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멜리 May 15. 2017

그래비티와 아바타,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에서

小訴한 기록3_인문학과 과학

 2013년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공간에 홀로 남은 인간이 갖는 압도적인 고독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의 역경 극복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SF영화인 그래비티는 절체절명의 위기와 극적인 극복을 통한 완결이라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영화는 우주공간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3D기술을 이용한 촬영 기법을 사용하였다. 엄청난 특수 촬영 효과와 컴퓨터 그래픽 기술 등을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우주 묘사를 완성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실제 우주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이 우주 미아가 되어 고요하고 광활한 공간속에 혼자 내던져진 느낌을 받았다는 평을 내렸다. 관람자들 중 일부는 영화를 보며 밀려오는 고독이 주는 공포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관객이 꽉 찬 영화관 속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감성을 논할 때, 과학과 인문학 중에 오직 한 가지 도구만을 이용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학을 선택할 것이다. 인간과 인류문학 전반에 관심을 갖는 것이 곧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학을 인간적인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낼 것이다. 이처럼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등을 마주 대고 있는 학문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진학선택 과정만 보더라도 인문계와 이공계라는 이분법적인 분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문이 아닌 것이 과학이고, 곧 과학이 아닌 것이 인문이라고 정의하는 편견을 갖게 된다. 물론 인문과 과학은 서로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학문은 분명 인간이라는 공통된 출발점이자 지향점을 가진다. 마치 어린아이가 서투른 걸음을 내딛기 위해 양손에 부모의 손을 쥐고 걸어가듯, 인류는 과학과 인문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이 중요시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학문 모두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그 한계점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소통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인문학의 경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적이고 물질적 가치 중심의 세태 속에서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더 이상 인문은 인간 삶의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가 아니며, 경제나 기술과 같은 실용적 학문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경제적 관점에 의해 먼저 판단되는 세상에서 비 실용학문인 인문학은 설 자리를 잃고 점점 도태되고 있다.

 과학의 경우 인문학과는 반대로 그 자체의 존재 가치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으나, 지나칠 만큼 빠른 과학 발전 속도에 비해 이에 관계되는 다른 구성 요소들이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군사 무기 개발이나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과학은 현대의 많은 학문들 가운데서도 사회 전반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지닌 분야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것만이 아니며, 그로 인한 책임은 인류 전체가 함께 지게 된다. 학문으로서의 과학 발전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의 적용 여부에는 과학 외의 다른 분야가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가 보여주었듯, 이미 발전된 과학을 제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이처럼 인문과 과학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둘은 인류를 앞으로 이끌어 나갈 중요한 요소들로, 서로의 장점은 곧 상대의 취약점을 보완해 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실용적 요소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 인문학은 과학이라는 실용학문을 통해 그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빛낼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윤리도덕적인 부분에서 취약점을 보이는 과학의 경우 인문학과의 연계를 통해 과학 발전에 수반되는 윤리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과 과학은 그 본질적인 지향점은 같을 지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점들에 의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학문적인 분야에서의 소통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의 인식부터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이분법적인 사고 개선과 이에 따른 소통의 필요성 인식은 학문 간의 벽을 허무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대중의 학문간 소통을 위해서는 대중과 친밀한 것들을 활용해야 한다. 이미 과학과 인문학이 한데 융합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이 별로 느끼지 못하는 분야들이 있다. 바로 문화 콘텐츠들이 그 예이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영화 <그라비티>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 무대 공연, 디지털 출판 시장 등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인문과 과학의 공조를 통해 생성되고 있다.

 지난 2009년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 되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역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3D영화였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을 나타내는 아바타(Avartar)는 산스크리트어의 아바타라(Avatara)에서 온 말로 힌두교의 신을 의미하는데, 이 신은 세상의 죄악을 물리치기 위하여 오는 존재로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아바타는 인간과 외부 행성 토착민의 DNA가 결합되어 탄생한 또 다른 생명체를 의미한다. 주인공의 아바타가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고,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에서 이 영화의 모티프가 힌두교 신화의 차용임이 나타난다. 영화 아바타는 신화적 상상력이라는 인문학적인 요소에 디지털 미디어 과학기술을 결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대중의 욕구를 완벽히 만족시킬 수 있었다. 즉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인문을,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밖으로 구현시켜 낸 것이다.

 디지털 출판 시장이나 미디어 아트들도 마찬가지이다. 인문은 더 이상 종이 위에만 표현되는 시대를 벗어나 컴퓨터, TV, 스마트 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 될 수 있게 되었고, 붓으로 그리거나 정으로 두드려 만들어 내던 미술 작품들이 과학 기술을 통해 보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인문이 가진 방대한 상상력이 과학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인문과 과학의 소통과 융합은 우리 삶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문과 과학이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많이 이용된 영화의 제작 과정과 각 기술들이 어떠한 시나리오적 요소를 구현해 내기 위해 사용되었는지 설명하는 메이킹 필름을 제작해 공개한다거나, 간단한 미디어 아트들을 대중이 직접 제작해 볼 수 있도록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에게 과학과 인문의 결합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이 무엇을 담을지를 논한다면, 과학은 이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선택한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아빠와 엄마라는 두 가지 역할 중 어느 한편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과 인문학은 인류의 발전이라는 전 인류적인 과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축이다. 이 두 축은 안정적인 인류 발전을 위해 함께 발맞추어 성장해야만 한다. 두 학문의 학제 간 연구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과학과 인문이라는 이분법적 분류의 편견을 깨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영화 아바타가 동일한 스토리를 단순한 연극적 분장과 무대 구성만을 가지고 촬영했다면 그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래비티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에 고립된 인간이 갖는 고독이라는 감정적인 요소 없이 단순히 기술과학을 통해 우주를 구현하는 것에만 그쳤다면, 결코 대중은 현재의 감상평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학문의 소통은 학문적으로도, 그리고 학문 외의 분야에서도 활발히 이루어 져야만 한다.

 다만, 개인에게 과학과 인문을 모두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일반적인 소통책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방편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외려 독자적인 발전 분야는 독자적으로 발전 및 교육할 수 있도록 존중 하되, 성장하거나 그 과정에 있는 두 학문을 어떠한 방식으로 융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 융화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보여주리라 생각된다. 예시로 들었던 두 영화의 성공이 보여주듯, 인문과 과학이라는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소통할 때, 결국 그 결과물이 인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와 일상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