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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Aug 08. 2017

내가 태어난 날의 신문

小訴한 기록6_20171026

1991년 6월 4일 내가 태어난 날의 신문

자기전 머리를 말리며 알쓸신잡 재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패널 중 누군가가 자신이 태어난 날의 신문을 찾아봤다는 내용을 보며, 어릴적 아빠가 보여주었던 내가 태어난 날 당신이 사두셨다던 신문이 생각났다. 본가에 가면 아빠가 사 둔 1991년 6월 4일의 신문이 어딘가 들어있을텐데, 아마도 경향이었던가.

내가 태어난 날은 천안문 사태 2주기였고, 일본에선 화산이 폭발했으며, 아직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운동권의 총리 폭행이라는 사건이 화두에 올라 있었다.

고작 스물일곱해를 살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했으나 웹으로 남아있는 신문 지면만 보더라도 얼마나 수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는지 알게 한다. 신문 속 기사들이 다루고 있는 사건에 대한 논조만 비교해 보더라도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면 구석구석을 채운 광고들에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기업과 브랜드들이 수두룩하다.

내가 태어나던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날, 예정일보다 며칠 일찍 세상문을 두드린 딸을 갑작스레 만났다. 엄마의 체구가 작은 탓이었는지, 너무 조그마한데다가 쭈글쭈글해 못생긴 갓 태어난 딸을 보고 엄마는 세 달을 울었단다. 제일 작은 베개 위에도 가뿐히 올라가던 작은 딸을 새벽에도 깨워 하루에도 몇번씩 젖병을 물렸고 간신히 두 살 무렵엔 정상 체중을 따라갔다고 했다.

인쇄소의 활자판들이 교체되고, 군사정권이 종결되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2002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나는 계속 자랐다. 매일같이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고 쏟아지는 기사들과는 관계없이, 달을 못채우고 나왔던 쪼끄마한 갓난애는 무럭무럭 자라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 이젠 월급쟁이가 되었다.

1991년 6월 4일 신문의 어느 한 켠에도 나는 없다. 나라는 사람의 출생은 신문에 기록될 만한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수 많은 아이들이 나와 같은 910604라는 여섯자리 숫자를 앞머리에 달고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가판대로 달려가 신문을 구매했던, 그 날 처음 아버지가 된 사람의 그 날 그 순간의 감정. 그것은 충분히 내 일생에 기록될만한 사건의 시작이었음이 분명하다.

문득문득 오늘의 감정을 남겨두고 싶은 날에는 이렇게 글을 쓰지만, 언젠가의 나에게도 오늘을 영원히 남겨두기 위해 그 날의 신문을 사러 뛰어가는 날이 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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