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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Mar 09. 2018

사소한 것들로부터 나 자신 마주하기

小訴한 기록11_진짜 나를 찾아서

 어떤 날의 내가 진짜 나와 가장 가까울까. 진짜 나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만약에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게 있는 거라면 그럼 나머지는? 걔네는 죄다 가짜인 건지.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라는 영화의 리뷰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밖에서 쓰고 돌아다니던 가면을 벗는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집에 도착하는 순간 가방에 넣어뒀던 다른 가면으로 바꿔 쓰는 기분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대와 그것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주입된 형상 외에 다른 모습은 생각해 볼 틈조차 없었던 성장환경, 남과 다른 모습은 안된다는 사회 통념 같은 것들이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도 모르게 만들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나와, 학습된 나, 그리고 내가 바라는 나라는 세 가지 모습이 한데 섞여 존재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꽤나 다 큰 어른인척 하곤 했. 언제나 나 자신을 스스로 정말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어른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부쩍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외적으로 규정되는 것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을 국적으로 갖고 주민등록 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여성이고, 대학 졸업장엔 문학사가 적혀있고, 가족 관계 구성원은 어떻고.. 그런 것들 말고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도 날 알아줄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내 취향, 내 선호, 내 가치관에 대해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고려하고 존중해 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나의 밖에 있는 것들에 시선을 두고 살아왔다.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자기검열이 심한 성격 탓이기도 했다.


 꽤나 까탈스럽고 꽤나 내향적인 사람임에도 늘 외향적인 인간을 지향하며 살아왔다. 사실은 구석진 자리에서 책이나 읽고 낮잠이나 자는 게 좋았는데, 자꾸만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남들 앞에 나서는 자리를 맡아서 했다. 그게 좋아서라기보단 그게 맞는 일인 것 같아서 그랬다. 내 기준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서.


 요즘은 아주 사소하더라도 기분이 좋았거나 또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휴대전화 메모장에 얼른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그래서 뭐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강화하고 보완하고 어쩌고 하는 식의 자기계발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본래의 나 자신을 나 스스로 꼭 알아주고 싶어서.


 오늘의 나는 내가 행복해하는 두 가지 순간을 발견했고, 기분이 나빠지는 포인트 하나를 찾았다. 이 모든 순간이 차곡차곡 모여서 어느 날엔가는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겠지! T_T 그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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