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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Nov 17. 2019

프랑스 파리에서 바람을 맞다

혼자라고 느낄 때의 기억력




분명히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Convention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3시가 3시 10분, 3시 10분이 3시 20분으로 바뀌는 동안 불길한 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분명히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상했다. 처음부터 예감이 좋은 여행이었는데 내가 틀린 건가? 6박 7일간의 파리 여행 중 처음 두 밤을 함께하기로 한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자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리저리 역 근처를 배회하면서 반복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오늘, 호스트는 오지 않는다.'


당시만 해도 여행을 갈 때 도시 별로 해야 할 일들을 여러 가지를 계획하기보다는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두꺼운 가이드북을 사서 정독한다든지 여행자들의 블로그 후기를 뒤지는 일도 전무했다. 카우치서핑을 하면서부터는 숙소도 알아보지 않았다.


여기에는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도 스스로의 기지와 임기응변을 통해 더 알차고 독창적인 여행을 완성할 수 있다는 철없는 여행자의 자부심이 섞여있던 탓이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대부분의 여행들은 공항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가 순발력 테스트 게임이었다. 프랑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여행은 순조롭기만 했다. 공항버스에서 내린 대로 이정표를 따라 메인로드를 향해 걸어가 보니 영화에서나 본듯한 개선문이 나오고, 곧이어 샹젤리제 거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뜻밖에도, 유일하게 계획을 하고 온 ‘카우치서핑’에서 변수가 생겼다. 도착하고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여행이 위태로워졌다.



For coming home, you'll have to get the metro line 12 (dark green) to Mairie d'Issy and stop at the station "Convention". When u'll arrive at this station plz send me a text on my mobile and i'll come to pick u up... i'm at 5min of walk...don't call me just send me a text it's cheaper and i always check my mobile^^

오늘 만나기로 했던 Alleen, 그녀가 내게 보냈던 메시지



3시 40분이 넘어가자,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느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낯선 나라, 프랑스를 구경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발을 바삐 움직였다. 그녀가 왜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품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사정이 있었을 것 같았다. 아니더라도 꼭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저녁 때라도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예감이라는 게 있었다. 왠지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막연한 예감들 중에서 왜 분명한 현실이 될 것만 같은 일들은 대개 불길한 것들일까.




어릴 땐

왜 그렇게

순진한지 모르겠다



일단 메트로를 탔다. 카우치서핑이 아니었다면 들르지 않았을 Convention역은 스산하고 차가웠다.내 평생 동안 '프랑스 파리' 하면 반드시 떠올릴 이름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그런 마음으로 메트로에 올라서 그런 걸까? 프랑스 파리가 도대체 어디가 아름다운 도시라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내가 그날 만난 파리 거리 곳곳은 소변 냄새로 가득했고,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는 예술과 낭만을 사랑한다던 이 도시의 민낯을 의심하게 했을 정도였다.게다가 메트로 열차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보수되지 않은 낡은 흔적들이 쾌적하지가 못했고, 창문 마다 휘갈겨 쓴 그래피티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우아하고 세련된 도시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실망해서 그런 걸까? 


어느새 나는 이 도시 전체를 불신하고 있었다. 메트로 안에서는 그 악명 높다는 파리 소매치기들이 언제 나올까 싶어 내내 등을 꽂꽂히 세워 사방을 경계하는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머릿 속에는 절대 백팩은 매지말고크로스 백은 항상 앞쪽에 둔 뒤 손으로 지퍼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등 인터넷에서 주워 들은 여행 주의 사항들이 줄줄이 생각이 나 스트레스가 돋을 지경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도대체 무슨 여행을 한단 말인가?




Convention 역을 떠나 나름 관광을 해보겠다고 들른 몽파르나스 타워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다고 생각할 즈음, 설상가상으로 파리의 검은 구름들이 소나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밉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비를 내린단 말인가? 당장 오늘 잘 곳도 없는데!  


비를 피해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조금 지친 상태였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태극기가 조그맣게 박음질된 뚱뚱하고 새까만 백팩이 유일한 나의 친구를 자처하며 자리를 차지했다.


이 백팩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에 오기 꼭 2년 전, 어느 자동차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해외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받은 것이었다. 가방에 붙은 태극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봉사단이라는 의미였다. 샤넬이니 셀린느니 패셔너블하고 엘레강스한 브랜드들로 넘쳐나는 파리에, 그때의 나는 그런 가방을 들고 여행을 올 만큼 서툴고 순진하고 또 남루했다.


그제야 내 두 눈에는 꼬질 꼬질하게 더러워진 두 발이 들어왔다. 신발은 언제 또 이렇게 다 젖었을까? 비온 뒤 흙탕물을 뒤집어 쓴 하얀 스니커즈가 내 얼굴 같았다.


그러자 약간의 고독함이 밀려왔다. 처음 와 본 이 낭만의 도시에서, 사람 참 바글바글한 관광지 틈바구니에서, 나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이런 내 외로움 따위는 이 파리의 그 어느 누구와도 관계없다는 사실이 내가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어찌 보면 내가 무모하고 대책이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카우치서핑 웹사이트에서 프랑스 파리의 호스트들과 연결이 되고난 뒤, 혹여라도 현지에서 호스트와 만나지 못할 상황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해보질 않았으니 말이다.


고백하건대 쉽게 생각했다. 첫 카우치서핑 경험이었던 노르웨이 트롬쇠에서의 여행이 너무나 순조롭게 풀렸다. 은연 중에 모든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이 노르웨이에서 만난 첫번째 호스트, 잉그리드처럼 그저 정직하고 친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한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 자신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파리다. 그 유명한 파리,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이는 서유럽의 상징, 절대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 수 없는 곳.


사실 지금 이 상황이 잘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다. 내가 돈만 지불한다면 이곳은 절대 나를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 만큼 황량한 오지가 아니니까. 내 신용카드의 한도는 나를 일주일 동안 잘 곳 없이 방황하게 만들 만큼 빈약하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는 다시 씩씩하게 메트로로 올라 탔다. 일단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보고 나서 마음을 들뜨게 만든 뒤에, 호스텔이든 호텔이든 어디라도 찾아 들어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어느새 빗방울이 더 굵어져 아예 창밖을 가리고 있었다. 빛이 점점 붉어지는 것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는 듯도 했다.


이렇게 흐리고 칙칙한 날에도 에펠탑은 예쁠지 궁금했다.




기억이

구원한다



마침 메트로에는 언제 탔는지 모를 거리의 악사가 동전 몇 닢을 위해 아코디언 연주를 하던 중이었다.


지상으로 달리는 메트로에서는 창밖으로 비에 젖은 파리 시내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거기에는, 열차에서 유일한 동양인 배낭여행자의 얼굴을 한 내가 비치고 있었다.


어느새 악사는 Zequinha de Abreu의 'tico tico no fuba'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가 저물어 가는 파리의 바깥 하늘은 상황에 비해 꽤나 운치 있게 느껴졌다. 동전 몇 닢을 바라는 연주라기엔 그 음악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악사의 손가락이 현란해질수록 파리 시내 오밀조밀한 건물들 사이로 에펠탑이 점점 진해지는 것도 참 절묘한 장면이었다.


Tico-Tico no Fubá (Zequinha de Abreu)


그러고 보면 음악이란 게 참 신통할 때가 있다. 'tico tico no fuba'를 듣자 쓸쓸함이 잠시 잊혀졌다. 대학 시절 활동했던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했던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는 다양한 고전 음악들을 솔로로, 혹은 듀엣으로, 또는 삼중주와 사중주로 연주하며 공연을 올리곤 했다.  'tico tico no fuba'는, 언젠가 우리 동아리 후배들이 연습해서 연주회 무대에 올렸던 곡 중 하나다.


새내기 시절 클래식기타 동아리에 가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기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악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아리 활동을 해보니 '기타가 혼자 연주해서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은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기타의 진짜 매력알 알게 된 것은, 서른 명 넘는 연주자들이 기타 만을 가지고 한 목소리를 모아 같은 곡을 완성해내는 ‘합주 연주’에 있었기 때문이다다.


특히 합주 공연에 대한 첫 경험은 내게 유독 강렬하다. 동아리를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기타 연습에 대한 종용이 잦아지자, 나는 동아리에 나오는 것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나 혼자 즐기자고 시작한 기타 연습이 어느새 '누구보다 잘 한다', '누구보다 못 한다' 하는 식의 평가 대상이 되고 있었고, 일정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알듯 모를 듯 후배들에 대한 선배들의 차별도 더러 있었다. 그런 동아리 분위기는 내가 동아리를 가입할 때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마침 동아리에서는 방학을 맞이해서 개강 후 무대에 올릴 정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동아리가 불만족스러웠던 나는 이번 정기 공연 무대가 끝나면 당장 다른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고 벼르던 중이었다.


동아리를 탈퇴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방학 동안 공연을 준비하느라 매주 기타 연습에 참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은 자명하다. 30명이 넘게 모인 합주단은 단 한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매주 꼬박 3번씩 꼭 4시간씩 수 백번 같은 곡을 연습했는데, 초음부터 끝 까지 모든 단원이 끝까지 열정적이긴 힘든 조건이었다. 그게 곧 탈퇴를 계획하는 불량 단원에게 는 더 힘에 부치는 일이었음은 달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신통한 일도 동시에 일어났다. 비록 처음에는 억지로 참여한 연주회였지만, 연습하는 악보가 한마디 한마디 진도를 낼수록 합주 연습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합주단 사람들이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느껴가며, 악기 연주가 단순히 ‘잘 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할 놀이’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합주를 연습하면서 동아리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에 관여하며 음악 이상의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그 작은 집단 안에서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거나, 서먹서먹 하던 게 언제냐는 듯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서로의 기타 탄현법을 봐주고 함께 개선하느라 밤낮 어린 예술가의 얼굴을 하며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나 역시 그중 한명이었다.


때로는 학교를 졸업 한 지 수년은 지났을 선배들이 퇴근 후에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공연 연습을 격려해 주기도 했다. 단지 기타가 좋다는 이유로, 동아리를 아낀다는 이유로 자신의 돈과 시간, 그리고 마음을 쓰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들은 오직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게 좋았던 내게 정말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렇게 클래식 기타로 뭉친 사람들이 부대끼는 풍경은 어떤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아주 긴 업적처럼 보였다.


그해 뜨거운 여름이 가을 냄새를 데려오기 시작하자, 어느새 30명이 30개의 소리를 내던 무대는 연습 시간이 벌써 열 번에서 스무 번으로, 스무 번에서 서른 번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른 대의 기타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연주회 당일이 되자 나는 기분이 들떴다. 누가 보더라도 아마추어스러운 공연이었을 테지만 각진 정장의 옷매무새가 아직은 어설픈 단원들이 썩 멋지게 성장한 것에 느껴졌다. 무대도 역시 그랬다. 그제야 나는 내가 원했던 음악으로 누릴 수 있는 낭만은 혼자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더 멋진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 나는 클래식 기타, 아니 동아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 하기 싫었냐는 듯, 대학을 다니면서 1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연주회에 동참했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동아리에서 기타 실력으로 주름 잡은 것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뒤로는 동아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산 아래 어느 대학교, 클래식기타 동아리방에서의 어느 여름 풍경은 파리의 메트로에 다녀가는 중이었다. 나는 열차에서 혼자 빙그레 웃었다. 아마 그 순간 동아리에서 있었던 어떤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냈던 추억들에 푹 빠져있느라 나는 파리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삶은 나에게 쓸쓸할 틈을 주질 않는 구나.


아마 파리 메트로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 흘러나왔다면 나는 그 곡을 연주했던 2008년의 여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왔다면 그 곡을 연주했던 2009년의 초입을 떠올렸을 거다.


혼자 아는 추억 덕분에 파리의 어둡기만 했던 지하철이 어느새 밝아지고 있었다. 비록 덕분에 혼자 세상에 던져졌다는 불안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순간의 위험한 공기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어느새 연주가 끝나고, 지하철은 다시 잿빛으로. 나는 떠나가는 악사를 아쉬워했다. 별다른 대책은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위풍당당했다. 어차피 비행기 티켓은 있으니 전 재산을 털어서 호텔이라도 들어간다면야 뭐든 못하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 작은 노력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도를 더듬어 찾아간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혀있었다. 메트로 역무원에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줄 수 없냐며 황당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카우치서핑 웹사이트에 들어가 날 바람 맞힌 호스트의 답장이 없나 찾아보려고 애썼나 보다. 2011년 그때, 내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나는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시내를 돌고 돌아 이제는 정말 해가 사라진 시각. 앞 길에 동양인 세명이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때 떠올랐다. 한국인 일행이라면 십중팔구 한국인 민박에 묵지 않을까?


일단 말을 걸어볼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 혹시 한국 민박에 묵으세요?
오늘 저를 재워주기로 했던 친구가 연락이 안 되어서요.


그럼 그렇지! 마침 민박집에 머무르고 있는 그들은 내게 자신들이 묵고 있나 민박집 약도를 흔쾌히 주면서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야호! 감사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어물어 찾아간 민박집은 사정 때문에 나를 받을 수 없었고, 대신 그 집에서 소개해준 또 다른 민박집에 찾아가 늦은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커다란 민박집은 지극히 청결하고 쾌적했다. 뿐만 아니라, 뜻밖의 돼지불고기 볶은 냄새로 달큰하기까지 했다. 그 하얗고 때 없는 분위기가 하루종일 서투르고 쓸쓸했던 오늘의 내 모습과 다르게, 몹시도 반가웠다.



원래 다

혼자다



살면서 문득 어떤 일들을 혼자 감당하는 일이 불안하고 막막하게 느껴질때면, 나는 이날 프랑스 파리의 비 내리는 풍경을 기억하곤 한다. 그리고 꼬질꼬질하게 젖은 내 하얀 운동화의 앞 코를, 그것을 순진하게 내려다보던 나의 작은 체구를.


그러면 혼자가 되어 무섭다거나 외롭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의연히 받아들여야 삶의 이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고독 앞에 연약하게 굴기보다 담대하게 맞서는 순간, 그 고독을 딛고 서게 해주는 다정한 기억을 찾아내는 힘을 내게 된다.


그날 이후로 프랑스에서는 다른 호스트들과의 또 른 카우치서핑이 약속되어 있었다. 첫날처럼 나는 또 바람맞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세상의 배반으로부터 행복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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