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두려운 날의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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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사방에 어둠이 가득했다. 숨 막힐 듯 한 적막 위로 찬 공기만 포슬포슬 쌓여가는 한기를 느끼며, 내가 정말로 북극에 가까운 도시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나는 곧바로 가방에서 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잉그리드의 집 주소가 적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일단 버스정류장부터 찾아야 했다.
"Are you going to the city center? The bus will arrive over there. "
내가 잘못된 정류장에 섰는지, 중년의 노르웨이 여자가 다가와 제대로 된 정류장을 가리켰다. 그렇구나. 누가 봐도 나는 길라잡이가 필요해 보이는 이방인 여행자구나. 검은색 긴 생머리에 검은색 롱패딩. 그리고 도톰한 배낭까지. 그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정말 요정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 맞는구나 싶다.
오늘 만날 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잉그리드는 트롬쇠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당시에 이미 200번이 넘게 카우치 서퍼들을 만나왔을 정도로 카우치서핑 이력이 화려했다.
나는 웹사이트에서 그녀의 프로필을 보자마자 그녀를 다녀간 사람들의 여러 후기들을 읽었다. 그러자 무한한 신뢰가 갔고, 당장에 카우치서핑 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반나절이 지났을 때쯤, 그녀로부터 흔쾌히 카우치서핑 요청을 수락을 받아 얼마나 쾌재를 질렀는지 모른다. 그 뒤로 트롬쇠 여행이 시작되기 전 며칠 동안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같이 든든한 마음이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버스로 한 개의 터널을 지나자 쪽지에 적힌 정거장 이름이 전광판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레 버스에서 내렸다. 덩그러니 펼쳐진 흰 눈밭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함께 내린 10대 남자아이들이 저 멀리서 제들끼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다가 목표물을 발견했다는 듯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게 보일 뿐이었다.
나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을 푹푹 밟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집을 잘 찾아가면 내게도 오늘 몸을 누일 집이 생기겠지? 나는 한 발 한 발, 트롬쇠의 작은 언덕 주택가의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 내 오른손에는 잉그리드의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가 지그시 쥐어져 있었다.
트롤 인형이 달려있는 창문을 찾아. 그곳이 우리 집이야.
마침내 눈으로 뒤덮인 언덕을 밟고 밟아 잉그리드의 집을 찾아냈다. 주소대로 찾은 작은 집 창가에는, 꼬질꼬질한 인형이 하나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잉그리드가 자기 집의 표식이라며 '트롤 인형'을 찾으라고 했었는데 그 녀석인가 보구나? 나는 주소를 재차 확인하고 초인종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댔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우리 반 선생님을 기다리는 기분이 이와 비슷했을까? 아니다. 소개팅을 나가는 기분이 이랬으려나? '그래 여기가 맞겠지? '
할루! 세희~ 웰컴!
그녀다! 잉그리드다! 오늘 나의 새로운 친구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내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눈이 없어질 만큼 활짝 웃는 그녀. 그녀는 우리가 일찍이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던가 싶을 만큼, 나를 꼭 으스러지게 안아 준다. 내가 무사히 집을 찾아낸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그녀다. 이제 정말 안심이다.
잉그리드는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내가 만약 안경을 끼고 있었다면 눈가에 김이 잔뜩 서리지 않았을까. 실내는 바깥공기와 달리 훈훈한 온기로 가득했다. 잉그리드는 제 집의 현관문이 궤가 맞지 않은 것을 잘 안다는 듯, 문을 힘껏 당겨 닫았다. 곧이어 계단이 나왔다. 그녀의 집은 3층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목조 주택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잉그리드는 2층에 살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그녀의 집에 다다르자, 잉그리드는 제일 먼저 내 외투와 장갑을 받아서 현관 앞 선반에 두었다. 북극권 주민 아니랄까 봐, 그녀의 집 문 앞에는 각종 스키와 방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거기엔 바로 조금 전에 입고 썼던 것 같은 스웨터, 털모자 털장갑들도 눈이 녹아 축축해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오, 노르웨이 사람들 집이 이렇구나? 그동안 노르웨이 친구들의 기숙사 방만 가봤지, 평범한 가정집에 들어와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난생처음 들어와 보는 노르웨이 인의 가정집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파란색 페인트칠을 손수 한듯한 부엌 하며, 하얀 물방울무늬 무늬가 박힌 빨간 커튼과 빨간 의자는 그녀의 아기자기한 취향을 말해줬다. 그녀는 이 집에서 남자 친구인 크리스틴, 그리고 룸메이트 토룬과 함께 살고 있다.
희한하게도 잉그리드는 어쩐지 나보다도 더 들뜬 모습이었다. 일단 그녀는 내가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집안에 있는 카우치서핑의 흔적들을 자랑하기 바빴다. 벽 곳곳에는 카우치서핑을 다녀간 세계 여행자들의 다국적 엽서가 걸려 있었고, 화장실에는 그녀의 집을 다녀간 사람들이 한 문장, 한 바닥 씩 쓰고 간 방명록이 책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내가 오기 직전에는 독일 여자가 일주일을 머무르다 갔는데 오로라를 못 보고 가서 아쉬워하더란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현관문 바로 옆, 복도 벽에 걸린 세계지도가 람 물건이었다. 지도 위로는 알록달록한 압정들이 여기저기 꽂혀있는데, 어림 잡아도 그 개수가 100개가 넘어 보여 압도적일 정도였다. 알고 보니 그것은 그녀가 집으로 맞이했던 카우치서핑 손님들의 방명록 같은 덧이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손님들이 올 때마다 그녀는 색깔 압정을 세계 지도에 꼽는다고 했다. 잉그리드만의 카우치서핑 풍습이었다.
"한국은 네가 처음이야. 한국인 대표로 압정을 꽂을 수 있는 기쁨을 줄게."
그녀는 나를 보고 씩 웃어 보이더니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압정이 꽂히지 않은 한반도 지도가 보였다. 신이 났다. 그녀가 트롬쇠에서 200번의 카우치서핑 손님들을 맞이하는 동안, 한국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니! 무엇이든 처음이라고 딱히 대단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입성 신고식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사실 카우치 서핑 호스트와 게스트가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절대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카우치서핑 서퍼는 자신이 챙겨 온 음식을 먹는 게 예의이기도 하다.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면 재료를 같이 구입해서 함께 요리를 하거나, 외식을 나가서 각자의 몫을 결제하는 편이 좋다.
물론 호스트와 서퍼가 서로 괜찮다면 가정식 한 끼를 편하게 함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내가 그런 경우였다. 나는 잉그리드와 토룬, 그리고 크리스틴이 급제안한 저녁 식사에 함께 하는 것을 나는 마다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날의 저녁 메뉴는 토마토 수프와 중국식 감자 당면 요리! 음식도 글로벌했다. 그녀는 평소에도 아시아 음식을 즐겨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식탁에는 어쩐지 희한한 구석이 있었다. 재밌게도 토룬과 크리스틴은 내가 초면인데도 마치 나를 어제도 그제도 그들과 함께 밥을 먹던 룸메이트 대하듯 하는 것이다.
격의 없이 친근하게 대해줬냐고? 아니, 정확히는 내가 밥을 먹든지 말든지였다. 편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 지나치게 무심함을 보이는 모양새 말이다. 그들에게는 처음 본 외국인을 대접한답시고 이것저것 음식을 챙겨주는 식의 매너도 없었거니와, 남한과 북한 관계가 평화롭냐느니, 김치를 먹어봤냐느니, 처럼 어색한 대화 주제를 꺼내며 애써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도 없었다. 오슬로에서 만난 국제 학생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토룬이 요리한 토마토 수프를 맛보고 나서 내가 직접 챙겨 온 내 몫의 호밀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보니 하나 더 생각이 났다. '맞아. 그러고 보니 얘네는 처음에 인사도 제대로 안 했어. 예를 들면 얘네는,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둘 중 어떤 이도 갑자기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한다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인사를 하러 나와 내게 악수를 청하지도 않았다고. 그냥 자기들 있던 자리에서 하이~ 한 게 다잖아?’
특히 그중에서도 잉그리드의 남자 친구인 크리스틴의 일관된 고요함은 그런 무뚝뚝함을 더욱 확실하게 느끼게 했다. 잉그리드와 나 사이의 대화에도 그는 내내 소극적이었다. 잉그리드가 중간에서 '크리스틴 생각은 어때?' '크리스틴도 한국은 가본 적 없지?' 하는 식으로 굳이 한번 더 물어봐 주어야 겨우 간단한 대답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나로서는 절대 기분이 나쁘거나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크리스틴의 과묵함과 수줍음이 200% 일상적인 그의 평소 모습 같았고, 마치 그 자리에 여행자가 아니라 그의 룸메이트로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기분을 검증하고 싶어 설거지를 하며 잉그리드에게 재차 묻기도 했다.
" 크리스틴 괜찮은 거지?"
" 하하 세희 걱정 마. 크리스틴이 원래 영어 할 때 특히 더 수줍어. (Shy)."
생각해보면 크리스틴은 그저 집에 외국인 친구가 왔다고 해서 애써 자신을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꾸미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잉그리드의 집에 있는 동안 틈틈이, 그 만의 방식으로 발휘되는 호의와 배려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카메라 충전이 필요해서 USB를 찾을 때나, 내가 잘 곳인 거실의 카우치를 정리할 때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나서서 도와준 것이 과묵남 크리스틴이었다.
그런 은근한 챙김은 잉그리드의 룸메이트, 토룬도 마찬가지였다. 토룬은 부엌에서 필요한 식기를 찾던 내게, 밸런타인데이라고 받은 초콜릿이 생겼으니 몇 개 맛이나 보라며 기꺼이 고급 수제 초콜릿 상자를 내밀기도 했다. 여자가 준거냐는 물음에는 그렇다는 대답도 했다. 정말로 외국인 손님이 집에 있는 게 성가셨다면 굳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떤 여자에게 받은 것인지에 대해선, 더 이상 긴 말이 없긴 했지만.
호스트인 잉그리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여행자인 나를 의식해서 자신의 일과를 반납하고 관광을 도와주려 한다거나, 갑자기 나를 생각해서 외식을 제안한다거나 하는 비일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내가 있는 삼일 동안 예정대로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고, 밤에는 동네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녀는 식사를 먹고 나서는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느라 분주했고, 오히려 내가 그녀 옆자리에서 같이 그 노르웨이 방송을 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좋았다. 단 삼일이었는데 삼 년은 함께 산 사람처럼 그 집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쓰고 냉장고 문을 열거나 프라이팬을 꺼내 쓰는 스스로도 덩달아 신기했다. 세 사람의 공간에 있는 듯 없는 듯 들어와 있는 느낌이 이상하게 내 옷처럼 편안했던 그날, 나는 이런 게 카우치서핑의 매력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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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내가 홀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집 안에서는 향긋한 빵 냄새가 났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서 잉그리드가 초코 머핀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엇 그런데 이상하다? 잉그리드는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탕도 못 먹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든 거냐는 내 말에, 잉그리드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땐 이미 설탕 빠진 담백한 머핀은 식탁을 가득 채우고 내 입으로 두어 개 들어온 참이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서 머핀을 머핀 종이에 담고 비닐 팩에 정성스럽게 담아 포장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분홍색과 붉은 리본을 달아주니 정말 그럴싸한 밸런타인데이 선물이 됐다. 옆집에 가져다줄 거라며 그녀는 내내 신나 했다. 내가 먹은 머핀 먹은 값을 치렀다고 생각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수많은 카우치 서퍼들의 흔적들.
그러는 사이 부엌 벽면에 주렁주렁 달린 크고 작은 스케치와 엽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우치서핑을 다녀간 손님들의 흔적들이었다. 프랑스에서 산 것 같은 엽서 뒷면의 편지가 적힌 것이 보였고, 누군가 남긴 낙서도 여럿 있었다. 머핀의 고소한 향과, 그녀의 공간에 묻어간 수많은 흔적들에 동시에 매료된 나는 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나도 무언가 써 내려가고 싶었다.
"잉그리드, 내가 한국에서 왔잖아.
특별히! 네가 오늘 같은 날 가장 써먹기 좋은
한국말 표현을 딱 하나 알려줄게. "
"정말?!..... 아! 나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
그렇다. 밸런타인데이에 딱 맞는 '유용한 한국어 표현 알려주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속으로 사실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보통 교환학생들이 외국 친구 사귀는 데 흔히 쓰는 클래식한 스킬이니까. 그래도 잉그리드에게 내가 첫 한국 손님이라고 했으니, 즉석 선물로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이에 큼지막하게 네 글자를 완성했다. 잉그리드는 호기심을 못 참고 머핀을 굽다 말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세희, 한국말이지 그거? 어떻게 읽어? 나 알려줘! "
“쉬워, 따라 읽어봐! 이렇게!"
잉그리드는 내 시범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던 크리스틴에게 말한다.
"Sarang, haeyo." 쪽.
으아 뭐야 얘네 진짜. 내 단어 선택 센스에 스스로 오글거려 혼이 날 뻔했지만, 잉그리드는 더 한 여자였다. 야 크리스틴 너 내 덕분에 오늘 호강한 거야 임마. 혼자 타국 땅에서 볼만한 풍경으로는 영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뿌듯한 장면이긴 했다. 뭐 끝까지 미스터리는 남아있다. 어떻게 저렇게 멋없고 무뚝뚝한 남자애가 저렇게 사랑스러운 잉그리드를 짝꿍으로 만난 건지.
노르웨이의 소박한 로맨스 드라마의 시청자를 자처하며, 나는 설탕 없는 초코 머핀을 오물오물 먹어댔다. 아마 설탕을 넣지 않아 분명 달지 않았을 텐데, 왜 기억에는 자꾸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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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왔다. 잉그리드와 크리스틴은 힘을 합쳐 거실에 내 침대를 만들어주었다. 침대라고 해봤자 카우치 위의 각종 짐들을 치우고 담요 몇 개를 겹쳐 올려서 제법 푹신하게 꾸미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그 모든 걸 척척 해내는 크리스틴의 야무진 솜씨가 두꺼운 솜이불 마냥 온 방을 포근하게 해 주었다.
잠시 후 잉그리드와 크리스틴이 둘만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오슬로 챙겨간 침낭을 꺼내서 펼치고, 안으로 몸을 쏙 밀어 넣었다. 내 몸에 꼭 안성맞춤이었다.
자 이제 부엌도 조용, 고양이도 조용. 오래된 냉장고만 얕게 윙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는 카우치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낯설고 낯선 집에서 왠지 꼭 이 거실만큼은 오롯이 내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날 카우치에서 참 깊은 단 잠을 잤다. 내가 낯선 세계를 거부하지 않고 포용했으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환영받았다는 기쁨을 포근하게 베고서.
그해 2월, 낯선 외국 거실에서의 겨울밤은 너무나 낯설지만 따뜻한 얼굴로 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 스물두 살의 기억이 스물일곱 살에도, 서른일곱 살에도 꼭 영원하길 바라며 잠들었을 것이다.
(이야기 계속)
2011.02. 잉그리드 집 앞에서.
브런치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