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2018) 리뷰
<관상>, <궁합>에 이은 역학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편, 영화 <명당>이 9월 19일 개봉한다. <내부자들>(2015) 이후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조승우는 물론, 지성, 백윤식, 김성균, 유재명, 문채원, 이원근 등 구멍 없는 연기파 배우들로 꽉 찬 영화 <명당>. 아직 개봉까지는 한 주 정도 남았지만, 브런치의 무비 패스로 개봉 전 미리 만나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땅'이 중요한 세상에 산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요즘의 우스갯소리처럼, 예전엔 좋은 땅을 가진 양반들이 그 시대의 조물주나 다름없는 왕을 이겨 먹고살았다. 현대의 우리가 '빅데이터'와 같은 것들을 좇으며 미래를 읽기 위해 노력하듯, 과거의 우리 조상들 역시 사주, 관상, 풍수지리와 같은 것들을 가지고 미래를 읽고 이해하려 했다. 모두 일종의 통계학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내일이 궁금한 사람들이다. 영화 <명당>은 앞날을 내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주도적으로 바꿔나가려는 인물들의 갈등과 욕망을 그렸다.
풍수지리
영화 <명당>은 땅의 기운을 읽어 인간은 물론, 국운까지 바꾸는 천재적인 지관 박재상과 명당을 얻어 권세를 누리려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 욕망을 그렸다. 학교 사회시간에 배산임수 지형이 좋은 지형이라 달달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지형. 풍수지리는 관상이나 손금만큼이나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사상이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높은 시선의 조감도를 훑어보며 명당자리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명당'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각각의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였다.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린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로,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김부자'(백윤식-김성균)의 집, 사건의 주요 핵심이 되는 능 터들의 구성, '가야사'로 등장하는 전남 구례의 '화엄사'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크린이 큰 상영관(롯데시네마 롯데타워점)에서 관람하였는데 스크린이 작았다면 조금 아쉬울 뻔했다. 얼마 전 수락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던 때가 생각났다. 산세와 집들의 구조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시야가 탁 트이는 장관을 선사한다.
역사적 배경
배우 지성은 영화 <명당>에서 '흥선대원군'으로 분했다. 조선 후기 '헌종'의 재위 기간을 주요 배경으로 해서 그려지기 때문에 아직 '흥선대원군'이 아닌 '흥선군'으로 등장한다. 실제 인물과 역사를 바탕으로 탄생한 사극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역사에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색다른 재미를 준다. 우리가 이미 역사적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당>이라는 소재를 통해 재해석된 스토리가 흡입력 있게 극을 끌고 간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조금 더 알아보자.
주요 시기를 도표로 정리해 보았다. 영화 <명당>은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 사후에 추존되었으며 배우 김민재가 연기했다.)의 사망과 묏자리 선정으로 시작한다. 정조 이후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역사적으로는 '세도정치' 시기라 한다. 세도정치란 조선 후기, 특히 19세기에 하나 또는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좌지우지되던 정치 형태를 말한다. 조선은 유교국가로 국정의 정점에는 국왕이 있어야 하는데, 세도가의 패권 장악으로 국왕의 권력과 권위가 크게 무너지고 부정부패가 들끓었다. 조선왕조 몰락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주요 가문인 '안동 김씨' 집안이 영화 <명당>에도 등장한다. 정조~순조 대의 실제 인물인 '김조순'의 묏자리가 영화의 핵심 소재가 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김좌근'은 배우 백윤식이 맡아 연기했다. 영화에서는 '안동 김씨' 대신 '장동 김씨'라 부르는데 이는 실제로도 존재하는 명칭으로, 안동 김씨 장동파를 일컫는다. 김성균이 연기한 '김병기'는 실제 김좌근의 양자로, 흥선군을 매우 무시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다.
배우 지성이 맡은 '흥선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고종(1863년 즉위)의 아버지로 본래 '흥선군'으로 불리다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면서 '대원군(신왕의 생부가 받는 존호)'이 된다. 영화 속에서는 아직 헌종 시기이기 때문에 흥선군으로 불린다. 흥선군은 왕족이지만, 세도가문의 멸시와 핍박, 견제 아래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야심 없는 파락호를 자처했다. '궁도령', '상갓집 개'라고 불릴 정도로 납작 엎드려 살던 흥선군 이하응은 사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훗날의 고종)'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다. 영화 <명당>에서는 '상갓집 개'와 '야망을 숨긴 몰락 왕족'이라는 캐릭터를 엄청난 내공으로 표현해 낸 지성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흥선군의 사촌이자 친구로 등장하는 '회평군' 이원경(배우 강태오) 역시 실제 인물이다. 후사 없이 승하한 헌종의 뒤를 잇는 철종의 이복형이었고, 헌종 10년에 옥사하였다. 흥선군의 다른 친구들로 등장하는 천희연(배우 태인호), 장순규(배우 조현식) 등도 모두 실제 역사 속 흥선군의 측근들이다.
실제 흥선대원군의 묘 이장 기록
흥선대원군은 실제로 지관의 조언을 받아 2명의 왕이 나오는 묏자리로 자신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 이 묘지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오페르트 도굴 사건'에 등장하는 묘지다.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는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흥선대원군과 통상 문제를 흥정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다가 실패했다.
흥선군이 처음 지관에게 조언받은 장소가 바로 영화에도 등장하는 '가야사' 자리다. 실제로 흥선군은 가야사에 불을 지르고 탑을 헐어 이 자리에 아버지 묘를 세웠다. 명당자리에 모신 아버지 묘지의 도굴을 막기 위해 철을 수만 근을 붓고 강회를 발라 비빈 후에 봉분을 올렸다 한다. 이때 흥선군에게 이 같은 사실을 조언했다고 알려지는 당대의 명지관 '정만인'이 영화 <명당>에도 등장한다. 역사적 고증도 잘 되었을 뿐 아니라, 각 소재와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훌륭하게 재배치한 영화다.
<삼국지연의>의 '초선'
배우 문채원이 연기한 '초선'은 실제 조선 후기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인물이 중국의 대표적 고전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등장한다. 삼국지연의 속의 '초선'은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충의지사'와 '여포의 대사를 그르치는 아내'의 모습이다. 처연하면서도 강직한 표정의 <명당> 속 초선. 문채원의 초선은 어떤 모습일지, 영화 <명당>을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재미있다. 정말로 재미있다. 영화 <명당>은 소재, 배경, 스토리, 구현 등 여러 관전 포인트를 가진 영화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하나를 꼽자면 '구멍 없는 연기파 배우들의 알찬 열연'이다. 공감성수치가 있는 편이라 배우의 연기가 어색하거나 이상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불안 조마조마해하는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장점이었다. 존재감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서로 부딪히는데도 어색함이나 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마다의 억양과 표정이 모두 살아있다. 온갖 것들을 쏟아부었는데도 그릇이 충분히 크고 넓어, 넘치지 않고 찰랑이는 대접 같다. 특히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의 연기와 딕션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영화 중후반 빠른 속도로 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이지 귀에 대사가 날아와 꽂히는 줄 알았다.
스토리는 엉망이지만 배우의 연기력이 '하드캐리'한다는 막장드라마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토리도 완벽한데,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압도적이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몰입이 깨지지 않는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영화 <명당>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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