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 원정대, 지금 시작합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언제까지 이 지겨운 바이러스 때문에 나의 탐험을 미룰쏘냐! 하여 시작한 카야토스트 원정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체인점은 미루고, 로컬 맛집부터 원정을 시작하려 했지만.. 무려 연차까지 써가면서 기획하였지만 결국 망해버린 나의 첫 원정. 아쉽지만 체인점으로 그 서막을 알렸다.
오늘 내가 방문하려고 했던 곳은 Ah Seng (Hai Nam) Coffee집이다. Amoy Street Food Centre 2층에 있는데 미친,,, 구글 주소에는 그냥 7 Maxwell Rd라고 쓰여있다. 길치인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푸드센터를 지나 지나다니는 할아버지들을 붙잡고 몇 번이나 길을 물었다. 그중 아주 친절했지만 나보다 더 모르셨던 할아버지의 안내로 공원으로 들어갔고 구글이 알려주는 대로 이상한 정부센터까지 들어가 버렸다. 문지기 아주머니가 나를 딱하게 여기시고 결국 손을 붙들고 엘리베이터를 태워서 데려다주셨다. 40분을 예상했지만 총 소요시간은 2시간.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방문한 Amoy street food centre 2층 95 stool에 있는 Ah Seng Coffee! 는 구글맵에서 분명히 영업 중이라고 했지만 굳게 닫혀있었다. 새벽 5시 반부터 연다고 한 구글맵의 멱살을 흔들고 싶었다.
허탈한 마음을 부여잡고 내려왔다. 아무 카야토스트로 배를 채우려고 내가 시내까지 나온 것이 아니다. 다시 구글 맵을 켜고, 남쪽에만 있어서 아직 가보지 못했던 체인점을 검색하였다. 다행히 5분 거리에 있다! 그리하여 방문한
Killiney Kopitiam
한국사람들에게 카야토스트라고 하면 보통 야쿤 토스트, 토스트 박스 두 개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 같다. 야쿤 토스트는 한국에도 지점을 냈고 (생기자마자 달려갔지만 탄 빵에 창렬 한 잼, 다시는 가지 않았다. 역삼말고 강남지점이 생겼다는데 거기도 가봐야한다.) 토스트 박스는 요즘 들어 세가 대단하기 때문에 당연히 따로 방문하여 평을 내릴 예정이지만, 로컬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두 곳 말고도 많이 가는 곳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Killiney Kopitiam' 그리고 'Heavenly Wang'이다. 이 사대천왕을 일단 파볼 예정이다. Killiney Kopitiam은 총 29개의 지점이 있고 동서로 퍼져있지만 남쪽에 몰려있다. 보통 북쪽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는 여행객들에게는 꽤나 좋은 위치이다.
아침으로 먹으려던 카야토스트를 점심시간이 다 되어 먹었기 때문에 이 집의 또 다른 명물, 락샤도 함께 시켰다. 카야토스트와 찰떡궁합인 Tea si kosong (차에 설탕 노 우유 예스)까지 총합 8.7불이 나왔다. 그렇게 싸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가격. 락샤를 밀어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씻고 와 한 입 베어 물었다. 계란까지 찍어먹을 정신은 없었다.
두께: 야쿤 토스트보다 두껍지만 토스트 박스와 비슷하거나 더 얇다. 겉 바삭 속 촉촉이 딱 들어맞는 맛이다. 수분기가 거의 없는 야쿤 스타일이 싫다면 분명 좋아할 맛이다.
버터: 넉넉한 양이다. 나오고 1분 후 확인했을 때도 아직 녹지 않은 버터가 있었다. 손에 묻을 정도로 혜자였던 버터에 감동을 받는다.
카야잼: 판단 향이 정말 아련하게 묻어나는 연한 연두색 잼이다. 캐러멜 스타일보다 판단 향이 물씬 나는 고소한 연두색 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숨 살짝 나온다. 너무 달지 않아서 좋지만 야쿤 토스트에 들어가는 카야잼이 더 깊고 좋은 맛이었다. 주인장이 양을 의도적으로 아끼려고 한건 아닌 것 같지만 5%만 더 늘렸으면 딱 좋았을 그런 느낌이다. 이 부분은 지점마다 다를 것 같다.
위생상태: 토스트 박스 정도로 가게 자체가 깨끗하다. 내가 방문한 Robinson Rd 지점은 누가 봐도 아들과 아버지인 부자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다른 지점들도 가족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플레이트도 깔끔한 검정색 플라스틱이라 마음에 들었다. 야쿤 토스트는 정말 10년 넘게 쓴 것 같은 붉은색 플라스틱 그릇에 빵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튀기면서 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아주 훌륭하다.
그 외
음료: 싱가포르에서 먹어봤던 차 중에 가장 연하고 임팩트가 없었다. 동남아는 커피, 차 모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쓰거나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데 차를 한 열 번 우린 물에 우유를 쪼로록 부은 맛은 처음이다. 이 지점의 특징인 것 같은데, 다른 지점에서 다시 먹어봐야 알 것 같다. 한국인 입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로컬 사람들이 마시면 욕할 맛이다.
락사: 나쁘지 않다. 고명이 충실히 들어가 면 말고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지만 국물의 깊이가 아쉽다. 코코넛의 부드러움은 살렸지만 락사 특유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 빠른 점심으로는 다시 먹을지 몰라도 락사를 먹기 위해 올 곳은 아닌 것 같다. 락샤는 나의 인생 맛집 두 곳이 있는데 조만간 다시 방문하여 후기를 써볼 예정이다.
총평 - 3.5/5
빵과 버터는 아주 좋았지만 잼과 음료가 약했다. 카야토스트는 무릇 진한 차 또는 커피와 함께 마셔야 그 진가를 발휘하건만... 달콤한 카야토스트 한 입에 눈이 번쩍 뜨이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영광을 얻지 못했다. 다른 지점을 다시 방문해볼 용의는 충분히 있다. 물론 카야 토스트만 맛 볼 예정이다.
다음 탐방 집은 Heavenly Wang이다. 그나마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