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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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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Oct 29. 2018

진짜 안녕한 나를 위한 마이웨이

불평 대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것

 지난주 토요일, 급하게 준비해야 할 시험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오전 내 일을 마쳐 놓고, 오후엔 카페에 가서 공부를 좀 했다. 추가로 구입해야 할 책이 있어서 서점에 가기 전에 집에 들러 잠깐 저녁을 먹는데 마침 '나 혼자 산다'가 재방송되는 중이었다. 만화가 기안84의 지인으로 출연했던 충재씨가 이제는 단독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디자이너답게 깔끔히 잘 꾸며진 집과 그의 일상생활을 보여줬는데, 영상 속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던 충재씨가 멈춰 서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장면이 나왔다.


 왜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집 입구가 도로와 정면으로 붙어있어서 거주지가 아니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이 때문에 집 앞에 무단으로 투기되는 쓰레기봉투가 많단다. 그래서 먹을 게 없는 동네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어 헤쳐놓곤 했고,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문구를 붙임과 동시에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먹을 게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뜯는 거니까, 자신이 대신 밥을 준다고.





 TV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기안84의 지인이며 디자이너라는 사실 외엔 내가 아는 모습이 없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집 앞에 쓰레기들이 마구 헤집어져 있으면 화가 날 법도 한데 그것을 짜증이나 불평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이 속 깊게 느껴졌다.


 자신의 집 앞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사람들을 마냥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하고 이곳이 사람이 사는 주거지임을 밝히는 안내문을 써 붙인 것. 그리고 먹을 게 없어 쓰레기봉투를 뒤져야만 하는 고양이들을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 존재가 아닌, 자신이 보살필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 것. 둘 다 정말 어른의 대처 혹은 된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가지 않고, 나의 경우만 생각하더라도 기분 나쁜 일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 쉽게 남 탓을 하고 만다. 그게 편리하고, 쉽고, 간단하니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무조건적인 책임을 찾는 일만큼 간편한 게 없다. 하지만 그게 늘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음에도, 늘 쉬운 방법을 택하기에 계속해서 짜증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사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어쩌면 매우 일상적이고 쉬운 일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참 흔치 않은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점에 갔다. 교보까지 가는 길에 어플로 바로 드림을 신청해놓고 가자마자 서가에서 책을 찾아 바로드림 코너로 곧장 갔다. 교보의 마감시간은 10시. 내가 바로드림 코너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9시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바로드림 코너의 직원분께 책을 내밀며 '바로드림을 신청했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직원 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한숨을 푹푹 쉬며 '성함이요'라 되묻는데, 내가 지금 뭔가 실수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이름을 얘기하고, 직원분이 내 책의 바코드를 스캔하는 동안 아까 봤던 나 혼자 산다의 영상이 생각났다.


 교보의 마감 시간은 10시, 그리고 지금은 아홉 시 반. 퇴근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오늘 하루 이 곳에 서서 계속해서 손님들을 대해야 했던 이 사람은 굉장히 피곤했을 수 있고, 힘든 하루였을 수 있다. 나에게 크게 나쁜 말을 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나는 단지 책 하나 찾으러 왔을 뿐인데 굳이 이 사람이 나에게 미소와 친절로 서비스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서로 친절하게 대하면 기분은 더 좋을 수 있겠지만! 굳이 내 기분을 위해 이 직원분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서비스로 강요하는 건 나쁜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의 퇴근 시간이 때때로 그렇듯, 오늘 하루가 이 분에게 너무 힘든 하루였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괜히 지레짐작하고 불쾌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불평불만해봤자 기분 나쁜 건 나밖에 없다. 괜히 상대방의 힘듦이나 짜증을 나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 사람 왜 이러지? 하면서 짜증을 전염시킬 필요는 전혀 없는 거다. 내 선에서 끊어낼 수도 있는 거고, 외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라고 불평하는 대신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책을 받아 들어 나왔다. 잠깐 스쳐 지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어쩌면 내가 건넨 인사와 같은 작은 말들이 쌓여서 피로에 지친 감정노동의 짐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 바로드림한 책. 데이터 관련 공부를 할 때 통계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서T_T.. 수학 너무 싫은데..



 우리는 모두 매일 안녕하지만은 못한 하루를 산다. 가끔 년에 한 번 꼴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를 빼놓고는 내 하루에 감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인사가 필요한 것 같다. 안녕하시냐 인사를 건네고 감사하다 이야기하는 매일. 작은 것에 분노하고 소리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이건, 내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건 간에 분노나 짜증보다는 훨씬 나에게 이로운 해결책이니까.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오직 나만이 만들고 선택할 수 있다. 어차피 마이웨이 할 거,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러지?'보다는 '이 사람이 어떻든 내 기분은 내가 정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마이웨이가 내 정신건강에 훨씬 더 이로운걸.


 뭐가 됐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정말 멋진 일. 오늘도 나를 위한 안녕한 하루를 만들어야지!


긍정적으로 마이웨이 하자. 긍정적으로 귀여운 고양이처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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