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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Dec 31. 2017

안녕 2017

한 해를 정리하며

안녕2017

 2017년의 마지막 날, 미루고 미루던 한 해의 정리 글을 겨우 쓴다. 벌써 몇 년째 연례행사같이 쓰고 있는 글이라 12월 내내 오늘은 써야지, 내일은 써야지 하면서도 한 해가 끝난다는 감흥이 없어서인지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스물일곱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는 누군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스물여덟이라 대답하게 되겠지. 사실 스물다섯이 지나고나서부터는 나이가 주는 느낌이 뭔가 낯설어졌다. 그냥 나에게 딸려오는 숫자같이 느껴지기만 한달까. 그래도 역시 한편으로는 적당히 나이에 맞게끔 채워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놓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나는 늘 영화를 보면 러닝타임을, 책을 읽으면 책의 쪽수를 먼저 확인하곤 한다. 그래야 내가 어디쯤을 보고 있는지, 기승전결 중의 어느 단락에 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2017년은 내 삶의 러닝타임 중 어디쯤에 놓여있었을까.


 사실 2017년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었다. 지나고 보니 모두 소중한 순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뻔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떤 해였는가 적어보자면, 나에게는 좀 더 나를 들여다보는 한 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쭉, 내가 꽤나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어릴 때도 커서도 주변에 늘 사람이 많은 편이었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도 부담을 느껴본 일이 없었고, 새로운 사람에게도 금잘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의 장점 란에 친화력이나 융화를 적어 넣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 가사 실은 그다지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저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외향적일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실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면 쉽게 지치는 사람이었고, 잦은 만남보다는 조용한 휴식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외부의 기준에 나를 자꾸 맞추려고 하다 보니 과하게 밝고 과하게 외향적인 모습으로 포장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올 해엔 굳이 나의 진심 이상으로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가식이었고, 어쩌면 의무감이기도 했던 나의 행동들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내겐 많으리라 믿기로 했다. 아니 그 수는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그리고 내가 가진 감정의 양이 많지 못함을 인정하고 가지고 있는 것 안에서 최대한 많이 나눠주기로.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외향적인 인간이어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나의 개인적 인간관계에서는 지나친 감정의 과장보다는 좀 더 나의 진심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인간관계의 폭이 확 내려앉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한 해동안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물론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멀어지기도 했지만, 또 반면에 누군가는 내 좁아터진 감정을 비집고 들어와 주기도 했다. 물론 못된 나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항상 뭐 어떻든, 어쩔 거야? 하며 막무가내로 괜찮다고 확신할 용기가 생긴다.


 나다운 게 사실 무엇인지 아직 확신은 없다. 나의 취향, 나의 선호, 나의 가치관. 하나도 분명하게 그려지는 게 없다. 2018년에도 나는 내가 믿어왔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한 해를 또 쌓아 올린다는 것은 어쩌면 거울을 등지고 서있는 나를 점점 거울 앞으로 돌려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가는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 고마웠어 올 한 해도! 안녕 2017, 안녕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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