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란 Oct 19. 2016

세상에서 가장 낯선 칭찬이자 꼬리표

표정이 어두운 날의 기억력





"옥수수도 아니고 옥수수수염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음~ 좋다."


카우치서핑 기념 선물로 건네준 옥수수수염차를 바로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며 로라가 말했다. 동그랗게 두 눈을 뜬 그녀의 파란 눈을 보니 옥수수수염차의 향이 싫지 않은가 보다. 뮌헨에서 만난 로라는 2박 3일 동안 나를 거실에서 재워줄 동갑내기 호스트다. 그녀는 아시아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마침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팀은 다가오는 여름에는 무려 3주 동안이나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카우치서핑이 성사되어 그녀와 차를 나눠 마시고 있다. 뮌헨에 오자마자 작은 아시안 마켓에서 용케도 한글로 쓰인 옥수수수염차를 구한 게 다행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로라는 그녀의 오랜 친구인 데이빗과 함께 뮌헨의 상징인 비어가든 중에 하나, #영국 가든에 놀러 갈 예정이다.



로라의 집에서 허락된 감개무량한 카우치, 실제로는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잤다





Hey Sehee, you are very welcome to stay with Tim and me from the 19th to 21st! We're both interested in Asian culture and we would love to hear about Korea and try your Korean food, especially because we're going to Korea in summer for a 3 weeks holiday.

I'll have to work on the 19th, but will be home at 6pm. I don't work on the 20th, so I can show you around in the city and we can go to a beer garden if the weather is nice. It's very easy to get to our apartment from the train station, you have to take the metro U1 (direction "Mangfallplatz") or the U2 (direction "Messestadt Ost")...(중략)


로라와 주고 받은 카우치서핑 쪽지




여행의

특권



뮌헨에 있을 당시는 부활절 휴가 기간이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체류하고 있던 나는 부활절 방학에 학교 수업이 없다는 것을 알고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독일로 온 터였다. 뮌헨, 드레스덴, 밤베르크, 그리고 베를린으로의 카우치서핑 여행을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4개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에서 4가지 개성을 가진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을 만나고 오겠어! 그런 마음을 먹고서 말이다. 마침 비행기 티켓도 편도 60 크로네 (NOK), 당시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불과 11,000원 정도였다. 이럴 때 독일 여행을 안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분명했다. 


사실 노르웨이에서 공부하던 1년 내내 유럽 여행을 참 많이 했다. 평소에는 노르웨이의 열혈 생활자로 살다가, 틈만 나면 근교 유럽으로 떠나려고 했던 데에는 다름 아닌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 탓이 컸다. 오슬로에서는 시내의 문화유적지라도 구경할라치면 외식하는 것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야 많이 달라졌지만, 첫 학기만 하더라도 적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다채롭고 맛깔나게 만드는 재주가 없던 터라 금방 도시락에 싫증이 나곤 했다.  


반면에 라이언에어(Lionair)와 같은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노르웨이에서 한 끼 외식할 수 있는 돈으로 유럽 여행 왕복 티켓을 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는 초콜릿, 각종 길거리 음식들, 심지어 한 끼의 식사들이 노르웨이에서보다 훨씬 친근한 가격으로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니 더 자주 나가게 됐던 것 같다. 가끔은 체코나 스페인 같이 먹거리 많고 물가가 만만한 곳에 교환학생을 갔어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해외여행이 남는 장사가 되는 곳이 노르웨이 생활자의 삶이었다. 


나중이 되고 나서야 빚쟁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그 비싼 음식 좀 더 먹고 올걸, 더 멀리 노르웨이 깊숙이 여행 떠나 볼걸 하고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슬로에서 돈 아끼느라 도서관에서 전공책만 붙들고 있을 시간 에이 곳 저곳 밟아보고 두드려본 젊은 나의 부지런함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노르웨이에서 출발하는 유럽여행은 꼭 '대단히 마음먹고 떠나는 모처럼의 여행'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주말에 전공 수업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니 독일 여행을 떠나더라도 네이버 블로그 여행 후기 검색이나, 독일 여행 가이드 따위를 검색해보는 일은 과감히 생략되었다. 그냥 가면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카우치서핑은 내게 모든 여행은 내가 만난 호스트와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부터 다시 계획되고 재편되고 실현되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믿도록 도와주었다. 


그렇다 보니 어쩌다 내가 만난 호스트 친구들이 그들 자신이나 동거인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들을 소개해줄 때면 마치 그들이 내 고향 친구들인 양 너무나 반갑고 즐거워졌다. 호스트가 그녀의 정말 '내밀한 일상'에 초대해 주었다는 반가움을 넘어서, 내가 정말 독일 뮌헨에 살거나 프랑스 파리에 살았다면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일상'을 간접적으로 혹은 단기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효용이 되는지는 겪어봐야 알 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현지인들과 격의 없는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타인이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지 엿볼 수 있고, 또 그들이 인생을 즐기는 색다른 노하우까지도 내 것이 된다. 


 

뮌헨에 있는 영국공원
영국공원 비어가든에 가득한 사람들





내 친구 데이브



로라가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오랜 친구라는 데이빗은 웃는 얼굴이 유쾌한 청년이었다. 우리는 그를 데이브라고 불렀다. 역시 독일 사람답게 맥주와 바비큐를 좋아한다. 로라와 데이브는 나를 제일 먼저 영국 가든에 데려다주었다. 영국 가든 곳곳에는 이미 맥주 세잔을 비운 사람, 소시지를 구워서 배를 두둑이 불린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인공 강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카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러웠다. 자연과 도시를 만끽할 줄 아는 태도가 봄처럼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로 흘러갔다. 로라도, 데이빗도 여행을 좋아했다. 데이빗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캠핑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었고 로라 역시 자연에 동화되는 장기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그녀의 남자친구인 팀과 함께 한국의 경주와 제주도 등을 구경한다고 한다. 그때 내가 한국에 같이 없다는 게 이토록 아쉬울 수가 없다.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비록 서울은 아니지만 우리집에서 로라에게 잠을 재워줄 수도 있을테고, 내가 베이컨으로 어설프게 만든 한국음식이 아니라 우리 엄마 손을 빌려 제대로 된 전주식 한국 전통 요리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 언제든지 오슬로에 놀러오라고, 내가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노르웨이 여행을 함께 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로라와 데이빗은 말 만으로도 충분하다는듯 잔을 부딪쳤다. 


영국 공원을 구경한 뒤 우리는 데이빗의 공대 친구들이 오늘 저녁에 가질 예정이던 기숙사 바비큐 파티에 합류했다. 각자 먹을 빵과 소시지 그리고 맥주를 구입하러 일단 마트에 들렀다. 데이브는 로라와 내가 먹을 빵과 소시지까지 자기가 계산했다. 내가 극구 말리려 하자 뒤에서 로라가 말렸다.


"이 정도는 데이브가 사게 해도 괜찮아."


괜히 친구가 맞이한 손님인 나 때문에 데이빗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잠시. 데이빗은 기숙사 바비큐 파티에 한국 여자애가 온 건 처음이라며 꽤나 재밌어하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기숙사 근처로 모였다. 노르웨이 기숙사와 비슷했다. 바비큐 파티 장소에는 소시지 외에도 구운 돼지고기들이 가득 고기 익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데이브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갑자기 만난 내게 우르르 다가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넙적한 빵에 소시지를 담아줄 때만큼은 씩 웃어 보이는 호방한 친절함이 데이브 못지않다. 


노을 지는 뮌헨의 저녁 어스름. 별 거 없는 빵에 별 거 없이 구운 소시지는 뮌헨의 노을을 받아 너무나 맛있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뮌헨에서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혼자 님펜부르크 궁전도 다녀오고, 뮌헨 광장과 동네 전통 시장을 구경해보기도 했지만 뮌헨에서의 각별한 기억은 역시나 로라의 친구들을 만난 일이다.


매일 밤 로라는 자신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기꺼이 나를 참석시켰다. 어제는 뮌헨 도로 한복판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병맥주를 즐기고, 오늘은 뮌헨의 흔한 비어가든에서 한낮의 생맥주를 즐기며 수다를 떨게 했다. 게다가 저녁엔 동네 대학생들의 기숙사 뒤뜰 바비큐 파티에 참여하게 해주었다. 로라 덕분에, 그리고 그녀의 친구 데이빗 덕분에 뮌헨의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들을 즐겨볼 수 있던 것이다.


어느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학교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돌아가야 한다며 먼저 로라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어느새 로라가 없어도 데이브와 나는 오래전부터 봐온 듯 친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데이브는 펀칭을 해야 하는 독일 전철 시스템을 웃으며 흥미로워하는 나를 보며, 신기한 동물 관찰하듯이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세희. 넌 사소한 것(Little things)에도 잘 웃는구나."


"여행자들은 곧잘 그래. 어떤 작은 것에도 웃을 준비가 되어있지."


"하하. 말 되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는 않아."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덕분이야."


"세희, 니 덕분이지."



그러면서 씩 웃는다. 귀에 입이 걸린듯하다는 표현은 데이브 같은 애들을 보고 하는 말인가 보다. 데이브는 내가 뮌헨에서 보고 즐기고 먹고 했던 시간들이 본인에게도 각별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는지 그 뒤로도 나의 노르웨이 생활을 챙겨주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여행을 다녀간 덕분에, 나를 맞이한 호스트가 혹은 현지의 다른 친구들 또한 즐거운 여행을 한 듯 유쾌한 추억을 쌓았다고 듣는 일은 여행의 보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브와 나는 오슬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데이브가 오슬로에 와준 것이다. 이번에는 나도 베테랑 오슬로 생활자가 되었으니, 오슬로의 유명한 키링 쇼(Kringsjå) 송스반 호수(Sognsvann)에서 나의 오슬로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보답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했다. 데이빗은 훗날 자동차 부품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한동안 이틀에 한번 꼴로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고 서로의 근황을 속속들이 공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브는 40년 된 애장 엽서에 편지를 보내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우리가 함께 만든 사진에 손수 편지를 적어 만든 스노볼을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데이브는 나중에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내게 다시 한번, 그렇게 말했다. 




"You're one of the nicest persons I've ever met in my whole life!!  
So funny and always smiling!!" 



내가 뭐가 재밌다고? 언제나 웃는다고? 데이브의 그 말은 너무나 낯선 말이었다. 난 그렇게 재밌지도, 더군다나 자주 웃는 사람도 아니거든. 여행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우리가 만난 곳이 뮌헨이거나 오슬로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언제나 한 손에는 맥주와 함께할 수 있었기에? 사실은 내가 만난 로라와 데이브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자기가 더 잘 웃으면서도, 나처럼 자주 웃는 사람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친구라니. 다만 나는 그 단 두줄의 칭찬만으로도 앞으로 웃을 때마다, 아니 웃지 못할 때마다 뮌헨과 데이브를 떠올릴지 모르겠다고 예감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소한 즐거움,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경험은 참 감사한 일이니까. 





그 뒤로

더 자주 웃게 되었다



흔히들 웃으면 복이 온다고들 한다. 주어와 술어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야 크게 일리 있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 웃는 얼굴에 반한 사람들이 그 웃는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떡도 물어다 주고 햇볕도 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웃지 않은 얼굴보다 예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의 웃는 얼굴에는 덕분에 고마워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로라와 팀을 만나 더없이 안락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온 것, 그리고 그녀의 친구 데이브라는 소중한 뮌헨 친구를 덤으로 알게 된 것이 내겐 독일 여행의 복이었다. 내가 여행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렇게 자주 웃을 수 있을까?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옆사람이 신기해할 정도로 자주 웃을 수 있을까? "너처럼 자주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데이브의 말은 내게도 낯선 칭찬이었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믿어버리고 싶은 내가 행복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데이브는 여행이 끝난 뒤 나와 수많은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곧잘 그렇게 인사를 맺음하곤 했다. 다행히도 기억력이 좋은 나는, 아니 좋은 기억력을 가진 나는 그 말을, 그 여행을 너무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Remember to keep on smiling. 


단지 나는 휴일에 여행을 떠나는 사소한 부지런함, 그 작은 용기 하나만으로도 얻어온 게 너무 많았다. 뮌헨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브런치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

@seheeberry






  

이전 08화 짜파게티 덕분에 쫓아낸 소매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