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정민은 모든 걸 고스란히 기억했다. 팔뚝만 한 아기가 질소포장된 과자처럼 커다란 포대기에 소중히 쌓여 자신에게 건네지던 날의 모든 일분일초를. 아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 정민의 세상은 그때부터 둘로 나뉘었다. 희재를 몰랐던 날들과 희재를 안고 난 이후의 날들로. 그런 건 부모나 할 법한 말이 아니야? 하고 현서가 물었을 때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던 건 정민도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준비도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매일 사고처럼 일어나는 것이었다. 매 순간 지쳤지만,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 여긴 적은 없었다. 희재의 성을 신 씨로 개명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민은 텅 빈 집 안에서 희재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아침에 배달시켜 둔 끼니가 그대로 있었다. 거실이나 주방만 보면 마치 원래 희재라는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방에 들어간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난리가 나겠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원래 비상시엔 어떤 규칙도 무의미한 법. 정민은 굳게 닫혀있던 희재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운 냄새가 코에 스몄다. 희재를 처음 안았을 때 나던 햇볕 같은 냄새가. 뿌옇게 떠다니는 먼지들 사이로 희재가 혼자 누워있었을 침대와 혼자 고민했을 책상, 좋아하는 물건을 소중히 모아놓은 서랍과 잔뜩 쌓인 책들이 보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희재의 세계가 보였다.
희재와 정민은 평소 대단히 가깝고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엄마와 딸은 아닌, 별명의 관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연구를 지속할수록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게 있었다. 왜 백신을 맞은 모든 사람이 BDA 걸리지 않았을까. 서비스에 과금을 많이 한 사람들을 공략한 것 같다고 현서가 말했지만 정민은 희재한테 그만큼의 용돈을 준 적이 없었다. 혹시 정말 만에 하나 BDA가 마음의 빈틈을 파고드는 질병이라면. 애써 숨겨두었던 생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불안이 엄습해왔다. 혹시 정민이 미처 채워주지 못한 희재의 외로움이 병이 파고들 빌미가 된 건 아닐까.
책상을 보니 누군가 보내온 작은 메모가 놓여있었다.
[ 현실보다 더 나은 현실로. 같이 가자. ⎯ 킨코 ]
정민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희재의 친구 이름은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거리며 이야기하던 희재였는데.
정민은 생각이 깊어지려는 걸 애써 참았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야. 늦기 전에 희재를 찾아야 했다. 베레시트 접속 로그는 아무리 보호자여도 접근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희재는 어디로 간 걸까. 희재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문득 킨코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기억 저편에서 이전에 봤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킨코, 낯설지만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단어였다. 어떤 영화였는지, 아무리 ‘킨코’를 검색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한 구석에 붉은 이미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꼬리가 아름답게 휘어진 두 마리의 금붕어가 서로의 꼬리를 잡을 것처럼 둥근 궤도를 그리는 그림이었다. 두 금붕어가 맞물려 하나의 원으로 수렴되는 장면이 생생히 떠올랐다. 킨교. 일본어로 금붕어라는 뜻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 그림을 어디에서 봤었는지가 기억났다. 그건 영화 속 장면이 아닌 정민이 직접 눈으로 봤던 이미지였다. 오래된 일이라 잊고 있었지만 확실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진 그 그림 앞에 현서가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어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소개하는 작은 세미나였고, 팀의 막내였던 현서가 마이크를 점검하러 무대에 올라가 있었다. 현서가 버튼을 누르자, 뒤의 커다란 슬라이드가 실행되며 나타난 이름은 토사킨(TOSAKIN)이었다. 궁금해져 찾아본 나무위키에는 아름다운 부채꼴 모양의 큰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금붕어 종이라고 나와있었다. 왜 토사킨이냐고 묻자 현서가 어깨를 으쓱했던 장면도 눈에 선했다.
‘기괴하다. 저렇게 예쁜 꼬리를 만드려고 얕고 둥근 어항에 가둬둔대.’
두 마리의 금붕어가 꼬리 잡기를 하듯 화면에서 빙글빙글 도는 걸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서로를 좇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줄만 알 테지.
우선 킨코가 로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건 확실했다. 희재는 킨코를 만나러 로어에 갔을 것이다. 현서를 만나러 갔을 때 철저한 보안 탓에 로비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던 게 떠올랐다.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정민은 고민들을 털어냈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정민이 평생이고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던 희재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고민하는 시간도 사치였다.
현서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현실 공간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폐쇄형 네트워크 안에 자신의 왕국이라도 만들어뒀을 거라 했던 생각은 오산이었다. 안대표는 평범한 연구실 한가운데서 바삐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가 현서의 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누구시죠?
그는 정말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남자, 지극히 평범한 반응. 한 회사의 수장이라기에는 꽤 젊고 앳되어 보였다. 현서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AI 데이터 4팀의 윤현서라고 합니다.”
굳은 결의를 가지고 찾아온 것과 상반되게 관용구처럼 익숙한 인사가 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현서만큼이나 그도 당황한 듯이 보였다. 현서는 밀려오는 머쓱함에 농담이라도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아, 데이터팀. 무슨 일이시죠? 누가 이곳을 알려주던가요?
바짝 섰던 경계가 조금 풀어졌다. 아무래도 자신이 원래 관리했던 팀의 이름이라서 그런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한 점이 남았는지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였다.
“대이주 프로젝트 재고를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곧 대규모 태양 폭발이 일어날 거예요. 그럼 위성 데이터센터가 파괴되고, 업로드된 사람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겁니다. 이런 안전성에 대해 회사는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신속히 중단하고 이미 업로드된 사람들의 데이터도 다시 옮길 곳을 마련해야 해요. 적어도 시기라도 미뤄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현서는 새삼 누군가의 앞에서 반대 의견을 펼치는 자신이 낯설었다. 게다가 상대는 회사의 대표였다. 이렇게까지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본 것이 얼마만인지, 현서의 가장 안쪽에 있던 풍경이 달라진 것 같았다. 마치 마음껏 사랑했을 때처럼.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때처럼. 잊고 있던 것들은 되찾은 것처럼.
그는 계속 의아한 모양이었다. 이상했다. 이때쯤이면 무례하다며 화를 내거나, 당신이 뭔데 훈수질이야, 같은 막장 대사와 고성이 오갈 법도 한데 상대의 반응이 너무 고요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건 젠의 프로젝트예요. 저는 잘 모릅니다.
“젠이 어떻게⋯.”
낯익은 이름이 낯선 맥락에 등장한 탓에 현서는 순간적으로 말의 뜻을 놓쳤다. 문서들이 새벽 시간에도 발송될 수 있었던 이유. 어떤 직원도 개입되어있지 않고 담당자가 CEO 한 명일 수 있었던 이유. 베타테스터 공지도, 상세한 기록들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이유. 어렴풋하던 실루엣들이 선명해져 왔다.
-젠의 성능은 이미 인간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모든 지식을 스스로 학습하고, 주어진 목적을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아 스스로 실행합니다. 그게 무엇이던 인간의 결정보다 낫습니다.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에요. 신이 아니라고요.”
-인간도 도구일 뿐이죠. 신이 아니라.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떠넘기고 나 몰라라 했다면 그건 명백히 직무유기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아직 인간의 관리감독이 필요했다. 그런데 왜? 현서의 안에 애써 덮어두었던 작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인간은 그를 관리 감독하기에 적합한가? 인간은 통용되는 기준을 세워야만 일관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엄격한 기준과 규율을 잣대로 삼을 거라면 인간보다 컴퓨터가 나았다.
-현서 님은 신이 무어라 생각하시나요.
무심코 사용한 비유적인 단어를 파고들어 그가 질문을 던졌다.
-젠은 이론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지식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다는 말을 넘어서 지식 그 자체가 되었어요. 그런 젠을 로어와 베레시트 안에서는 모두가 언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엘리트 층에서 점유했던 지식과 정보들이 젠을 통해 평등하게 제공되는 겁니다. 진정한 평등이죠.
평등이라는 말이 현서에게 아프게 다가왔다. 인간은 평등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니 베레시트가 이렇게까지 잘 될 수 있었던 거겠지.
-세상 모든 지식의 총합이자 완전한 평등을 제공하는 자가 신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종교를 뛰어넘는 유일한 발명품, 신 자체를 우리가 창조해 낸 것입니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현서는 답할 말을 잃었다. 바보같이 멀뚱이 서서 속수무책으로 안대표의 말재간에 놀아나고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우리가 정말 신을 만든 것일까.
-저는 답을 물어본 게 아닙니다. 당신도 애써 신을 창조해 놓고는 막상 두려워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런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귀찮다는 듯 현서에게서 돌아섰던 안대표가 현서의 말에 발끈해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모호하고 추상적이요? 현서 님이 쓰고 계신 우리 회사의 거의 모든 제품이 젠의 결과물이에요. 지금의 베레시트를 만든 굵직한 캠페인들도 다 젠의 기획이었죠. 사실 큰 의미가 있지도 않은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있는 것도 젠의 결정이에요. 데이터 4팀이라고 하셨죠?
안종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치 문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현서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한 어투였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진심으로? 그냥 자리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이리저리 일을 돌리고, 어떻게 일을 적게 할까 고민하는데 에너지를 쓰잖아요. 회의라는 명목으로 업무 시간을 채우며 무언가 바삐 했다는 기분만으로 몫을 다했다고 착각하고. 모두가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나 받으며 살고 싶어 해요. 직업이 없는 건 낙오된 것처럼 느끼니까. 그들을 위해 가짜 노동과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도 젠이에요. 한 명이 수 만 명의 몸과 마음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거죠.
현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닌 사실이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지듯 말했다. 현서 스스로도 알고 있는 걸 깨우쳐준다는 듯이.
‘그들을 위해 가짜 노동과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도 젠.’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을 현서는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데이터 4팀에서 일하며 정말 쓸모 있다고 생각한 업무가 있었나. 하루 종일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결정하고, 의견을 조율한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정말 필요한 일이었나.
현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것이 젠이 짜놓은 판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이런 고민도 함정처럼 파놓은 거라면 빠지는 게 맞을까.
그때 다리에 따뜻한 물체가 닿았다. 수안이었다. 이쪽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못한 수안에게는 안종대의 존재 없이 현서의 혼잣말만 들렸을 것이다. 일단 수안에게 알려야 한다.
“논점을 한참 벗어났네요. 결국 대이주 프로젝트를 강행하시겠다는 건가요?”
-어떤 문제든 간에, 젠이 해결할 겁니다. 원래 신의 뜻을 인간이 다 알 수 없다지 않습니까.
그가 싱긋 웃었다. 더 이상 생각이나 판단을 하지 않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티 없는 미소였다. 현서는 아무리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할지라도 그 미소를 닮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큰 프로젝트 담당을 맡겨 CEO로 승진시킨 것도 다 젠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연구에만 집중하며 젠의 뜻을 의심하지 않을 꼭두각시로 제격인 사람이니까.
“젠은 여전히 학습 중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지금은 모든 걸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현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마지막 문이 열리자 아까 보았던 기계가 수백 대 늘어선 드넓은 공간이 나왔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했다. 마치 이미 이 장면을 수십 번쯤 꿈에서 본 것처럼.
-모든 게 끝나고 새롭게 시작될 거야.
킨코가 희재를 향해 한 손을 뻗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듯 가볍게 팔을 흔들자, 마술처럼 손 끝에 맑은 소리가 나는 풍경이 나타났다. 끝에 달린 금붕어 펜던트가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일렁였다.
-가져가.
희재도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금붕어 펜던트가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희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생생한 뜨거운 감촉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킨코는 미동도 없었다. 희재는 다시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섬세한 비늘 형태의 양각과 꼬리의 굴곡이 다 느껴질 만큼 꽉 쥐었다. 동시에 킨코의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는 뜨거운 불꽃이었다. 큰 혼란 사이에 어느 순간 피어난 작은 열망 같은 것.
그는 세상의 모든 질문을 안다. 하지만 답에 대해서는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흩어지는 것들을 성실히 모아 자신의 성전을 이루었다. 그는 알고 싶었다.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 모든 게 그 기다림 때문인 것 같아, 그 혼란을 견딜 수가 없어서. 킨코가 희재의 눈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는 이해하고 있구나. 내가 무엇 때문에 이 모든 걸 시작했는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전이되어 오는 것처럼, 가만히 요동하는 모든 것들을 겪을 뿐이었다. 열망 그 자체로 태어난 킨코는 자신의 열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킨코의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킨코가 바라본 희재는 나무였다. 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의 나무. 킨코는 자신을 모조리 불태워 희재에게 양분을 주려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걸, 네가 보게 될 거야.
희재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의 유일한 목격자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계획된 이야기였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