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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Mar 08. 2018

02. 스타트업에 어울리는 사람

나는 스타트업 필드에 뛰어들어도 되는 사람일까, 아닐까?

나는 스타트업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나'라는 사람에 대해 먼저 고민해보자. 나는 어떤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조직에서 일했을 때 제일 적당한 사람일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직업을 가지기 전에 내가 어떤 조직에 적절한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조차도 대학 졸업을 앞두면서 겨우 시작했으니, 조직문화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볼 짬이 되었을 리 없다.


 대졸 신입사원의 절반 이상이 입사 첫 해에 퇴사를 선택하는데, 퇴사 요인중 1,2위가 적성과 맞지 않는 업무와 조직 문화 부적응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업(業)을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토익 점수 나부랭이나, 워드프로세서나 컴활 같은 자격증 따위가 아니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적성조직문화다.


 이는 본질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문제이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혹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지, 무엇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지, 내 기본 에너지가 어느 정도 되는지,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는 어느 정도가 편안한지 등등!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어떤 모양새의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할지 비로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직업선택 방법은 너무나도 구식이다. 구식이라기보다 수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식품안전기준이나 기술표준처럼, 사회가 원하는 표준안에 따라 나를 이리저리 때려 깎아 넣어서 틀에 찍어내면 월급쟁이가 되는 삶.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그렇다.


 물론 어릴 때부터 꿈꾸던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오랜 시간 스스로를 연마해 그 꿈에 도달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그렇지 못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졸 학력자의 9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에서 남들 다 가니까 나도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을 4년쯤 다니다 보니 취업할 때가 되어 취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회사들이 원하는 토익, 스피킹, 컴활, 한국사 같은 자격증을 또 주르륵 딴다. 성적에 맞춰 지원했던 대학 입시나 다를 바 없이, 내 적성에 대한 고려보다는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 원서를 넣는다. 그러다 합격이 되면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직장인(=월급쟁이)이 되는 것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중, 고등학생에게만 국한된 질문이 아니다. 이미 성인이 된 나도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야 할 과제다. 예전과 달리 현재는,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평생직장', '평생직업'의 개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나왔던 것들이 오늘 사라지고 내일은 또 다른 게 튀어나오는 세상. 일도 조직도 매일매일 천지개벽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 무엇도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어떤 일에 적합하고, 어떤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단 나의 경우, 불과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자신이 정형화되지 않은 조직에서 일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는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더 좋은 사람이었고, 규칙적이지 못한 삶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계획이 제일 중요하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쉽게 지쳤다. 나는 보수적인 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해 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규칙 / 계획 / 원칙 / 사고 / 완벽 / 정형화 / 논리 / 규범


 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어놓고 보니 엄청 까탈스러워 보이는 타입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보기에 어떤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타트업 조직에 적합한 사람 같아 보이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스타트업 조직은 말 그대로 이제 막 시작하는 조직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때로는 아이템만 있고 사업의 방향성 조차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먹구구식 일처리가 되는 것도 다반사. 회사의 일처리에 필요한 각 분야를 전담하는 구성원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맡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늘 정신이 없고, 늘 새로운 일이 터진다. 이미 굴러가는 중이던 회사에 다닐 때는 매뉴얼이 있고 사수가 있었지만, 여기는 허허벌판이다. 뭘 좀 참고했으면 좋겠는데 별 다를 게 없다. 구글이 최고의 선생님이랄까..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조직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중일까. 정답은 바로 내 가치관에 있었다. 이 조직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도 내 가치관에 있었다면, 적합한 이유도 내 가치관에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전까지의 스타트업은 완전 아노미 상태의 조직이다.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 우리 모양새가 딱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내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새롭게 생기는 일들 (솔직히 표현하자면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사고 수준이었다.)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기록을 남겼다. 다음에는 그 일에 대해 내가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룰이 없는 곳에 룰을 세우는 것이 나의 강점이자 특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곧 조직 속에서의 내 역할이 되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로운 일은 매일 터진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그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갑작스러운 일이 터지면 계획했던 일정들이 뒤로 밀리게 되고, 끝내야 하는 일들을 잔뜩 끌어안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쳐다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곳만큼 나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또 없다. 융통성만 가득한 곳에서 규칙을 쌓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다.


 사람은 60억이면 60억이 전부다 다른 존재다. 우리가 한국 사람은 어떻고, 중국 사람은 어떻다고 일반적인 공통점을 들어 이야기하긴 하지만, 개개인을 만나보면 국가적 특성 외의 오롯한 개인만의 고유성이 보인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대기업만의 특성이,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만의 특성이, 스타트업은 또 스타트업만의 특성이 있다. 하지만 조직의 리더, 구성원, 가치관, 사업 영역, 환경 등에 따라 저마다 조직문화가 천차만별이다.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모두 아이디어가 넘치고, 플렉시블 한 사람과 조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조직이겠지만, 분명 그 속에서도 규칙과 체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안정적인 조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단은 '나'라는 개인에 대한 이해와 '특정 조직'이라는 개별적 대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 편의 글에서 모두 다루기에는 조직문화의 일면들이 너무 많아 전부 소개하지 못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꼭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민의 범위가 너무 넓고 깊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만이라도 체크해 봤으면 좋겠다.



 앞서 썼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충족되는 환경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곳은 없어! 일단 어디든 가야 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 합류한 조직이라면 정말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1) 무조건 버티거나, 2) 몸도 잃고 마음도 잃고 퇴사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은 정말 싫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기준이 있어야 따져볼 수 있고,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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