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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May 22. 2017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小訴한 기록4_20170521

 사람들은 종종 나의 오늘이었다가, 내일이다가 곧 어제가 되어버리곤 한다. 나의 약국봉투에는 만 스물 다섯이라는 글자가 찍히는데, 이것은 적어도 내가 만으로 스물 다섯해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알고 헤어져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이라 생각되는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10여년 이상의 커리를 정상적으로 착착 밟아온 나는 그동안 몇개의 교실을 지났을까. 몇 개의 교실, 몇 개의 책걸상에 앉아 몇 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만났을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왔었고, 또 떠났고, 또 그 중 누군가는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나만의 공간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처음 집을 떠나던 날. 칠벗겨진 파란 용달차에 올려진 내 얼마 안되는 짐들을 보며 '아 고작 요만큼이 온전한 내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독립을 준비하며 짐을 싸는 동안 박스를 줄줄이 세워놓고 가져갈 것과 남겨둘 것, 그리고 버릴 것을 나눠 담았다. 모두 내가 쓰고 있었거나, 쓸 것이었거나, 썼던 것들 중 하나였음에도 그것들은 서로 다른 결말을 맞았다. 독립해서 첫 번째로 살았던 집을 떠나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도 그러한 일은 다시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나의 본가와는 달리 임대하여 살던 곳이었으므로, 아무것도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내가 가져갈 수 없다면, 전부 버려지는 것들.


 내가 가진 짐들의 팔할은 옷가지와 책들이었는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즐기는 나는 어느 하나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옷 장에 걸린 옷 하나하나, 책꽂이의 책 한권한권이 모두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통해 나에게로 왔는지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어릴적부터 그랬다. 이 책은 겨울에 친구를 기다리러 서점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샀던 책, 그날의 날씨가 어땠는지 그 날의 친구와는 무엇을 했었는지, 그날의 나는 어땠는지. 하나를 떠올리면 줄에 꿴 낚시바늘이 저 먼 바다 밑에서 이름모를 것들을 전부 매달고 올라오듯 줄줄이 뭔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버리려던 것을 괜시리 부여잡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직 내게 남아있었음을 반가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생활 3년차의 내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공간에는 한계가 있어 쌓아온 짐들을 무한정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는 숫자로 매겨지는 평수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그러면 언제 굴러들어온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물건들이 제일 먼저 종량제쓰레기봉투로 입장하고, 그 다음은 거기에 담긴 내 감정들이 졸업한 물건인지 아닌지가 관건이 된다. 어떤 것들은 소중했었지만 이제는 별로 상관없어졌고, 또 어떤것은 아직 애틋하지만 더이상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몇개는 쉽게 휙휙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지만, 그래도 일부는 선택하지 못하고 남겨진다. 새로 싼 짐에 들어가지도, 쓰레기 봉투에 담기지도 못한 채로. 걱정할 것은 없다. 이사 직전의 내가 체력은 한 껏 바닥을 치고, 얼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남을 시점에 다다르면 바닥에 남은 것들을 싸그리 긁어 쓰레기 봉투에 넣고 입구를 묶자마자 밖에 내다 버려버리기 때문이다.


 며칠전 방바닥에 누워서 방 안을 이리 저리 둘러보는데 또 이사올때보다 짐이 늘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것이라 생각하는게 또 이만큼 늘었구나, 그치만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이 중에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겠지. 내가 지나온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으레 내 물건들에게 그렇게 하듯, 내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의미와 추억을 부여하고 또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더 이상 내 공간에 자리가 없음을 인지하면 하나씩 하나씩 몰래몰래 내다 버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내가 잊었던 누군가가 갑작스레 기억에서 튀어오를 때야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것들이 나의 과거가 되었다. 나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언제까지고 함께할 미래가 많을 것만 같았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로 남은 누군가의 기억속의 나, 그리고 나의 오늘이었던 사람들이 무작정 아쉬운 것만은 아니다. 또 어떤 것들은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기도 하니까. 다만, 버리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들 사이에 고민되는 것들을 남겨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독립을 하며 본가에 남겨놓고 나왔던 짐들 처럼 말이다. 어쩌면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짐들일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지 내가 맘만 먹으면 가서 꺼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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