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멜리 Sep 12. 2018

무엇을 훔치는 중이셨나요

그냥 궁금해서요!

 올여름 무더위를 혹독하게 앓고, 서버 해킹 등의 쇼킹한 이슈들로 정신이 없어 브런치 관리에 조금 소홀했었다.

오늘 무비 패스 시사회에 갈 일이 있어 며칠 만에 로그인해보았는데, 이게 뭐람?

 이번 주 통계에 카피킬러가 며칠에 걸쳐 계속 잡힌다. 온라인 기고를 많이 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카피해서 과제물이나 보고서 등에 넣었는데, 거의 수정하지 않고 넣어서 그 내용이 카피킬러에 잡혔고 그 과정에서 걸려드는 거라고 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께서 무엇을 가져가셨는지, 내가 이 곳에 올린 얼마 안 되는 글 중에 무엇이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의 생각을 훔쳐주었다니! 훔쳐가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실 수 있을 정도의 글은 올린 적이 없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어딘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는 글에 남의 텍스트를 고대로 가져다 훔쳐 넣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깝게 여겨질 뿐.


 중학교 졸업식 때의 일이다. 인문계와 실업계, 또는 제3의 길로 각자의 진로가 정해지고 난 중학교 3학년의 교실은 상시 상영하는 영화관이나 다름없다. 교실에 앉아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당시 옆반 담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호출했다. 졸업 신문에 실릴 졸업생 대표의 졸업사 때문이었다. 전교회장을 맡았던 친구가 하는 것이 보통 관례였는데, 선도부장이었던 나를 왜 부르는지 의아했다.


 의아함도 잠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ㅇㅇ이가 뭐라고 졸업사를 써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대. 네가 글을 잘 쓰니까 샘플로 글을 한 편 써주면 어떨까? 그걸 참고해서 다시 쓸 거야." 좀 께름칙했지만 뭐, 다시 쓴다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마지막이니 좋게 좋게 한다는 마음으로 다음날 바로 글을 한 장 써서 가져다 드렸다. 내 관점이 아닌 전교회장의 관점으로 나가야 하는 글이니, 개인사나 일화는 배제하고 일반적인 졸업사의 모양을 뒤집어쓴 천편일률적인 글을 한 장 써다 드렸다. 선생님은 고맙다며, 글을 참고해서 쓴 새 글이 신문에 나갈 것이라 했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 상을 받기 위해 단상 앞에 앉아있던 나에게 졸업 신문이 전달되어 왔다.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황당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곧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쓴 글이 고대로 신문에 실려있었던 것이다. 전교회장이었던 친구의 이름과 사진이 함께 붙어 있었다. 그 국어 선생님에게 찾아가 항의했지만 이제와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내가 쓴 글인데, 왜 이렇게 하셨냐고 소리쳤는데 선생님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만 하셨다. 


 그날의 졸업기념 신문은 아직도 내 방 상자 속에 고이 들어있다. 가끔 쓸데없는 욕심이 나는 순간에는 그 신문을 꺼내어 보곤 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한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별일도 아닌 것에 쉬운 길을 택한 사람의 인생이 어떠한지 생각하며 그 신문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어쩐지 "이런 애들 불쌍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동정심이 샘솟기도 하고, 어쩜 내이름 달고 나갈 글 아니라고 이렇게 유치하고 촌스럽게 대충 썼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궁금하다. 

당신은 어떤 것을 들고 가셨나요? 부디 다음엔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10년쯤 지난 신문이라 종이라 노랗게 바랬다. 하필 이렇게 유치찬란하게 쓴 글을 고대로 이름만 바꿔서 내다니, 너와 나 상호간의 흑역사..★





매거진의 이전글 반려나무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