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피쉬
또다시 트롤리가 가는 길 앞을 도덕적 잣대가 가로막는다. 당신의 어린 아들이 한쪽에 누워있고, 다른 한쪽엔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가 누워있다. 대체 왜 자꾸 광차가 갈 길에 널브러져 있는 건지 툴툴 댈 시간이 없다. 한두 번도 아니지만, 모든 선택은 매 순간 다른 무게가 있다. 그런데 대체 무게란 무엇인가. 선택의 무게라는 걸 잴 수 있기는 한 걸까.
당신은 반드시 선택을 하게 된다. 어차피 선택을 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옳은가? 그 선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니 그보다 잠깐만, 하며 당신이 손을 든다. 대체 누구이길래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억울함에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나도 그냥 웃고 만다. 그러게. 우리는 무엇이길래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당신은 답한다. 삶은 거대한 질문. 답을 고민하지 않는 자는 무엇도 되지 못한다. 그 자신도.
프로젝트 담당자를 찾아 설득해 보자고 한 건 수안이었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사람이 겨우 대화로 설득이 될 것 같아?”
-그럼 협박을 하면 되죠.
이런 또라이니까 몸까지 버리고 이주를 택했겠지. 막무가내인 수안에 감탄하는 사이 현서에게 알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체 데이터 읽기 권한이 허용되었습니다.]
[AI 감사 기록 수정 권한이 허용되었습니다.]
[C-level 문서 읽기 권한이 허용되었습니다.]
수안이 사내 모든 문서와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열고 있었다. 이 많은 걸 다 확인하자는 건지 막막함이 밀려왔지만 별 수 없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수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수안에게도 모든 게 처음인 일이었다.
-권한이 적은 문서가 가장 의심스러운 법이죠. 저는 RAW 데이터를 볼게요. 현서 님이 문서를 살펴봐주세요.
“일개 팀원이 저지를 사이즈의 일이 아니니까 C레벨, 이사들이 걸려있는 것들 위주로 보면 될 거야.”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일로 시선을 돌렸다. 회사 문서를 뒤지는데 회사 인공지능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유효할 것으로 예상되는 키워드로 일일이 검색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젠 없이 수동으로 업무를 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새삼 어색하게 키보드를 사용했다. 이래 봤자 로그가 다 남기 때문에 걸릴 게 뻔하긴 했지만, 지금은 시간을 버는 게 중요했다.
비져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스크린 가득 문서를 도배해 두고 하나씩 훑기 시작했다. 내용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글자들이 범람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각종 언어로 된 어마어마한 글자에 치여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사치였다. 물결에 휩쓸리듯 글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근데 왜 하필 금붕어였을까? 문득 오래 묵었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현서가 금붕어 키우기 콘텐츠를 끝까지 깨고 나서 들었던 첫 번째 의문이었다. 금붕어라고는 나오지도 않는데 콘텐츠 타이틀이며 그래픽까지 곳곳에 금붕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안은 왜 그 콘텐츠 이름을 금붕어 키우기라고 지었을까. 콘텐츠의 오프닝 시퀀스에 꼬리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붕어가 등장한 건 그냥 디자인이었던 걸까. 유려하게 출렁이는 꼬리의 형태에 정신을 뺏겼던 현서의 눈길을 끈 건 의외의 익숙한 이름이었다.
[안종대]
지금은 로어게임즈의 대표가 된 전 CTO(기술 총책임)의 이름이 담당자 칸에 덩그러니 쓰여있었다. 현서는 제스처로 이름이 적힌 문서를 크게 확대했다.
담당자가 달랑 한 명인 것도 특이한 경우인데, 더 이상한 건 문서가 발송된 시간이었다. 새벽 4시. 아무리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워커홀릭이래도 4시는 재정비를 할 만한 시간이었다.
“수안 님 새벽 시간 대에 최종 승인되거나 발송된 문서들만 추려줄 수 있어?”
수안이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자 스크린에 펼쳐져있는 수 천 장의 문서들이 일제히 정리됐다.
“이 중에 단독으로 담당자가 걸려있는 것만 남겨줘.”
그 많던 문서가 드문드문 남았다. 현서가 다급한 손짓으로 펼쳐진 문서들의 담당자 이름에 하이라이트를 칠했다. 모두 같은 이름.
-이상한데요. 어떻게 치료제 알파플루에 대한 내용이 게임즈에서 바이오로 넘어갈 수가 있죠?
수안이 문서 하나를 짚으며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담당자가 한 명일리도, 새벽 시간에 문서가 발송이 될 일도, 게임즈가 치료제에 관여할 일도 전혀 없다. 심장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두근거렸다. 손끝까지 뜨거운 열기가 돌았다. 포털에 안종대라는 이름을 검색하자 각종 기사들이 쏟아졌다.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은 딱 하나.
“찾았다.”
현서가 수안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알파플루 프로젝트의 문서가 최종 승인된 시점과 안종대가 기술 책임자에서 대표로 승진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건 확실히 수상하다.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비윤리적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하고 초고속승진을 한 남자. 이다음엔 대이주 프로젝트를 통해 전사 대표까지 노리는 그림이 뻔했다. 원래 인간의 권력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 클리셰였다.
-이제 어떡하죠?
“그걸 이제 와서 걱정하는 거야?”
그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을 뿐.
“뭘 어떡해. 협박하자며.”
안대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로어 사옥 안에는 대표실이 따로 없었고, 대표가 된 이후 안종대의 실물을 봤다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업무와 소통을 베레시트 안에서 할 정도로 완전히 거취를 감췄다. 그를 만날 유일한 방법은 베레시트 안에서 그를 추적하는 것뿐이었다.
“안대표의 접속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해보고 있는데,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어요. 별도로 관리되고 있나 봐요.
당연히 접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한 회사의 수장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테니까. 수안은 잠시 고민에 잠긴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생각하자. 생각해내야 한다. 완벽히 맞춰졌다고 믿었던 퍼즐 옆으로 그 믿음을 조롱하듯 무한히 퍼즐판이 뻗어나갔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현서는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하기를 선택했다.
“안대표도 이주민이라면⋯⋯.”
합리적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베레시트 월드로 이주했다면,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안대표는 왜 이주했을까. 그의 진짜 목적은 뭘까. 단순한 권력 욕심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의 흐름이 현서를 빨아들였다. 깊이를 알 수 없이 빠져드는 건 현서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안대표는 어쩌다 대이주 프로젝트를 계획했을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요.
수안이 고개를 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묘하게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그 말이 맞았다. 그게 무엇이던 이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장애가 생겼다거나,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던가 하는 신파를 자아내는 사연은 현서가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질문을 바꿔야 했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현실보다 나은 현실을 만드는 것.
순간 번쩍 하는 섬광이 스친 것처럼 머릿속이 밝아졌다. 베레시트가 현실보다 나은 또 다른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거짓이라는 모든 증거를 없애야 했다. 지금까지 베레시트 서비스는 그렇게 하나씩 거짓을 지워갔다. 3D그래픽, 움직임을 구현하는 물리엔진, 세계의 법칙과 규칙, 경제와 자본의 흐름, 생생한 촉각 구현. 그 모든 것들이 베레시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지금 베레시트 월드를 거짓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 증거를 현서는 알고 있었다.
미각. 안대표는 반드시 그걸 해결해야 한다.
-안대표는 베레시트에 계속 나타나지만, 로그는 추적되지 않아요.
“그렇다는 건 다른 서버에 있다는 거겠지.”
-트레이닝 서버.
누가 말한 지도 모르게 둘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서비스에는 같은 세계 위에 지어졌지만, 층위가 달라 평행하는 세계처럼 여러 서버가 겹쳐있었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들에게 디지털 트윈 세계를 학습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트레이닝 서버들은 일반 유저들은 접근할 수 없이 특정 ip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안전하게 거취를 숨기고자 한다면 일반 네트워크와 분리된 폐쇄된 트레이닝 서버가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관리 시스템에도 등록되지 않은 숨겨진 트레이닝 서버에 살며 일반 서버와 백도어 채널을 만들어 소통을 해왔다면 모든 게 말이 되었다. 안대표는 거기서 미각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현서의 감이자 확신이었다. 미각은 자칫 별 게 아니어 보이는 피쳐이지만, 베레시트를 진짜 현실로 만들어줄 마지막 열쇠이기 때문이었다.
-어디인지 알 것 같아요. 가본 적이 있거든요.
같은 눈빛이 오갔다. 현서는 지금 수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 같은 이 느낌이 그동안 현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게 단단히 연결된 감각. 어쩌면 다른 논리들은 그저 핑계일지도 몰랐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주고받을 때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
깊숙한 지하층에 내리자 높이가 허리쯤 오는 원통형의 주행로봇이 스크린에 환영의 메세지를 띄운 채 희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희재 님 맞으시죠?”
고개를 끄덕이자 스크린이 화살표 모양으로 바뀌었다.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로봇이 앞서가고 그 뒤를 따라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은 통로를 지났다. 벽 너머에 기계를 가동하는 듯한 소리가 통로 안을 웅웅 울렸다. 통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창백한 조명이 박혀있고, 환풍 팬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로 같은 통로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는 거야?”
한참을 걷던 희재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로봇이 주행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180도 돌려 희재 쪽으로 스크린을 위치시켰다. 구식 웃는 이모지를 띄운 채였다.
“거의 다 왔습니다.”
어딘가 묘한 기분에 희재는 어깨에 걸친 담요를 조금 더 세게 동여맸다. 손바닥에 폭신한 촉감이 닿았다. 조금만 참자.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이주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희재는 깊이 숨을 가다듬고 킨코의 유려한 몸짓을 떠올렸다. 그 경쾌한 자유로움을, 희재도 가질 수 있다. 이 둔탁하고 소름 끼치는 몸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킨코와도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로봇이 서서히 속력을 줄이다가 이내 육중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단단하게 잠긴 문이었다. 어찌나 유격 없이 닫혀있는지 어디가 열리는 틈새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역시나 잡고 열 수 있는 문 손잡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희재는 이 문이 원한다고 열 수 없는 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문 너머에 킨코가 있을 걸까. 그렇다면 킨코가 이 문을 열어주는 걸까.
“킨코는 어디 있어?”
로봇이 또다시 웃는 얼굴 이모지를 스크린에 띄워 보였다.
“내가 킨코야.”
그 순간 절대 열리지 않을 것처럼 생겼던 문이 양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동시에 눈에 들어온 건 깔끔한 그림체로 그려진 붉은 머리의 소년, 킨코였다.
“킨코!”
희재는 킨코의 홀로그램 그래픽을 향해 의문의 공간으로 뛰어들어갔다. 킨코가 양팔을 활짝 벌려 희재를 맞이했다. 잘 왔어. 이제 안전해. 킨코의 앞에는 MRI처럼 생긴 커다란 기계가 한 대 누워있고, 그 곁으로 모니터가 대여섯 개씩 붙은 컨트롤 패널이 늘어서있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짜 이주를 하는 거다. 희재의 뒤로 소리도 없이 문이 닫혔다. 너머의 로봇은 한 번도 구동한 적이 없는 것처럼 비활성 되어 있었다.
“어떻게 준비한 거야, 킨코? 내가 선발이 된 거야?”
소년은 별 다른 대답 없이 빙긋 미소 지었다. 분명 내내 보고 싶던 익숙한 얼굴인데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너, 킨코가 맞지?”
희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뭔가 잘못된 걸까. 똑같은 스킨과 똑같은 목소리인데도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소년이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킨코가 무어라고 생각하는데?
희재 주변을 빙그르르 돌며 소년이 물었다. 그새 다른 스킨으로 갈아 끼워 3D 질감의 근육질 남자 형상을 하고 있었다. 킨코는, 킨코는⋯. 희재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그 사이 한 번 더 스킨이 바뀌어 소년은 단정한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성인 여성의 형상으로 변했다.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고 무심코 지나치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모난 데 없이 평범한 호감형의 얼굴이었다.
-그 담요는 가져갈 수 없으니 여기 내려둬.
바뀐 얼굴에도 변함없는 미소가 어쩐지 서늘했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여성은 희재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가장 듣고 싶던 말을 속삭였다.
-어차피 그 신체와 함께 폐기할 거니까.
“너 누구야?”
킨코가 싱긋 웃었다. 아니 이제 그를 킨코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희재는 혼란스러웠다.
-글쎄, 모든 진실이 선명했다면 테스터가 필요하지도 않았겠지.
킨코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네가 킨코라면 약속한 그걸 줘.”
희재는 소리가 크지 않길 바라며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킨코는 ‘그거’라는 말에도 모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킨코가 맞아. 우리 둘만의 기억을 알고 있다면 그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건 킨코라고 부를 수 있다.
-그건 여기에 내려둬. 이제 때가 되었어.
상대는 이내 다시 킨코의 얼굴로 돌아왔다. 다른 건 전혀 없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희재의 담요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희재는 어깨에 두른 담요를 꽉 쥐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폐기되더라도, 가져가면 안 돼?”
희재는 조심스레 말하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 뜻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상대가 일부러 표정을 지어주지 않는다면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게 베레시트 세계의 문법이니까.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가져온 모든 걸 버려야만 ‘그걸’ 줄 수 있어.
누가 들으면 명령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희재의 귀에는 그 말이 간청으로 들렸다. 킨코의 예외 없는 규칙은 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늘 말하던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일까. 희재는 담담히 담요를 벗어 내려놓았다. 그게 무엇이든 킨코가 원하는 것이라면 함께하겠다는 결심이었다. 희재도 정말 알고 싶었다. 킨코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무엇인지.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보는 킨코의 얼굴이 묘하게 일렁였다.
희재는 다시 방에서 나와 이끌리듯 킨코를 따라 걸었다.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갈수록 그동안 지나온 경로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돌아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진짜 여기가 맞아?”
무성하게 자란 수풀이 시야를 덮쳐오는 걸 간신히 막으며 현서가 물었다. 로어 사옥 뒷편을 가로지르는 8차선 고속도로 너머에 버려진 토지가 있었다. 바로 옆이지만 고속도로가 가로막고 있어 한참을 돌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수안은 그곳에 덩그러니 자리한 무채색의 건물이 숨겨진 연구센터라고 했다.
-저기가 지하 9층 데이터센터의 뒷문이에요.
수안이 공중에 둥둥 뜬 채 이야기했다. 첫 번째 문제는 지도 어디에도 고속도로를 건너 그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나와있지 않은 것이었다. 맵에 경로를 물어보면 차로 꼬박 2시간을 뱅뱅 돌아야만 도달할 수 있다고 나왔다.
-제가 완전히 이주하고 처음 눈을 떴던 곳이었어요. 제가 베타 테스터니까, 아마 그곳이 각종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일 거예요. 그러려면 폐쇄 서버를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일반 데이터센터랑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치여야 해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저기뿐이에요.
수안은 하여간 틀린 말을 하는 법은 없어서 가만 듣고 있자면 이내 설득되어 버렸다. 현서는 다시 수풀을 헤치고 고속도로 너머를 힐끔 봤다. 코끼리도 치고 갈 기세로 달리는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
-폐쇄 네트워크라 해당 서버에 접속하려면 최고 관리자 계정을 사용하거나, 서버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장소에 직접 가서 접속해야 해요.
두 번째 문제는 어찌 됐든 간에 현서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의 실제 공간을 직접 가는 건 수안은 어떻게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현서가 해야만 했다. 수안의 도움 없이 혼자서. 메타버스고 뭐고 아직 세상엔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일 투성이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8차선 고속도로를 건너고, 서버실에 숨어 들어가, 안대표를 독대하고, 심지어 설득해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여길 가로지르라고?”
-저 때문에 너무 충격받아서 바보가 되셨나 봐요. 누가 여길 건너가요.
수안이 키득 대며 현서를 놀렸다. 고속도로를 받치고 있는 둔덕 한 구석으로 수안을 따라가자 작은 개구멍이 보였다. 다행히 로드킬 당할 일은 없겠네.
구멍의 입구는 비좁고 지저분했지만, 막상 들어서고 나니 꽤 반듯하게 닦여있었다. 일부러 만들어둔 길처럼 곧게 뚫려있었고 바닥은 평평했다. 마치 로봇을 위한 길처럼.
구멍을 통과하자 머리 위까지 높이 자란 풀들이 이미 껍데기만 남은 채 지저분하게 얽혀있는 벌판이 나타났다.
-현서 님 저 쪽에.
수안이 가리킨 방향엔 쓰러진 풀들 사이로 터널처럼 작은 길이 나있었다. 잔가지들을 헤치며 한참을 걸었을까, 눈앞이 열리며 컨테이너 하나가 보였다. 지우개처럼 아무 특색이 없는 1층 짜리 컨테이너였지만 가까이서보니 꽤 커다랗게 보였다.
-여기부터는 혼자 가셔야 해요. 저는 보안 서버를 해킹해서 길을 열어드릴게요.
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자신의 안위를 수안에게 믿고 맡겨야 한다. 수안이 스르륵 사라지고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고요한 바람이 불었다. 여기서 최악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붙잡히는 거겠지. 손이 차가워져 와 주먹을 꽉 쥐었다. 수안이 떠난 자리에 두려움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아주 많이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회사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다니, 거의 미친 짓이었다. 마치 또 다른 메타버스 세계인 것처럼 회사는 현실보다 못한 현실이라고 느끼며, 이곳에서 파밍한 것들로 바깥의 진짜 삶을 영위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어차피 현서에게 현실은 회사 밖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그게 아니었던가. BDA 증상자들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잘라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다 삶이었는데, 애쓰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마음대로 도려내려 했던 건 아닐까.
수안의 빛나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진심을 다해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의 반짝임이었다. 그게 그저 AI가 재현한 생성 비디오일 뿐이라는 게 가장 큰 아이러니지만. 그때 컨테이너 입구의 잠금이 해제되는 알림음이 들렸다. 수안이 해낸 것이었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실내 공기의 온기 대신 차가운 냉각제 냄새가 감돌았다. 겉보기엔 평범한 연구동 같은 분위기였다. 다만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서는 숨을 죽였다. 연구동 안은 완벽한 질서 속에 살아 있는 기계들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벽면을 따라 기하학적으로 정렬된 로봇들과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낮은 전자음과 함께 깜빡이고 있었고, 천장에서는 팔이 여러 개 달린 자동화 기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바닥은 윤이 나는 금속재질이었고, 어느 곳에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 청결함에서 철저한 기계적 관리가 느껴졌다.
낯선 두려움 탓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문득 어릴 적 기억이 스쳐갔다. 체육 시간에 피구만 하면 얻어맞던 왕따 친구 앞을 두 팔 벌려 막아섰을 때. 날아오는 공들이 무서워 엉엉 울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했다. 정민과 끝에 다다랐음에도 함께 희재를 키우던 2년 남짓의 시간도 매일같이 그러했다. 무거운 좌절감과 쪼들리는 형편 속에서도 현서는 해야 할 일을 해냈다.
현서는 본래 그런 사람을 동경했다. 생겨먹은 게 그랬다. 아무리 막막하고 두려워도 해야겠는 일은 해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현서도 그런 사람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발을 내디디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을 위한 책상도, 의자도, 창문도 없었다. 패널이나 버튼 같은 인터페이스도, 스피커 같은 알럿 장치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몇 개 없는 문조차 자동 개폐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여긴 인간이 올 수 있게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오로지 로봇의 최적 효율을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이다.
삐빅. 짧은 구동음이 공간을 울렸다. 현서는 이 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센서가 현서를 감지하고 추적하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 작은 붉은 점들이 생겨났다. 기계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지만, 일부 로봇 팔의 움직임이 아주 살짝 느려진 것도 같았다. 누군가 조종하고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숨이 막혀왔다.
“수안 님?”
현서가 작게 속삭였다. 동시에 연구동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졌다. 식은땀이 났다. 그제야 현서는 깨달았다. 이곳은 오로지 로봇의 최대 효율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고, 이 공간 안에는 로봇들 뿐이다. 즉, 여기에는 인간을 배려한 그 어떤 안전 프로토콜도 없다. 이 공간이 인간의 침입을 오류로 간주한다면 연구동 전체가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 작동할 것이다. 현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수도 있는 처지였다.
현서는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연구동의 자동화 시스템은 이미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천장에 달린 작은 로봇 팔들이 서서히 방향을 돌렸다. 현서를 향해서. 복도의 불빛이 느리게 깜빡이며 꺾여진 복도 저편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현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며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이렇게나 긴밀하게 연결된 몸을 자신이 아니라고 느끼는 BDA 증상이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발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발소리 사이사이의 미세하게 돌아가는 관절 기어 소리가 들렸다. 보행형 로봇 소리다. 무게감으로 봐서는 아마⋯.
“현서 님, 저예요.”
4족 보행 로봇이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강아지처럼 보송한 털과 꼬리까지 달린 가정용 보급 모델이었다. 사실 그건 수안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현서의 귀에는 익숙한 음성으로 들렸다. 이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여기 시스템을 일부 해킹하는 데 성공했어요. 폐쇄형 서버의 보안 코드도 메시지로 보냈는데 답이 없으시길래.”
연구동에 들어오기 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베레시트를 오프라인으로 해두었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개가 되었구나. 잘했다.”
현서는 깜짝 놀랐던 게 민망해 진짜 강아지에게 하듯 거칠게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안이 머리 부분을 움직여 벗어나려다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지 분해했다. 한참 은근하게 씨름을 하다 제가 강아지냐구요, 하는 말과 함께 수안이 꼬리 부위로 현서의 손을 쳐냈다.
“근데 해킹하는 동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 좀 이상하고 수상하면 안 되나, 이놈의 회사.
“누군가 우릴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수안의 말은 생각했던 시나리오에 부합하지 않았다. 응원이라니, 이 상황이 이토록 안 어울리는 말을 찾기도 힘들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수안의 감정이 느껴졌다. 얼굴이라는 매개체 거치지 않고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느껴져요.”
복도는 나선형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외곽을 따라 도는 내리막 중간중간 직선형 길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현서와 수안(혹은 4족 보행 로봇)이 연구동을 가로지르는 동안 복도 곳곳을 돌아다니는 로봇들은 둘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수안이 보안 시스템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인지 보안 프로토콜도 발동하지 않았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유려한 곡선을 따라 현서와 수안은 점점 깊은 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자 처음 출발했던 지상층이 아득해 보일 정도로 깊은 지하로 들어왔다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원형 공간은 8개 갈래의 복도 혹은 연구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문이 없었는데 가장 큰 복도로 이어지는 곳만이 육중한 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모양이라 한참을 들여다본 뒤에야 현서는 그게 젠의 방문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저 안쪽일 거예요.”
메시지함에서 수안이 보내놓은 폐쇄형 네트워크의 주소에 접속을 시도했다. 역시나 패스워드가 필요했기에 보안 코드를 한 글자씩 입력했다.
[9, 0, 1, d⋯,]
또다시 기시감이 들었다. 손가락이 꽤 익숙하게 낯선 숫자와 알파벳을 입력하고 있었다. 마치 다음에 무얼 눌러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f, 1, 5, h.]
현서는 갑자기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걸 간신히 두 다리로 버텼다. 덫에 걸린 건가. 단순히 랜덤한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보안 코드가 선명하게 읽혔다.
“골드 피쉬.”
왜 비밀번호가 금붕어인지, 왜 수안이 매번 사용하던 보안 코드와 이곳의 보안 코드가 같은지, 현서는 묻고 싶었다. 네트워크에 접속되자 굳게 닫혔던 커다란 문이 스르르 열렸다. 대체 그놈의 금붕어가 뭔지, 왜 이렇게나 어렵고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인지. 따지고 싶지만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모든 걸 알아야겠다고 결정한 건 현서 자신이었으니까. 현서는 어지러움을 견디기 힘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