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의 보고

저는 이 굴레에 복종합니다

by 맑은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동물원이 하나 있다.
하루에 네 대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고요하디고요한 동물원이.

주말임에도 사람 하나 없는, 입구를 지키는 직원조차 찾아보기 힘들던 그 동물원. 파란색 방수페인트가 가루가 되어 흩날리던, 이건 명확한 '학대'라는 생각만이 들던 그곳.

2023년 8월, 김해시의 부경 동물원이 폐쇄되고 그해 11월에 그 삭막한 동물원으로 동물들이 옮겨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갈비뼈가 훤히 보여 '갈비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호랑이 바람이와 외로운 독수리 한 마리가.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통제하려고 한다. 재단하고, 규정짓고, 틀을 만든다. 그리고 하늘을 평화로이 활공해야 하는, 무려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를 날개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작은 케이지 안에 넣는다. 독수리의 세상은 금이 간다. 차갑고 딱딱한 선이 하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자연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정체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개는 나는 법을 잊는다.
사냥꾼은 사냥감이 된다.

인간들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인간이 없다면 굶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몸이 된다. 그렇게 갈라진 세상에 적응하고, 자신을 잃는다.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의 보고>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는 이 굴레에 복종합니다. (...) 그렇기에 저의 과거로부터 불어왔던 폭풍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은 단지 저의 발꿈치를 간질이는 바람일 뿐입니다."

독수리는 이제 폐쇄된, 먹이를 던져주는 이가 사라진 동물원에서 탈출했다. 조금 더 인도적인 환경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다닐 수 있는 또 다른 우리로 들어갔다.

그 독수리가 찾은 건 자유일까, 출구일까.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닐 수도. 독수리가 겪은 과거의 폭풍은 잠잠해졌을까.

내가 살던 동네에 있던 그 동물원,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청주 동물원은 10년 사이 내 기억과는 꽤 달라진 곳이 되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주는 '동물 구입비'를 받지 않기로 선언한 최초의 동물원이 되었고, 멸종위기종이나 토종 동물들을 보호하는 생츄어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 나조차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그렇게 오늘도 여전히 세상은 많은 생명을 사고,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