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멜리 Oct 07. 2019

아빠의 뽀또들이 모여 쌓아준 것

네가 먹고 싶다는데 뭐가 귀찮아

이번 추석 연휴엔 아빠랑 마트에서 장장 다섯 시간을 놀았다. 아빠와 나에게는 물건 뒷면에 써진 설명서를 다 읽고 싶어 하는 병이 있는데, 평소에는 마트에서 여유 부릴만한 시간이 없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가기 때문에 맘껏 읽어보고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연휴가 주는 시간적 넉넉함에 말리는 이 하나 없이 두 텍스트 중독자가 만났으니 블랙홀에 빠져 버린 거다.

점심 먹고 들어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나가려 하니 배가 고팠다. 계산대로 가기 전에 뽀또 한 박스를 집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까먹을 요량이었다. 무인계산대에서 계산을 척척 하고 카트를 반납하러 다녀온 사이, 나의 사랑하는 뽀또는 이미 포장 박스 안에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에 "내 뽀또~~ 집 가는 길에 먹으려고 했는데 포장 다 해버렸네" 말했고, 아빠는 다 포장된 박스를 다시 뜯었다. 조금의 짜증도, 아무런 불평도,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깔끔히 포장된 박스를 다시 열어서 맨바닥에 있던 뽀또 상자를 꺼내 줬다. 집 가서 밥 먹게 두 개만 먹으라며 내 손에 뽀또를 쥐어줬다. 한 봉지는 정이 없고, 세 봉지는 밥 대신할 것 같으니 두 봉지.

아빠 성격에 꼼꼼하게도 포장해 놓은 박스를 다 풀어 헤치고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나에게 뽀또를 쥐어주는 아빠가 어쩐지 찡했다. 귀찮게 뭐하러 열어주냐는 내 말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먹고 싶다는데 뭐가 귀찮아~"하는 아빠의 무덤덤한 말투가 세상 그 어느 말 보다도 다정하게 들렸다.

추석 다음날엔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선 거실 바닥에 누워 쥐포를 구워달라 했다. 곧 앞자리가 바뀌는 딸이 11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쥐포를 구워달라는데, 아빠는 몇 마리 구워줄까 묻는다. 찬장 위에 올려뒀던 미니오븐까지 끄집어내어 쥐포를 구워주면서 "가스불보다 오븐에 구워야 맛있더라"하는 아빠에게 또 물었다. "자꾸 뭐 해달라고 하니까 귀찮지?" 아빠는 또 똑같이 대답했다. 먹고 싶다는데 뭐가 귀찮아~

이제는 슬슬 찬기운이 도는 마룻바닥에 볼을 대고 누운 채로 실실 웃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무덤덤하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간지럽고도 든든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제나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선, 같은 온도로 나를 사랑해 주는 절대적일 유일한 사람. 한 번도 나에게 귀찮은 내색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돌아오는 주말, 아빠 생일을 맞아서 아빠 집에 TV를 바꿔줬다. 전에 물어봤을 땐 무슨 TV를 바꾸냐며 손사래를 치더니, 어제 배송을 받고선 너무너무 좋았는지 "아이맥스도 갈 필요 없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아침 출근길에 전화를 걸었더니 밤새 새 TV로 넷플릭스랑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늦잠을 잤다며 허허 웃는다. 화면도 크고 화질이 너무 좋아서 다큐멘터리 속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는 아빠에게 짐짓 일찍 일찍 자야지 잔소리를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서른 언저리, 캠핑 클럽 속 핑클 언니들 같이 갱년기가 올 나이도 아닌데 자꾸만 눈물이 비식비식 새어나는 아침이다. 아빠가 좋다고 보내온 문자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아빠는 나보고 열심히 살지 말라고, 뭐 좀 제발 그만하고 더 놀고 더 자라고 말한다. 아빠는 모르겠지, 그렇게 말하는 아빠 때문에 내가 늘 지치지 않고 더 열심히 살 수 있다는 걸. 내 자존감은 다 아빠가 내 손에 쥐어주던 뽀또 같은 것들이 자꾸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정의를 서술하라 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