살아있는 듯 춤을 추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움직이고 있었다. 로어에서 개발한 AI가 ‘그려낸’ 그림이었지, 아마. 어쩐지 인간이 한참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인정하기는 싫지만,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일렁이는 풍경은 낙원의 풍경이라는 그림의 제목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환상적인 공간은 최초로 그려진 이후 i2V (image to video) 기술로 생명이 태동하듯 소용돌이치는 미디어 아트로 변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 올짜리 세필로 섬세히 그려진 듯한 인물들의 형상이 추가되었다. 크기는 작지만 저마다 탐스러운 과일을 먹고 술을 마시며,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을 띠고 춤을 추고 있었다. 낙원에서의 완연한 행복.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행복의 실체 같았다. 하지만.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벽면을 타고 흐르던 그림의 미세한 픽셀들이 빛의 입자처럼 허공으로 떠올라 입체가 되었다. 로어에서 퇴근 시간마다 펼치는 미디어 아트쇼였다. 3D 홀로그램이 된 그림이 로비에 휘몰아쳤다. 이 풍경을 수도 없이 봤을 직원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로비를 빠져나갔지만, 관광명소로 유명해진 건물인 만큼 감탄을 지르며 사진을 찍은 관객도 꽤 있어 보였다. 정민은 출입게이트로 시선을 돌렸다.

“피상적이야.”

정민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 편으로는 묘하게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걸 낙원이라고 정의한 건 AI일까, 그 AI를 학습시킨 사람들일까. 사람들에게 저런 형태의 행복을 학습시킨 건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미디어 아트 쇼가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며 웅장한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마침 게이트를 빠르게 걸어 나오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둘 사이에 흐른 세월이 무색하게도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것들이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머쓱함을 무릅쓰고 누군가는 먼저 인사를 건네야 했고, 이번에 그 역할을 맡는 건 정민이었다.

“오랜만이야, 현서.”

현서는 마주 앉은 정민을 낯설게 바라봤다. 방금까지 장실장, 박팀장 콤비에게 탈탈 털리고 와서인지 지금 눈앞에 있는 게 정말 정민이 맞는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십 년 만의 만남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정민은 한동안 골몰한 듯 조금 야위어 있었다.

‘너무 지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누가 먼저 그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현서도 정민도 힘이 빠져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현서는 자기 자신보다 아꼈던 정민에게 상처를 줬고, 그 사실에 스스로도 상처받았다. 서로만 있으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기에, 이런 식의 허무한 마지막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였다. 그 뻔하고 단순한 단어에는 말로 담을 수 없는 시간들이 담겨있었지만 어디에도 설명할 곳은 없었다.

‘이해해.’

정민은 이해한다고 했다. 현서도 정민에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둘은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스무 살 봄에 만나 8년을 연애한 뒤 결혼했다. 대학에서는 물론 현서의 군대와 편입, 정민의 대학원 생활과 첫 취업을 내내 함께 했다. 그야말로 삶의 전부를 기꺼이 나누었다.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만큼 넘치게 주고받았다. 그때는 그 모든 게 영원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기도 했다. 정민과 보낸 마지막 밤, 현서는 함께 지낸 시간에 가려 정작 정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순간을 함께했음에도 둘은 서로를 몰랐다.

우리의 결혼은 정말 사랑이었던가. 그냥 오래된 세월에 가려 함께라는 걸 당연하게 여긴 결과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미 일찍이 끝난 사랑이었는지 몰랐다. 기나긴 대화 끝에 정민은 어린 조카를 안고 현서를 떠났다.

“희재 때문에 묻고 싶은 게 있어.”

어색한 적막을 깨고 정민이 입을 열었다. 역시 조카 일이구나. 자신의 문제였다면 곧 죽는대도 현서를 찾았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 했을 것이다. 희재는 정민의 전부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 내외가 남기고 간 하나뿐인 보물. 자녀를 가질 생각을 한 적이 없던 현서는 언니 대신 아이를 키우겠다는 정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둘은 다시 교차할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걸지도 몰랐다. 혹은 비겁하게 끝을 내지 못한 관계에 희재가 좋은 핑계가 되었거나.

‘우리가 헤어지지 못하는 게 희재 때문이라면, 나는 더 비참할 것 같아.’

갑작스럽게 그들의 삶에 들어온 희재라는 존재는 둘의 간격을 더욱 벌려놓았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작고 여린 아이를 현서는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에 짓눌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심취해 있었을 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진짜 그들 자신을 위하는 게 무엇인지 숙고할 시간도 없었다.

“베레시트 세계로 아예 이주하기도 한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건지, 안전한 건지 좀 묻고 싶었어. 너도 알겠지만⋯,”

내가 이런 건 잘 몰라서, 정민이 머쓱한 듯 웃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현서는 어리둥절했다. 실존하는지도 모르던 내부 프로젝트에 대해 벌써 두 번째 듣고 있는 것이었다. 수안은 그렇다 쳐도, 정민은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 건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희재가 그래? 이주하고 싶대?”

묘하게 적극적인 반응에 정민은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술이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직원들도 모르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 없어.”

정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이상했다.

“사실 희재 한 명이 아니야.”

정민은 잠시 주변을 살핀 뒤 태블릿 PC를 꺼냈다. 화면 가득 차트 파일이 떠있었다.

“새로 발견된 증상이야. BDA 신드롬, 풀어서 얘기하면 ‘신체 통합정체성 장애’. 설명하자면 긴데⋯,”

몰입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설명할 때 정민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집중하는 입매와 신난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익숙했다. 십수 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게 변했겠지만, 특유의 집념은 잃지 않았다. 그게 현서에게는 위안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아와 신체가 불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걸 넘어서, 신체에서 벗어나야 온전한 자신이 된다고 느끼는 뇌질환이야. 이전에도 유사한 증상이 있었지만, 천만 분의 일 정도로 드물어서 질환으로서 논의되지 않았어.”

현서는 듣도 보도 못한 증상이었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아마 그냥 미친 사람 취급을 했을 테지.

“문제는 최근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격히 많아졌다는 거야. 내가 연구를 위해 만난 임상 환자만 200명이 넘어.”

수 십 장의 차트를 휙휙 넘기다가 붉은 책갈피 아이콘이 표기된 페이지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중 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이주’에 대해 질문해.”

얼핏 봐도 책갈피가 된 차트가 수 십 개가 넘었다. 이건 정말 이상했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정민과 현서의 눈이 마주쳤다. 헤어진 이후 이렇게 똑바로 마주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확실히 이상해.”

현서는 마구잡이로 밀려드는 여러 생각들을 붙잡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안과의 만남, 수안이 했던 말들, 그리고 정민이 들고 온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이 현서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팬이에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수안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작은 꿈이 산산이 부수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일단 다시 회사에 들어가 뭐라도 알아봐야 했다.

희재를 도와줘. 정민의 눈빛이 현서를 붙잡았다. 미뤄두었던 관계의 정리에 희재를 구실 삼았다는 것은 현서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 진실이었다. 자신의 치졸함을 모조리 인정해 버리는 것 같아서였다. 모든 일이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으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렸다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이번엔 정말 희재를 돕고 싶었다. 그건 일종의 사죄이자 한 편에 해소되지 못했던 진심이기도 했다.

수안에게 물어보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수안이 더 이상 불쑥불쑥 나타나지 않은지도 몇 주가 지난 상태였다. 자신을 도와줄 의향이 있는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거겠지. 어쩌면 깔끔히 포기했는지도 몰랐다. 이제 곧 체험형 인턴도 종료될 예정이었으니 다른 방도가 없을 수도 있다. 무관심하게 수안의 제안을 거절한 것과 모순적으로 현서의 머릿속 어딘가에 자국이 남은 것처럼 수안의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현서 님은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수안이 건넨 것은 현서가 타인에게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절대적인 믿음. 현서는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어본 적이 없었다. 사랑은 조건이 따랐고, 응원도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다. 수면 아래의 이권 다툼으로 서로 물어뜯기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현서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더 이상의 기대도 실망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은 구원이 아니고, 그렇기에 다정은 약점이 되었다.

-현서 님, 체험형 인턴 프로그램이 이번 달로 종료됩니다. 관련해서 업무평가를 요청드립니다.

언제 들어도 차분한 젠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반가웠다.

-정수안 님이 등록하신 보고 문건은 총 182건이에요. 열정이 대단하네요.

“응?”

젠도 곤란한 얼굴이었다. 인턴십 기간 동안 작성해야 하는 보고 문서는 단 두 가지였다. 각자 맡은 업무에 대한 개선 아이디어와 3개월 간의 인턴 프로그램에 대한 회고 문서. 사실 그마저도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형식상 제출을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담당자가 마지막 피드백을 작성하면 수료가 처리되었다. 문서를 제출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로 아무 쓸데없는 절차였기에, 당연히 보고 문서를 이렇게나 쌓아둔 건 수안이 처음이었다. 대체 뭐야. 어떤 확신이 이렇게나 수안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젠은 사람을 믿어?”

순간 젠의 표정이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면 현서의 착각이었을까.

-아뇨.

젠이 발송한 보고서 리스트가 현서의 화면에 업데이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가능성이 100이나 0이 될 때까지.

현서 또한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마찬 가지였다. 소중하다고 여겼던 건 모두 잃었다. 신념도, 마음도, 사람도. 지키겠다는 말을 단 한 번도 지켜낸 적이 없었다. 리스트에 올라온 수많은 문서의 제목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1859년 캐링턴 이벤트에 대한 리서치, 태양대폭풍과 지구자기장 연구, 데이터센터의 안정성 확보에 대한 아이디어⋯. 수안은 하루도 쉬지 않고 혼자서 투쟁하고 있었다.

“쉽지 않네.”

그중에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미각 패턴 구현 연구의 필요성과⋯]. 홀린 듯 문서를 열고 수많은 그림과 텍스트들이 현서의 시야를 완전히 덮었을 때, 데자뷰처럼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현서가 2년 전 썼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장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압도 당하는 것처럼 빠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도와드릴까요, 현서 님?

무엇이 이렇게나 수안을 진심으로 만드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이미 현서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니, 내가 직접 살펴볼게.”

182건의 문서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저 빠르게 훑어보고 처리할 생각으로 하던 일이었는데, 수안의 것은 어릴 적 받은 편지를 열어보는 것처럼 묘하게 설레었다. 그 마음에 보답하듯 문장마다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과 그 끝에 내린 선택이 결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젠이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어쩐지 신이 나 보이네요.

현서는 머쓱해져 가상스크린에 카메라를 띄워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피곤해 보이기만 하는 구만, 무슨.

-아까 물어보신 것에 혹시 도움이 될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성경에서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꼭 그를 돕겠다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정도는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겠다. 스치듯 다시 마주한 자신의 얼굴이 유난히 밝았다. 어디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았던, 그래서 잃은 줄도 몰랐던 어떤 마음을 찾은 것 같았다.

-사랑의 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젠이 현서와 대화하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건 아마 현서가 그런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어서겠지. 게다가 제법 사람들의 대화 패턴을 많이 학습한 듯 자연스러운 맥락이었다.

“젠, 정수안 님한테 면담 일정 좀 보내줘. 지금 바로.”

현서는 급하게 겉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무리 설명하려 애써도 정민은 희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리치며 싸우고, 울고, 애원하며 설득하는 수없는 날들이 지나도 둘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희재는 지쳤고, 심지어 이제는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모의 태도에 대화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더 이상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정민은 자꾸만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하고픈 말은 이미 다 한지 오래였다.

희재가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이 몸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들을 마음이 없는 이에게는 어떤 말도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킨코는 단 한 번도 나타나주지 않았다. 킨코가 쌓아 올렸던 성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디에도 없던 것처럼. 희재는 점점 조급해져 밤마다 용암에 휩싸인 공원으로 향했다. 쿨타임 동안은 머릿속으로 계속 맵을 되짚어보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다이아 스타를 얻는 것만이 킨코를 다시 만날 유일한 방법인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건 희재가 ‘아무 의지도 없다’고 말하는 이모에 대한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다. 봐, 이렇게 애를 쓸 줄도 아는 걸. 희재는 최소한으로 먹어서 힘이 다 빠져버린 몸으로 리플모듈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또다시 그 구간이었다. 몸을 한 번 재정비하고 미끄럼틀 구조물에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음 플랫폼으로 몸을 날렸다. 발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끄럼틀은 폭탄에 맞아 산산조각 났다. 모든 게 정확히 예상한 그대로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까스로 플랫폼 끄트머리에 안착했으나 여기부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었다. 불과 5미터쯤 앞에 철창에 갇힌 다이아 스타가 빛나고 있었다. 그 밑이 펄펄 끓는 용암으로 가득하고, 도저히 거기까지 닿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거의 다 온 거였다. 희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긴장감 탓인지 쉴 새 없이 틱이 발동해 멋대로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갑자기 땅이 요동치며 다이아 스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용암 아래 감춰져 있던 첨탑이 솟아오르며 꼭대기의 다이아 스타가 눈앞에서 멀어진 것이다. 희재는 요란하게 흔들리는 땅에서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느라 멀어지는 빛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번개 구름에 가려 끝이 보이지도 않는 첨탑의 외벽을 빙 둘러 반 뼘 크기의 작은 벽돌들이 길을 만들고 있었는데, 사악하게도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난이도 극악의 컨트롤과 타이밍 게임이 예상되는 생김새였다. 아니나 다를까 첫 발을 내딛자마자 발목이 불안하게 휘청였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머뭇대는 순간 밟고 있는 벽돌이 사라지며 용암으로 곤두박질 칠 게 분명했기에 리듬감을 잃지 않으며 계속해서 점프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었다. 발끝으로 버티며 계속되는 뜀박질에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이를 악 물었다. 얼마나 온 건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는 순간 균형을 잃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킨코를 만나고 싶었다. 그는 희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였다.

순간 집중을 잃어 스텝이 꼬였다. 아주 찰나를 머뭇거리는 동안 희재의 발을 받치고 있던 벽돌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헉, 하는 다급한 호흡과 함께 희재의 몸이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희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떠야지.

낯익은 장난스러운 목소리. 킨코였다. 중력이 잠시 사라진 세상에서 둘은 아무런 무게도 없이 허공에 표류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무중력에 어리둥절해진 몬스터와 폭탄 더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용암도 불타는 비눗방울이 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킨코의 성전에서처럼.

희재는 킨코의 손을 맞잡았다. 둘은 다이아 스타를 향해 부드럽게 유영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킨코는 자신을 가둔 몸을 감옥이라 표현하며, 자신은 이미 탈옥에 성공했다고 했다. 희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건 희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몸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는데? 희재의 질문에 킨코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로 아예 이주하는 거야.

킨코의 말에 의하면 뇌를 정밀 스캔해서 모든 생김새, 시냅스 연결, 저장되어 있는 기억과 자아까지 디지털로 업로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몸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현실보다 나은 현실 속을 자유로이 떠돌며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다.

마침내 첨탑의 꼭대기에 도착한 둘은 좁은 플랫폼에 몸을 딱 붙이고 섰다. 다이아 스타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지만 더 이상 희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게 킨코 때문인지, 킨코의 비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무중력 아이템의 지속시간이 끝났는지 허공을 떠다니던 모든 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영원한 것보다 멋진 건 온전하다는 거지. 나를 봐.

킨코는 제자리에서 점프해 하늘로 떠올랐다. 마치 혼자 무중력 아이템을 쓰고 있는 듯했다. 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유연한 움직임이었다. 신체에 센서를 붙여 아바타를 움직이는 일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고기처럼 하늘을 가르며 헤엄치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끼고 분수대의 물 위를 발끝으로 뛰어다녔다. 킨코를 보는 내내 느꼈던 자유로움이 눈앞에서 생생히 재현되고 있었다.

-너도 할 수 있어. 생각하기만 하면 돼.

희재는 더 이상 몸이 자신에게 속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몸은 그저 어서 빠져나가고 싶은 좁은 감옥일 뿐이었다. 희재는 영혼이고 싶었다. 고결하고 가볍고 멀리멀리 가버릴 수 있는 흐릿한 영혼.

“어떻게 하면 이주할 수 있어?”

킨코는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자신이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비밀리에 이주민을 모집하고 있거든. 너를 후보로 추천해 둘게.

킨코가 크게 공중제비를 돌아 희재의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때 희재는 확신할 수 있었다. 희재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 바로 이거라는 걸. 더 이상 멀미도 나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축축한 신발을 신었을 때처럼 불쾌한 감각에 소름이 돋지 않아도 되는 삶. 오롯한 내가 되는 것. 그리고 킨코와 그 모든 걸 함께하는 것. 때마침 다이아 스타가 희재에게 날아왔다.


[축하합니다. 《인페르노 파크 : 위장 위험구역》 정복에 성공하셨습니다.]


요란한 셀러브레이션과 시스템 메세지가 시야를 뒤덮었다. 메세지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희재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다이아 스타를 킨코에게 건넸다.


“나를 도와줘, 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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