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 출근길의 기억력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존에는 재력도 체력도, 혹은 판단력이나 생활력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의외로 좋은 기억력이야 말로 꼭 필요하다고.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삶에 유용하다고 만은 말할 수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경험들을 필요한 순간 제때 떠올리는 것이다. 이때 끌어낸 기억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진짜 기억력(力)이다.
몇 해 전 그런 월요일이 있었다. 2016년 9월 19일이었는데,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회사로 다시 복귀하는 날이었다. 공식적인 추석 연휴는 사흘이었지만 당시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직원 모두가 공동 연차를 쓰고 이틀을 더 쉬기로 했던 터라 앞 뒤 주말까지 붙여서 감격스럽게도 무려 9일이나 쉬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휴가 뒤다. 월요병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녀석이 와버렸으니까.
9일 만에 걷는 출근길에 찾아온 새 계절은 어느새 차가워져 쓸쓸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출근길의 한기를 쫓아내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커피 드리퍼에 원두를 내렸다. 쫄쫄 따라낸 뜨거운 물에 연휴에 대한 미련도, 쏟아질 업무에 대한 부담감도 쓸어내리려 한 심산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5년 전, 없는 돈 아껴가며 종종 들렀던 오슬로의 재즈 카페 Barejazz에서의 소음들과 짙은 커피 향이었다.
카페에 갔던 당시 나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오슬로에 살고 있었다. 그때가 2011년. 나로서는 너무나 원했기에 감격스럽고도 감사한 1년 간의 외국 생활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에 비해서 주머니 사정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우리나라 빅맥 세트가 5천원쯤 할 당시에, 같은 메뉴가 맥도날드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만 8천 원쯤 되는 동네였을 정도로 헉 소리 나는 물가를 자랑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산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사계절 내내 ‘외출’, 아니 정확히는 ‘외식’을 무섭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생 신분인지라 다달이 기숙사 비나 교재비 같은 큰돈 쓸 일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관광객처럼 먹고 즐길 사정이 못됐으니, 의도치 않게 교환학생 생활은 대개 남루할 수 밖에 없었다. 외식은 커녕 슈퍼에서 식료품을 살 때도 First Price라고 불리는 가장 저렴한 PB 제품만 골라사기 일쑤였고, 학교에 갈 때면 간단한 도시락을 챙기는 게 필수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아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노력들이 그저 내가 지나치게 청승맞아서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날 딱히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내가, Barejazz라는 재즈 카페를 내 발로 찾아 갔을 리는 만무했다.
오슬로에 살게 된 지 두 달쯤 됐을 때였을 거다. 같은 수업을 듣느라 매주 한번 꼴로 마주치는 노르웨이 남자아이를 알고 있었다. 어쩌다 말이 튼 것을 계기로 종종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학교 건물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내게 그는, 바쁘지 않으면 자기와 커피 한잔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마 교환학생에 오기 전에 ‘Grap a cup of coffee?’라는 생활 영어 숙어를 외워본 적이 있었겠지만, 정말로 그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외국인에게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노르웨이에서도 카페라는 곳을 가게 됐다. 그것도 ‘재즈 카페’를 말이다.
북유럽의 카페는 짐작했던 바와 같이 이국적이고 멋스러웠다. 친구를 따라 들어선 카페 안뜰에는 야외 테이블들이 놓여있었고 그 테이블들을 지나면 건물 본관으로 들어서는 정문이 나왔다. 카페 내부는 복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 벽에는 천장에 가닿을 때까지 재즈 음반들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커피는 2층에서 주문을 받는 듯 했다.
친구를 따라간 2층에는 한잔의 커피가 내 지갑 사정에 무슨 대수냐는 듯, 머리가 노란 언니, 피부가 까무잡잡한 오빠,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촌스럽게도 나는 그때 조금 설렜던 것 같다. 내가 오슬로에서 이렇게 멋있는 카페에 와보다니.
동시에 한편으로는 조금 창피했다. 카페를 왜 이제야 와본 거지? 한국에서 흔하디 흔하게 갔던 카페인데.
사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의 돈으로 떠나 온 교환학생 생활 동안, 타국에서 쓸 데 없는 데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먼저 가자고 하지 않으면, 혼자서 카페나 식당에 찾아가 괜스레 여행자 분위기를 내는 짓 따위는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엄격한 규율을 애써 세우고 지키느라 하루하루를 너무 아껴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은 친구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일본 독일, 멕시코, 라트비아,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도 같은 이유로 외식을 참곤 했다. 그러니 오슬로에 모인 혈기왕성한 국제학생들이 화려한 클러빙을 즐기거나 쇼핑에 몰두하기보다 기숙사에 모여 주야장천 소박한 키친 파티만 했던 것은, 다시 말하지만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 밖에는 탓할 게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값과 크게 다르지 않은 Barejazz의 메뉴판을 보며 잠시 머리가 아팠다. 겨우 이 작은 돈 때문에, 내게 한시적으로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충만하게 즐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노르웨이까지 와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이러려고 교환학생을 온 건 아닐 텐데.
금세 다른 이유로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35 크로네(NOK) 쯤 쓰면 이번 달 생활비 예산에 얼마나 어긋나는 거지?
허무하게도 그날 커피 값은, 자신의 즐거운 의무라는 듯, 그 친구가 자처해서 치러 주었다.
우리는 2층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 아래로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세련된 차림새의 사람들이 보엮다. 그 모든 것은 내 책상 위에 박제해 갖다 놓고 싶은 한 컷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도 있었다.
어느새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소음이 재즈 음악과 섞여 실내를 가득 채웠다. 지금 이 두근 거림이 사실은 내 앞의 얘 때문인 건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 건가 헷갈릴 때쯤, 나는 Barejazz라는 카페 이름을 분명히 외운 것 같다.
곧이어 그 순간 카페의 소음들은 내 인생에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사이 그 남자애는 두 번째 커피 잔을 비우고 내게 혹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지 않겠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그 친구가 없어도 종종 Barejazz에 갔다. 내가 잘 아는 괜찮은 카페에 가보자며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이곳 아닌 다른 카페나 식당에서 기분도 내보는 대범함도 발휘했는데, 미리 가격을 셈하지 않고 계란 토스트나 토마토 스무디 같은 새로운 메뉴에 자신 있게 도전할 때는 특히 기분이 더 좋았다.
그럼에도 오슬로의 여러 카페들 중,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오로지 Barejazz 뿐인 것은, 그곳이 내가 교환학생 기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부려 본 첫 유흥의 장소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날의 소박한 경험은 내게 '낯선 시간'을 '익숙한 일상'으로 만끽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살면서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특권 같은 시기를 지나치게 아껴 쓰지 말고, 맘껏 맛보고 누리고 살라고 격려하면서.
사무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던 나는, 수년 전의 어느 오슬로 카페의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이 났다. ‘나 지금 설마 도피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겨우 커피 향 때문에 오래전 해외의 기억을 떠올리다니. 말로만 듣던 외국병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그러나 속으로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날의 행복한 나들이의 기억은 오늘의 성실한 나를 응원하는 하나의 보험이라고 밖엔 설명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나도 커피를 찾아 마신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골라서, 드리퍼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붓고, 미세하기 다른 향과 맛을 구분해 보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돈을 어떻게 슬기롭게 써야 하는 지 알게 된 것이다. 학생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면서 얻게 된 작은 변화다.
언젠가 나중에 졸업 후 돈을 벌어서 다시 이곳에 온다면 커피 값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오슬로에 있는 공원의 작은 벤치에 앉아 장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커피가 뭐냐 오슬로 항구에 정박해있던 요트를 탐했더라면 지금 내가 요트를 갖고 있질 않았겠나 어린 나를 원망도 해보지만, 어쨌거나 그 시간들을 지나 나는 이제 좋아하는 커피 향 정도는 따지고 골라 살 수 있는 밥벌이를 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고즈넉한 재즈카페와 강남의 어느 차가운 사무실 사이에는, 참을 게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넘쳐났던 학생 시절의 나와, 그런 어린 나의 시행착오를 비집고 올라와 제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랐던 소망들이 이어져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제법 그들의 기대와 노력에 보답할 수 있는 지금의 내 자리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한 모금씩 내 목을 타고 남어왔다. 나는 커피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지킬 수 있는 생활인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힘을 내면서.
커피 한 잔이 좋은 날의 풍경을 데리고 오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의 즐거운 기억들은 어딘가 매복해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현실의 어깨를 펴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내게 미리 해둔 최선의 보험이다. 그 다음의 일들이야, 지금 여기에 와 있는 내 몫, 내 몫이다.
그 몫이란 그저 오늘 내 앞의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 좋은 기억력일수록, 과거지향적인 사람보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을 위해 쓰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능력'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 즉,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좋은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특정한 대화나 사랑받고 행복했던 장면들을 필요한 순간 제 때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능력까지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날 오전 업무는 출근길만큼 버겁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브런치 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