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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03. 2016

몽마르트르에서 맞이한 조금 늦은 생일 저녁

다정해지고 싶은 날의 기억력



그럼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지!
이틀 먼저 재워주는 건 아무 일도 아니야.



니나가 나를 다그친다. 그녀의 집에 오기 전, 다른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바람맞은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렇다. 니나는 약속을 어긴 호스트 여성이 프랑스 망신을 다 시켰다며 탐탁지 않아했다.


자신의 호들갑으로 파리지엔느의 체면을 다시 세우려는 듯, 나보다 더 화를 내는 그녀가 내심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단발머리에 화를 내는 것도 웃는 것도 큼직큼직하게 할 줄 아는 이 프랑스 소녀는 바로 내 파리 여행의 두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 니나다.


사실 처음 니나의 집을 찾을 때도 제대로 낭패를 볼 뻔했다. 카우치서핑 약속 당일, 내가 오전 11시경에 Place de Clichy 역에 도착하면 니나에게 전화를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녀가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또?

나는 일단 침착하게 내가 가져온 여행 관련 메모 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확인했다. (이때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다.) 종이에 받아 적은 그녀의 번호와 핸드폰에 저장한 번호가 같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실수한 것이 맞았다. 휴, 너무 빨리 실망하지 않은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


그녀와 통화를 한 뒤에 무사히 그녀의 집 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니나의 집은 파리 시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래된 연립 주택이었다. 희한하게도 현관문을 열면 작은 정원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파리의 시끌벅적한 메인 로드와 분리되어 고즈넉한 유럽 안뜰이 한없이 고요함을 자랑했다.


이 작은 정원을 통과하면 또 하나의 작은 건물이 나오는데, 그 건물 안의 계단을 다섯 번 타고 올라가면 니나의 집이 나온다.



동양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니나의 거실. 푹신 푹신한 매트를 거실 전체에 깔았다. 어딜 앉아도 침대에 앉은 느낌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자, 카우치서핑을 통한 새로운 만남에 다시 기대와 호기심이 피어났다. 그리고 3층을 지난 듯했을 때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희이이이 이~


니나였다.





파리 사람에 대한

정의가 가능한가



그렇게 어느새 나는 니나네 집 거실에 와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녀, 니나가 앉아있다. 한참을 첫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 흉을 보던 니나는 이쯤 해서 그만 씩씩대도 되겠다 싶었는지, 본격적인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영상 디렉터를 꿈꾸며 불철주야 일하고 공부하는 그녀는 프랑스 아버지와 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동양적이면서도 선이 굵은 니나의 외모는 부모님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가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남성과 재혼을 하면서 가족 문화가 한층 더 글로벌해졌다고 한다. 끝이 아니다. 그녀의 동거인이자 남자 친구인 에곤의 국적은 칠레다. 그렇다, 남미에 있는 그 칠레말이다. 니나 커플의 집 바로 위층이 새아버지와 어머니의 보금자리라 하니, 이 주택 전체는 그 자체로 지구의 축소판인 셈이었다.


문화가 달라도 가족들이 어울리는 데는 문제가 없단다. 실제로 칠레 출신 에곤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새아버지와 음악적 감성이 맞아서 곧잘 거실에서 함께 기타 연주를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자기도 신기하다고 한다.


“ This is Paris Family now! “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살고 있는 이 글로벌한 가족만 보더라도 파리에 사는 사람을 결코 단일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니나의 그런 다양성 가득한 문화적 배경은 그녀의 공간에 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동서양의 조화로 가득한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과 앤틱과 캐주얼 팝의 조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구들이 그랬다. 예를 들면 니나 어머니의 고향인 태국에서 공수한 듯한 동양적인 패브릭 소품들이 유럽 스타일의 엘레강스한 원목 가구 위의 프랑스 자수와 함께 놓여 있는 식이었다.


네온 장식으로 가득했던 니나의 침실도, 태국에서 건너온 장식품이 주렁주렁한 그녀의 부엌도, 각자 나름의 개성을 뽐내며 '니나스러움'을 완성하고 있었다.


현지인의 집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카우치서핑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렇게 집주인의 내밀한 취향을 엿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개성과 역사를 탐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명한 유적지를 들여다보는 일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독점적인 발견의 재미를 준다.

 


자연스레 나는 오늘 내가 묵을 카우치가 궁금해졌지. 니나는 웃으며 거실을 가리켰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니나와 내가 만나자마자 털썩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차를 나눠 마셨던 커다란 매트리스가 보였다. 이 매트리스로 말하자면 대개의 싱글 사이즈나 퀸 사이즈, 아니 킹사이즈와는 비교가 안 되는 커다란 크기로, 8평 남짓한 거실 바닥을 가득 채워 놓을 정도였다.


희한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에 들어서면 무조건 매트리스에 발이나 엉덩이를 들이밀어야 할 정도로 컸으니까. 쉽게 말하면 거실 전체가 매트리스인 것이다. 니나는 거실에서 주로 TV를 보고 컴퓨터를 하는데, 소파를 들여놓느니 뒹굴뒹굴하기 좋은 매트리스가 편하겠다 싶었단다. 필요할 땐 접으면 되니까 공간 활용에도 좋단다. 프랑스는 유독 보이는 멋을 중시한다고 생각했던 내게, 니나의 엉뚱한 실용주의 취향이 흥미로웠다


그런 독창적인 작품이 오늘 내 침대라니! 오예! 오늘 밤 이 커다란 거실은 모두 나의 영토다!


카우치를 둘러싼 태국 스타일의 쿠션들과, 그 위로 펼쳐진 아이보리색 레이스 커튼이 오묘한 어울림을 자랑하며 그럴싸한 침실을 만들어줄 모양이었다. 니나는 내게 침대가 마음에 드녀가 물었다. 당연하지! 비단 프랑스의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나 로맨스 영화가 미처 다 설명해줄 수 없는 '오늘날 프랑스 파리 사람'의 미감이 있다면, 이곳에 있다. 나는 이 독특한 여행의 경험이 그저 고맙고 기특할 뿐이었다.




Happy Birthday

in Paris



니나는 집 소개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자신이 준비한 저녁 계획을 발표해 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오늘 하루 종일 그녀는, 언제 도착할지 모를 나를 기다리며 저녁 식사 장소를 알아봤다고 한다. 내 생일이 여행일로부터 불과 며칠 전이었다는 것을 알고, 파리의 명소인 몽마르트르 근처의 근사한 식당에서 생일 파티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가 세희 너 생일파티를 위해서 준비했어! 몽마르트르에 있는 근사한 식당에 갈 건데, 온라인에서 미리 예약하면 40% 할인받을 수도 있어! 어때? “


와이낫? 너무나 근사한 제안이다! 게다가 40%나 할인이 된다니? 식당은 맛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걸 두고 현지인 맛집이라고 하는 거니까. 니나, 에곤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몽마르트르로 나가기 위해 겉옷을 따뜻하게 동여맸다.


3월의 프랑스 파리는 아직 칼바람이 셌다. 니나는 그녀의 커다란 머플러를 꺼내 나에게 씌워주면서 몽마르트르는 언덕이기 때문에 겨울바람이 더 매섭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몽마르트르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목덜미에서 자꾸만 니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몽마르트르의 야경은 듣던 대로 화려했다. 어제 그제 내가 본 것은 파리가 아닌가 보다. 222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본 몽마르트르 사원과 언덕 아래의 야경은 군데군데 들뜬 미소와 담소로 가득했다. 낭만적이고, 또 이국적이었다. 마치 프랑스와 태국의 피를 가지고 있으면서 스코틀랜드인 아버지를 두고 칠레 출신의 남자 친구와 사랑스럽게 살고 있는 니나네 처럼 말이다.


이제 내 눈에 파리는 더 이상 삭막하고 위험하기 만 한 프랑스 수도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인종과 사연이 얽히고설켜 예술과 개성을 창조해내는 커다란 팟(pot)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는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혼자 파리 여행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한국 학생인 나도 있으리라.


몽마르트르 일대를 돌아보고 나서 우리는 니나가 일찍이 예약을 해도 었다는 LE BON BOCK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니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고 한다. 1876년에 세워진 곳으로써 몽마르트르 사원과 언덕 일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었다.


작고 오래된 가게에서는 따뜻한 고기 굽는 냄새와, 크렌베리 같은 열매들을 조린 듯한 향긋한 냄새가 가득했다. 오래된 영화 속이 그러할까. 그날의 장면에는 아직 겨울의 추위가 걷히지 않은 몽마르트르의 밤, 가장 오래전에 세워진 식당이라는 메뉴판의 안내 메시지와, 그걸 자랑하는 사장님의 의기양양한 식당 소개를 듣는 그 순간의 소음들, 그리고 낯선 이방인 여행자의 어색함을 녹여주는 니나와 에곤의 수다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나는 니나의 추천을 받아 오리고기 요리와 초콜릿 무스를 주문했다. 그 사이 에곤은 닭 요리를, 니나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 세희, 너 파리에 와서 너무 실망 많았지?

  이젠, 여기 있는 모든 그림들이랑 양초들이 세희 너의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해봐! "


니나의 다정한 인사가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음식을 조금씩 떼어주며 '보나뻬띠!(Bon appétit; 프랑스어로 '많이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를 외치기 시작했다.




보나뻬띠! 나도 보나뻬띠! 나도 보나뻬띠이~


여러 사람과 식사를 할 때, 누군가 자기 몫의 음식을 덜어서 나눠 먹자고 할 때면 어쩐지 그와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 거기에는 내 옆사람이 제 몫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더라도, 그가 모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나눠주고 싶다는 상냥한 마음이 들어 있어서다.


나는 내가 주문한 오리 고기부터 한 입 물었다. 과연 육즙이 대단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내가 파인 다이닝에 결코 조예가 깊지는 않았겠지만, 그 전날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서 먹었던 스테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게 깊은 맛이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바람 맞고, 프랑스 파리는 내게 잠시 외로운 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나는, 파리에서 가장 외롭지 않은 여행자가 분명해 보인다. 19세기에서부터 프랑스를 터줏대감처럼 지켜 온 이 아름답고 따뜻한 식당에서 누구보다 수다스러운 얼굴로 현지인 친구 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낯선 사람에게 받은 외로움을 낯선 사람을 통해 치유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얘네는 나에 대해 무얼 안 다고 이렇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내뱉는 걸까? 왜 이렇게 내게 상냥하게 구는 걸끼?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다정한 여행들을 겪으며 20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배웠다. 사람에게는 단순한 선의로, 계산 없는 호의를 베푸는 힘이 있다는 것을. 또한 즐거움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소통과 교류를 자처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누가 사람은 실수나 실패로 성장한다고 했던가. 나는 반대한다.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 세상에 대한 믿음과 감사함을 알게 하는 경험은 결코 쓰디쓴 시행착오의 경험이 아니었다.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결국 그 시행착오 그다음에 찾아오는 친절한 사람들의 한마디와 마음 씀씀이였다.


그날 밤, 나는 니나네 거실 한 가득 그 커다란 매트리스에 뒹굴 거렸다. 이 매트리스의 단순한 넉넉함은 니나의 호방한 마음씨를 닮았다고 생각헸다.


선택할 수 있다면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사람으로 크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에서 내내 넉넉하고 호의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희소한 영예일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드문드문 그 밤을 복기하곤 한다. 지금 내가 혹시 속 좁고 모난 어른으로 크진 않았을까, 돌아보면서.

 



 








브런치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

@sehee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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