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과 수초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쌍둥이 녀석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금 5만원씩을 주셨다.
아홉살이 된 녀석들은 엄마에게 돈을 가져다 주지만
열덟살 처럼 엄마가 은행에 적금해 줄께 라는 말에
조건 없이 동의하지 않는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겠단다.
인라인 스케이트 받고 싶다고 해서 사 주지 않았냐 했더니
그건 엄마 아빠의 선물이고
이 돈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선물이란다.
그러면서 엄마의 표정을 살피더니
둘이 쑥덕 쑥덕 하더니
그 돈 중에 반은 어버이날 선물로 줄테니
반은 자기들이 쓰겠단다.
다이소에 갔다.
4단 메모장, 50색 싸인펜, 양면 색종이, 카네이션 접는 색종이, 인형, 볼펜을 골랐다.
그리고는 어항에 넣을 인공 수초와 야광 자갈 그리고 붕어밥도 골랐다.
작년 10월,
10년 째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처음으로 '야시장' 이란게 열렸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 나와서
풍선도 터뜨리고, 숫자판도 맞추고, 장난감 칼도 사서 휘두르고 다녔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도 몰려 나와서
전부 술에 취해 즐거워 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밝은 사람들이었다니!
쌍둥이 녀석들은 손가락 한 마디 만한 금붕어 수백마리가 들어있는 수조에서
금붕어 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로 작은 금붕어 세 마리를 비닐 봉지에 담아왔다.
집에 있던 배달음식 담아왔던 프라스틱 통에 녀석들을 담아놓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두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학교에 다녀온 녀석들의 손에는
비닐 봉지에 금붕어가 한 마리씩 들려 있었다.
방과후 생명과학 시간에 금붕어를 관찰하고 한 마리씩 받아 왔다고...
작은 어항을 샀다. 자갈을 깔고 인공 수초와 금붕어들이 숨을 수 있는
몇개의 아이템이 들어가고 여과기를 설치했다.
금붕어 세 마리가 사이좋게 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야생에서 치열하게 살던 야시장 출신의 녀석이
학교에서 온 물고기 두 마리를 물어 죽였다.
절망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금붕어 세 마리를 데리고 왔다.
쌍둥이 녀석들은 자기들이 받은 어린이날 용돈으로
작년에 산 어항의 수초를 갈아준 것이다.
반 년을 함께 산
물고기 친구들의 밥도 사 준 것이다.
다이소에서 1000원, 2000원 하는 알록 달록 수초들과
야광 자갈이 촌스러울 것 같았는데
넣고 보니 화사하니 좋았다.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으니
맨날 검정색 수영복만 입고 수영하던게 생각나...
인터넷으로
검정색 수영복에 형광 줄이 그어진
수영복을 하나 샀다.
이제
곧
수영장 갈 수
있겠지....
작은 어항에 있는
녀석들이
왜
이리
부러운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