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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Nov 17. 2019

젊은 날에 만난 노르웨이 오로라

운이 없는 것 같은 날의 기억력


삶은

어쩌면

오로라 헌팅 같은 것


  

원하는 삶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우리가 원하는 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킨 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고, 그럴수록 운의 개입도 많이 받는다. 게다가 그런 '멋져 보이는' 일들이란 다른 즐거움을 누릴 자유를 포기하게 하거나, 끊임없는 인내와 수년에 걸친 연습처럼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투자도 요구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희소해서 매력적인 일일수록, 실패의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몇 천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국가 대표 운동 팀에 선발되거나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순위권에 드는 특수한 사례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취업, 연애, 결혼, 건강 문제들을 겪으면서,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을 뿐더러 그 과정에는 운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자신있게 부인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런 삶의 이치는 내가 스물 두 살에 떠난 오로라 여행과도 비슷했다.


오로라는 매년 세계인의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랭크되곤 하지만, 지구상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그 희소성이 크다. 큰 맘 먹고 관측이 가능한 북극권 도시로 이동을 했다해도 언제 어디서 출몰 할 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오로라를 보러 간다면 오로라 관측 외에는 턱 없이 부족한 관광 거리, 입이 떡 벌어지는 물가, 춥고 외진 환경 등 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끝이 아니다. 오로라가 몇 시에 등장할지 모르니, 오로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일을 마다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해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게 오로라였다.

하지만 그런 신비주의가 없었다면 나 역시 오로라에 그리 매료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자명했다.





오로라 헌팅

성공 확률 높이기



당시 내가 마련한 트롬쇠 여행 일정은 겨우 2박 3일.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정 치고는 용감하게도 짧은 일정이었다. 학교 공강 일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만큼, 딱 두 번의 밤 밖에 오로라 헌팅 기회로 쓸 수가 없던 사정이 있었다. 이것 조차 마침 노르웨이 교환학생으로 오슬로에서 머물고 있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기도 했으니 행운을 바랄 수밖에.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트롬쇠에 도착하자마자 전문 오로라 투어 프로그램부터 알아봤다. 오로라는 인공 빛의 방해가 없는 맑은 밤하늘에서 관측이 쉬운데, 이런 오로라 관측 명소는 현지 오로라 여행 전문 업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업체를 이용하면, 운전을 하지 않는 여행자 혼자 가기엔 힘든 교외지역으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서 내게 오로라 투어는 꼭 필요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투어 비용이 참 만만치 않았다. 오로라 투어 업체에서 소개한 책자를 살펴 보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기본 프로그램들은 대개 노르웨이 물가로 1500 NOK (30만 원)에서 3000 NOK (60만 원)까지 필요한 듯했다. 크루즈를 타고 트롬쇠 만을 돌며 배 위에서 오로라를 관측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산속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오로라 아래서 야외 캠핑을 즐기는 프로그램들은 가격대가 훨씬 더 높았다.


호사스러운 투어들 사이로 그나마 눈길을 끈 것은 오로라가 휘황찬란하게 나타났을 때 그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겨주는 포토그래퍼 동반 투어였다. 여행 후에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데, 평생 간직할 기념품이 될 것만 같았다. 문제는 그 가격만큼은 낭만적이진 않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30만 원은 지불해야 했다.


가격 앞에 작아진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초심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일단 오로라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잖아! 누구한테 자랑할 것도 아니고!' 가난한 유학생 배낭여행자 신분을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기준을 세웠다. 오로라 배경 기념 사진 NO! 개썰매도 필요 없구요! 저녁 식사 포함도 사양할게요!


일말의 고민 없이 제일 저렴한 기본 프로그램을 선택하기로 했다. 투어 구성은 간단했다. 트롬쇠 도심과 멀리 떨어진 교외 숲 속으로 대형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 뒤, 오로라가 나올 때까지 캠프에서 함께 대기하고 오로라 관측이 끝나면 다시 시내로 복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 할인이 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는데, 할인을 받고 내가 지불한 총 투어 금액은 490 NOK (약 10만 원)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투어 집합 장소에 가니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 같이 모여 버스를 타고 30분 ~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도시의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느 낮은 산턱이었다. 투어 매니저는 새까맣고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가리키면서, 오늘 오로라 관측 가능성이 분명히 높을 거라며 자신만만해했다. 그래, 나도 오늘 예감이 좋아. 가슴이 간지러웠다.




누군가 외쳤다

Northern Lights!!!  



산 중턱으로 올라가자 베이스캠프와도 같이 생긴 통나무 주택이 보였다. 그 안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오로라 관측용 방한복이 가득했다. 이미 면티에 스웨터에 고어텍스 점퍼는 물론 오리털 롱 패딩까지 겹쳐 입은 나였지만, 오로라를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눈밭에 대기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다행히 투어 업체에서는 눈밭에 굴러도 끄떡없는 방한복을 준비해두고 대여해주고 있었다. 투어에 참여한 여행자들이 자기 몸에 맞는 방한복을 찾아 입고 벗고 다시 입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재빨리 아래 위로 방한복을 껴입었다, 배불뚝이 뚱뚱보가 따로 없었지만 오로라를 기다리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이렇게 입어야 한다나? 장화까지 신고 나니 눈밭에서 데굴데굴 굴러도 끄떡없을 것 같다.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 중에는 오로라 아래서 개썰매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로라 관측지로 이동하기 전에 집결한 눈밭 위에는 썰매에 묶인 개들은 사납게 짖어 댔다. 아직은 오로라가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 한가득 초록색 오로라 아래로 개썰매를 타고 눈밭을 가르는 기분은 당연히 환상적일 거다. 한편으로는 눈밭 위에서 사람들을 끌기 위해 훈련된 개들을 보는 것이 마음이 짠했다.


 Are you guys ready?


오로라 투어 매니저는 목청껏 외쳤다. 이틀에 한번 꼴로 투어를 인솔하는 그였지만, 그에게도 오로라는 늘 기대되는 일인가보다. 투어 매니저에 힘찬 목소리에 사람들은 덩달아 신이 난 사람들은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두줄로 흰 눈 길을 밟으며 산속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우리는 과거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오래된 유목 민족인 사미족이 살았던 전통 목조 가옥인 티피 텐트(Teepee)로 들어갔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오로라를 기다리기 위해 준비된 베이스캠프였다. 안에는 따뜻한 모닥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투어에 참여하면 무제한으로 초코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



모닥불 앞에는 투어 업체에서 준비한 간단한 다과가 풍족하게 준비되어있었다. 그중 초콜릿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먹기 위해 장갑을 벗었다. 두 손에는 얼음장 같은 냉기가 돌았지만, 차를 내려 담은 컵을 손에 쥐자 이내 나른하게 데워졌다.


나와 같은 오로라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12명. 나와 일본인 여자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노르웨이 사람들이었다. 이번 투어에 참석한 몇몇 노르웨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모두 이번이 첫 번째 오로라 투어라고 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도 트롬쇠 같이 북부 도시로 와서 오로라를 보는 일은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큰 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실제로 오슬로에 있었던 나의 노르웨이 친구들도 트롬쇠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부산이나 울릉도 같은 곳에 가본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시간이 흘러도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업체에서는 긴 대기 시간을 예측이라도 한듯이 텐트 안으로 소시지와 함께 그와 곁들어 먹을 lompe 라는 얇은 빵을 가지고 들어 왔다. 소시지나 고기를 그릴에 구워서 lompe라고 불리는 얇은 빵에 싸 먹는 것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야외에서 즐기는 전통 바비큐 문화 중 하나다. 오슬로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소시지를 구워 먹곤 했던 것이 생각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설원에서,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살았을 전통 통나무 텐트 안에 들어와 오로라를 기다리는 기분이라니. 그저 신비로운 자연경관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야생미 가득한 북유럽의 자연 경관에 녹아들고 싶다는 열망이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꿈을 만든 것이라면 지금의 투어는 그에 딱 맞는 체험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기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오로라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은, 조금 뒤 오로라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말과는 결코 다른 듯했다. 모닥불이 바스락바스락 타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오로라! 하고 외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나와 일본 친구 두 명은 작정하고 오로라를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작정 안에서 기다리는 것도 좋았지만, 오로라가 까만 하늘에 깜짝 등장하는 그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티피 텐트를 나가자, 눈밭에는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작은 언덕이 군데 군데 마련된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언덕의 가장자리에는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다. 우리 셋은 자리를 하나씩 점령하고 벌러덩 하늘을 보고 누워 언덕을 전세 냈다.


머리 위로 또렷하게 빛나는 북극성이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언제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봤던가 싶다. 다행히도 우리의 오로라 행운을 인솔해준 투어의 방한복은 위력이 대단했다. 아무리 눈밭을 뒹굴어도 어떤 추위도 어떤 시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장갑을 잠시 벗을 때만 살을 에는 추위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목청껏 크게 소리쳤다.

 " Northern Lights! "

오로라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캠프 밖을 뛰쳐나왔다.



일반 디카로 촬영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훨씬 아름답고 멋지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새까만 하늘에서 어떤 초록 빛깔의 형체가 불쑥 나타나 넘실넘실 온 하늘을 장악한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과연 오로라는 어느 정도로 클까?' 기대했던 마음에 제대로 응답하기도 전에, 오로라가 온 하늘을 뒤덮어 말문을 잃게 했다. 일직선으로 뻗은 초록빛 물결은 지그재그로 출렁이다가 어떤 규칙성도 없이 동쪽 서쪽에서 출현했고, 하늘 전체를 운동장 삼아 뛰어 놀았다.


듣기로 오로라는 그 색깔이 천차만별이어서 옅은 에메랄드 빛인 오로라도 있고 붉은빛이나 노란색도 있다는데, 이번에 내게 다가온 하늘의 진풍경은 초록빛이었다.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져서 제 마음에 드는 방향을 바라보며 오로라를 감상했고, 삼각대에 고급 카메라를 대기시켜놓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어느 여행자는 이 황홀한 장면을 놓칠 새 ㄱ라 분주했다.


나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수한 동경으로 바라봤던 그 오로라를 기념하리라.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로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이미 오기 전부터 내 카메라가 오로라 촬영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오로라는 노출 감도가 좋은 전문가용 카메라를 삼각대에 단단히 고정해서 흔들림을 최소화한 채로 촬영해야 한다. 하지만 내 카메라는 단순한 디지털 카메라였고, 심지어 삼각대도 없었다. 투어 전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했으면 좋았으련만 빠듯한 교환학생 생활 중에 그럴만한 경제적 형편이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뭐, 전혀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셔터를 누르고 7초쯤 세어야 찰칵 소리를 내던 나의 SONY 하이엔드 카메라에게도 대학 캠퍼스에서 셀카나 찍었을 팔자에 이 무슨 호강이란 말인가! 추위와 싸움하는 카메라 배터리가 오늘따라 더 기특하다. 당장 배터리가 닳으면 충전도 어려울 텐데도 오늘따라 꽤 오래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제 인생의 최고의 광경을 기록하는 것이라 자부하고 있을 테지.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나는 다시 장갑을 꼈다. 카메라 전원은 이쯤해서 끄기로 했다. 그래, 두 눈에 간직하기도 모자란 시간이야. 언덕에 누운 그대로 저 초록빛의 춤사위를 말없이 감상해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만화 영화에서, BBC 다큐멘터리에서, 남의 세상 얘기라고 막연히 우러러보았던 그림이 온 몸으로 들어왔다.



보통의 디카로 찍으면 이렇다. 그러나 분명히 아름답다.



과학 잡지에서, TV 드라마에서, 서부 영화의 낯선 골목에서, 나는 진귀한 자연들을 아름답다 느끼면서도, 때로는 그것들을 직접 체험하는 작가나 연예인들을 몹시도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죽기 전에 해보면 그저 멋진 일일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오로라를, 나는 무려 23살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일찍이 보게 되었다니. 감개무량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니라 일단 꿈꿔보고 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여전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세계였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가능성 들이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이 순간이 조금 울컥할 것도 같았다. 아주 막연하게, 내게는 꼭 한 번쯤 만나고 싶었지만 세상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갖고 싶은 물건일 수도 있고 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처럼 나도 한번 경험해보고 손에 쥐고 싶은 세계 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두 눈 앞에 오로라를 보고 있자니, 그 모든 게 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한다면 모든 게 곧 내 곁에 와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과, 삶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행운아라고

스물셋에 확신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오로라를 마주하러 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것은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막연한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최대한의 즐거움과 최대치의 소망을 향해 용기 있게 다가가는 삶이다. 실패를 하든 성취를 하든, 언제든지 내게 주어진 행운을 의심하지 않고 다시 한번 꿈을 꾸는 태도다.


오로라처럼 세상에 많은 일들은 운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삶일수록 행동의 추진력이 되는 것은 스스로가 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태도라는 생각도 든다. 삶의 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나아가야 하고, 어떤 긍정은 거기에 아주 좋은 추진력이 된다.


물론 그 모든 선택의 결과가 항상 오로라의 모습처럼 거대하고 번쩍번쩍하리라 장담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언제든 나아가서 항상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


설령 실패한다해도 호기롭게 운을 탓하자고. "오로라는 원래 언제 나올지 모른대잖아. 난 그걸 보러 가보긴 가봤다구." 하듯이.  


그날, 트롬쇠에서 만난 오로라는 하늘 위에서 30여 분을 출렁였다. 넘실넘실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던 빛들은 어느새 한 지점으로 모여들어 서로 다른 굵기와 선명도의 빛줄기 들을 마치 핀조명처럼 내리 꽂았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들에게 우주가 멋진 쇼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문득 아쉬웠던 순간은 그때였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말이다. 열심히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꼭 다시 와야겠다는 그때의 약속은 먼 훗날이 된 지금의 내 몫, 남겨진 나의 몫이 되었다.












브런치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

@sehee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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