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잠 드는 날의 기억력
" 샹젤리제? 거기는 정말 Showing off 를 위한 곳이야.
아마 파리에서 제일 맛없는 식당이 있는 곳일거야. "
내가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먹은 스테이크가 샹젤리제 거리의 어느 노천 식당에서 파는 것이었다고 고백했을 때 니나는 기겁을 했다. 사실 니나의 집이 위치한 몽마르뜨 언덕과 그 일대도 수많은 인파의 오고감 속에서 이미 관광지를 위한 관광지가 된 듯했지만, 니나가 생각하기에 샹젤리제 거리야말로 각종 상업적인 겉치레로 맛과 멋의 실속을 잃은 지 오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같은 공간을 두고도 사람마다 좋아하고 지키고 싶은 가치가 다르다. 누군가는 같은 이유로 샹젤리제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샹젤리제 거리의 상업적이고 깎아만든 듯한 세련됨은 아름다운 도시의 얼굴은 아닐 뿐이다.
니나는 샹젤리제 거리의 노천 식당 역시 음식 맛도 보나마나 뻔할 거라고 혀를 찼다. 그녀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샹젤리제에서 처음 먹은 소고기 스테이크는 고기가 질기진 않았지만 내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아무래도 몽마르뜨 언덕의 가장 오래된 식당을 나에게 소개시켜준 자신을 뿌듯해 하는 모습이다.
" 안되겠어. 내일 나 늦잠좀 자고, 같이 파리를 둘러보자! 내가 몇몇 곳을 소개해 줄게! "
과연 동갑내기 파리 친구 니나가, 그녀의 눈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파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녀와는 오후에 함께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의 아늑한 카우치에서 잠을 청한 뒤, 다음날 오전에 홀로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늦잠자는 니나를 두고, 혼자 파리 거리에 나와 파리를 한번 더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어제의 아침과 다르게 든든한 마음이었다.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이국땅에 있다는 것은 참 안락한 일이었다. 파리에, 내가 외출 후 돌아갈 집이 있다.
아침에 꼭 한번 더 보고 싶었던 파리의 모습은 샤이오 궁으로 비추는 에펠탑이었다. 날씨가 조금은 을씨년 스러웠기 때문에 오전의 에펠탑은 그리 청명하지는 않았다. 겨울의 끝물에 파리에 도착했으니, 이정도 날씨도 감사한 일이었다. 에펠탑과 함께 찍은 몇 컷의 사진 속에는 니나가 어제 저녁식사 때 빌려주었던 머플러도 함께 있다. 니나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에 나의 전용 패션아이템이 된 것 같다.
여유로운 여행을 끝내고 점심 즈음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니나는, 파리에서 살 고 있는 또 한명의 또래 친구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해 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니나가 애타게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한국계 프랑스인 친구 파멜라였다. 그녀는 니나의 전화에 흔쾌히 하루의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 였다. 한국에서 온 나를 위해 니나는 특별히 그녀의 친구 중 한국계 친구 파멜라를 떠올렸다. 인터네셔널한 애들은 인터네셔널한 애들끼리 노는 것일까?
또 한번 Mix culture 파리지엥과의 만남의 순간이다. 니나의 친구 파멜라는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니나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니나의 집에 평소에도 자주 들르는 듯 했다. 파멜라는 첫 눈에 봤을 때 동양적인 느낌보다는 서구적인 느낌이 훨씬 많이 나는 외모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고 한국에서 음향 녹음 관련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한국말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불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다국적 대화를 이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향긋한 베이킹 냄새가 났다. 니나의 주특기인 후르츠 타르트다. 니나는 이토록 다정하다. 새콤달콤 맛있는 홈메이드 후르츠 타르트의 향이, 파리 여행을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향이 된다. 점심 요기를 끝낸 우리는 이제 파리의 가장 많은 대학생들이 모인다는 생 제르맹 지구와, 생 미셸 지구로 이동한다.
먼저 생 제르맹 지구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즐겨찾는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다.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곳인데, 근처에 소르본 대학이 있어서 젊은 활기와 학구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소르본 대학은 건물만 훔쳐보았을 뿐,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다. 학교측은 학생증이 없는 이들의 학교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파리 4대학으로 학제개편 되었지만, 소르본 대학은 빅토르 위고 등을 배출한 유럽의 명망 높은 교육 기관이다. 영국의 옥스포드,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과 함께 유럽 3대 대학으로 꼽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제는 하나의 관광 명물로 자리 잡은 소르본 대학의 위엄을 밖에서만 바라보면서, 그 안의 공기 조차도 체감해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대신 우리는 '파리의 아름다운 예술 학교 (Beaux arts de Paris, 보자르 국립대학)' 에 다다랐고, 이곳에는 무리 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역시 다른 건물들 처럼, 파리의 오랜 역사와 고즈넉한 고풍이 느껴졌다. 때마침 우리가 방문한 동안 칠레 태생인 예술가 Alfredo Jaar(알프레도 자)의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 전시는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구조물이 학교 로비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관람 하는 사람이 구조물 안에 들어가 전시의 화두를 감상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 구조물 안에 들어서면 눈을 부시게 하는 조명들이 관람자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스크린에서 한 명의 사진 작가와 얽힌 이야기가 하얀색 타이핑으로 깜빡이며 플레이 된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와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한 유명한 사진. 사진 작가 캐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그 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후에 사진 찍을 당시 죽어가는 소녀를 먼저 도와야 했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수상 3개월여 만에 33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일이 큰 논란 거리가 되었다.
전시 내용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진 저널리스트 케빈 카터(Kevin Carter)와 그가 1993년에 촬영한 '수단의 굶주린 소녀'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십 일을 먹지 못한 채 말라버린 수단의 어린 아이와 그녀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보고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이 포착된 사진이다. 아프리카의 기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아프리카의 가난과 인권을 외면하는 서방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사진 작가 캐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그 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극심한 비판에 시달렸다. 1993년 3월 26일자 뉴욕타임즈에 이 사진이 실리고 나서 수 많은 서방 사회의 언론과 대중들은 사진 작가인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사진을 찍을 시간에, 죽어가는 소녀를 먼저 도와야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들이었다. 결국 그는 퓰리처상 수상 3개월여 만에 33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을 한다. 이런 이유로 사진이 담고 있는 피사체의 충격적인 모습과 사진 작가의 비극적인 선택은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Alfredo Jaar(알프레도 자)의 미디어 전시는 내게도 처음이었지만,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사진 작품은 내게도 이미 익숙했다.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 전시는 작은 정육면체의 구조물 안에서 조명과 스크린 플레이의 연출을 통해 이 모든 이야기를 소리 없이 전달한다. 모든 이야기는 모두 불어로 전달되었기에, 나는 여행이 끝난 뒤 노르웨이에 돌아와 그 전시회에 관한 정보를 다시 수집해야했다. 하지만 불어로 가득한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보도 저널리즘의 비극을 읽은 뒤로, 전시 구조물 안에서는 펑, 하는 효과와 함께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이 나타난다. 그 순간, 이 사진을 보는 우리 모두가 사진작가 케빈 카터(Kevin Carter)와 다르지 않게 굶주린 소녀를 방관해 온 또 한명의 외국인들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예술 학교에서 왜 언론과 관련된 전시가 있던 것일까. 세상 곳곳에 숨겨져있는 사안의 이면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이 알게 하고, 다양하게 느끼게 하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더 나은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예술과 문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Alfredo Jaar(알프레도 자)는 침묵의 소리 전시회 말고도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사회에 그런 물음을 던져왔다. 프랑스 파리를 흔히 예술적인 도시라고 한다. 보고 걷기에도 역시 아름답다. 이 도시를 둘러싼 이야기는 우아하고 감미롭다. 하지만 비단 아름다운 것에만 머물지 않는 예술을 나누고 공부하는 곳이기도 했다.
라뒤레의 세 여자
우리 셋은 뒤 이어 생 미셸 지구로 이동했다. 생 미셸 지구에는 작은 규모의 디자인 편집 숍들과 카페가 많았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면 이곳에 유명하다는 카페나 식당을 몇군데 머물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자기한 구석과 세련된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여러 군데는 가지 못하겠지만, 대신에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는 마카롱 카페 '라뒤레 Laduree'에 들어갔다.
동네의 멋을 안고 있는 자그마하고 고즈넉한 동네 카페에 가보고 싶었지만, 파멜라와 니나에게는 내게 라뒤레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역시 내가 여행자라는 것을 의식해서다. 그러고보니 수 많은 아시아 관광객들이 라뒤레 마카롱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마카롱을 사고 쇼콜라(핫쵸코)와 케이크를 먹으며 프랑스의 보통 또래 여자아이들 처럼 시간을 보냈다. 노르웨이에서는 너무 비싸서 외식은 커녕 카페에 가본 적이 없다. 덕분에 프랑스 물가에 감격하고 있다. 행복은 역시 상대적인 것이다.
사실 니나와 파멜라는 파리의 썩 괜찮은 카페에 처음 와서 들뜬 나만큼이나 라뒤레를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여행자인 나에게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생 미셸 지구에서 제일 근사한 카페를 소개시켜줘 놓고, 여기는 메뉴가 비싸다며 귀엽게 메뉴판을 몇번이고 뒤적이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디저트는 셋이서 조금씩 나눠먹는 게 낫겠다면서 케이크는 딱 하나로 주문을 했다. 물론 셋이서 각각 차 한잔씩을 시켰는데도 케이크를 하나만 시키니 종업원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안 그럴 것던 니나까지도 카페 점원의 눈치를 본다. 음료를 하나씩 샀는데 눈치볼 게 뭐 있나? 이렇게 박한 동네였단 말인가! 오히려 내가 당당하다. 그러고보면 니나나 파멜라나 나나, 이제 겨우 국제 나이로 22살이다. 동네 작은 빵집이나 크레페 리어카가 더 익숙한,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케익을 칼로 잘게 쪼개어 셋이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우리들. 어느새 니나와 파멜라가 나의 대학교 동기들 처럼 느껴진다. 내가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양새는 한국과 많이 다르진 않았겠구나 감히 추측도 해본다. 후식 하나에 커피 한잔씩 주문하고 실컷 떠들며 어울리는 모습들이 서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또래 파리 친구들과 파리의 대학생들이 자주가는 거리를 걷고 공원을 걷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겨우 그 정도로 파리에서 오래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면 호들갑이겠지만, 파리의 내 또래들이 보내는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체험한 소중한 여행이었다. 나와 동갑이지만 더 성숙한 자기애와 뚜렷한 신념을 가진 3D 디렉터 니나와의 대화들, 그리고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파멜라와의 시간이 내 첫 파리 여행에서의 기억이 된 것은 분명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한인 마트에 들렀다. 니나의 집에서 내가 보내는 마지막 밤을 위한 먹을 거리를 샀다. 에곤은 늘 처럼 기타를 꺼내왔다. 니나는 와인을 꺼내왔다. 화답으로 내가 그들에게 연주한 기타 음악은 코타로 오시오(Kotaro Oshio)의 황혼(Twilight)의 앞부분. 전곡을 다 연주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간만 들려준다. 어째 결코 잘한 연주가 아닌데도, 니나는 잠자코 연주를 듣더니 홀딱 반한 눈으로 제목을 묻는다. 옆에서 에곤은 악보를 보내달라고 재촉이다. 그러자 니나는 또, 에곤이 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호들갑이다. 그와 그녀에게 악보를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마 내가 어설프게 흉내만 냈던 이 곡의 진짜 아름다움은 에곤이 수려한 솜씨로 완성해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익숙하다는 듯이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부엌으로 간다. 니나의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는 한번에 불이 붙지 않는다. 불이 제 때 지펴지지 않는 가스레인지를 일단 작동 시켜놓고, 다시 성냥에 불을 붙여 작동 시켜둔 가스 레인지에 슬쩍 갖다대야 불이 활활 타오른다. 남의 집 부엌을 용케도 익숙하게 사용한다 싶다. 그 사이 니나와 에곤은 잠들어있다. 오늘 아침 니나의 집을 떠나기 전에 그 둘은 깨우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떠나는 시간은 지난 밤에 두 사람에게 일러두었다. 굳이 이른 아침에 작별 인사를 하겠답시고 두 사람을 흔들어 깨우거나 두 사람 역시 나를 별 스럽게 배웅을 하지는 않겠노라, 작별 인사는 일부러 미리 해둔 터였다.
차가운 게 아니다. 떠나는 손님인 내가 굳이 그들을 깨우지 않고, 손님을 보내는 그들 역시 굳이 내다보지 않아도 서로를 믿어주는 그런 만남이었다.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잉그리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일상과 여행이라는 서로의 룰을 해치지 않는다. 카우치서핑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차분한 뿌듯함이 이틀 밤이라는 니나의 집에서의 추억을 갈무리한다.
부엌에서 주섬 주섬, 전날 한인마트에서 사온 짜파게티를 꺼내어 끓이기 시작한다. 물론 니나가 전날 밤, '아침밥으로 먹어'라고 챙겨주었던 크로와상도 잊지 않는다. 후루룩, 후루룩, 맛깔나는 소리는 장하게도 집 주인을 깨우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다. 그들은 잠시 뒤척였을지도 모르겠다. "잘 가겠지." 하고 돌아 누웠을까? 그 사이 나는 야무지게 설거지도 마친다. 고양이가 다리춤을 간지럽힌다.
집을 나서기 전 잊은 짐이 없나 배낭을 두어번 점검을 마친다. 진짜 그녀의 집을 나선다. 고마웠어. 정말, 사랑스러운 집이었어. 아침 7시 30분에, 베르사유로 가는 열차를 탔다. 그리고 갑자기 도착한 문자 메세지.
"Oh, Sehee. You are so sweet!
I love this surprise gift of you!
Thank you so much! You are so amazing!!!"
니나에게 온 문자였다. 이게 무슨 문자지? 선물은 어제 초콜릿으로 준 것 같은데. 순간 어제 라뒤레에서 기념으로 산 마카롱 2Box 중에 하나를 놓고 온 것을 깨닫게 된다. 헉! 내 마카롱! 순간 헛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그게 니나에게 다정한 선물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니나야 미안해. 사실 서프라이즈 선물이 아니라 서프라이즈 분실물인걸. 그래도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