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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Dec 19. 2019

공황장애 선배

불안장애 환자의 일상

 어느 날 친한 회사 후배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후배와 나는 주로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했기 때문에 전화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오늘 걸려 온 전화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역시나 벗어나지 않았다. 후배의 목소리는 다급해 보였고 떨려 보였고 무엇인가 힘들어 보였다. 늘 즐겁게 만났던 후배였는데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다급한 목소리로 후배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후배 : 선배 뭐 하고 있어요?
  
나 : 그냥 있지. 무슨 일 있어?

후배 : 뭐 다른 것은 아니고 저 아무래도 공황장애 초기 증상 온 것 같은데 병원 좀 알아보게요.

나 : 응? 뭐라고? 왜 무슨 일이야? 지금 증상이 어떤데?

후배 : 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날 기미가 안 보여요. 벌써 1년째인데 맨날 야근하고 죽겠어요. 스트레스 엄청 받고 심장 뛰고 정신 못 차리는 느낌이었어요. 잠깐이면 멈출 줄 알았는데 꽤 오래가더라고요.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증상이 멈추지 않아서 선배한테 전화했죠. 혹시 선배가 경험했던 것이랑 비슷한가요?

나 : 내 증상이랑 비슷해 보인다. 우선 번아웃이 온 것 같아 보여. 하루하루 출근해도 계속 일은 산더미고 끝날 기미는 안보이지? 그러다 보면 또 아침이고, 계속 반복되다 보면 너도 모르게 지쳐 가는 거야. 예전에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던 일들이 이제는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지고 그럼 출근하기 싫어지고 그러지 않아?

후배 : 네 맞아요. 진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넘겼던 일들인데 지금은 너무 크게 다가오니까 이게 뭔가 했어요. 사실 1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견뎌서 넘겼었는데 지금 또 오니까 죽겠더라고요.

나 : 사실 나도 3년 전에 한번 크게 와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또 와서 결국 병가 내고 쉬고 있는 거잖아. 이게 정말 초반에 잘 잡아놔야 더 큰 스트레스로 안 넘어가게 될 거야. 초반에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후배 :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병원 가보는 게 낫겠죠?  

나 : 그럼 그럼. 당연하지. 그래도 네가 지금 망설이지 않고 나한테 전화하는 것 보니 다행이다. 정신과 한번 방문해봐. 약도 먹어보고 그럼 정말 괜찮아질 거야. 아! 그리고 네가 증상이 왔을 때 무엇 때문인지 글로 써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더라고! 글을 쓰다 보면 너도 모르게 호흡도 안정되고 좋아질 거야!

후배 : 아하! 네. 한번 써볼게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약 먹으면 정말 좋아져요? 선배는 그랬어요?

나 : 약 먹는다고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음.. 나를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약은 지친 체력을 회복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셨어. 사람은 충전을 해야 되고 체력을 써야 되잖아. 근데 너는 지금 계속 쓰기만 하기 때문에 충전을 못하고 있는 거야. 그 약은 너를 충전시키는 용도이고 결국 너는 그 충전된 에너지로 번아웃을 이겨내는 거지! 그렇기에 약은 필요하다고 봐. 아! 맞다! 보통 항우울제 같은 약은 복용 후 3주? 정도 지나야 효과가 나거든. 서둘러서 내원해서 먹어보는 것을 추천해! 그래야 더 힘들지 않아.

후배 : 아 그렇구나. 그럼 얼른 가봐야겠네요. 혹시 병원 추천해 줄 수 있는 곳 있으세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나 : 음.. 난 신촌에 xx병원 갔었어. 웬만한 정신과는 예약하고 가야 되는데 대부분 1주일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근데 거기는 상담보다는 우선 약을 좀 센 걸 지어주시더라고요. 약 효과는 정말 있더라. 급하면 거기부터 가봐.

후배 : 세상에 힘든 사람이 많은가 보네요. 예약을 하고 가야 하다니.. 알겠습니다. 후.. 이게 참 일에 대해서 책임지고 해야 되니까 너무 힘이 드네요. 저 아니면 할 사람도 없고 정말....

나 : 그게 문제지. 우리 같은 사람은 책임감이 너무 강한 거야... 굳이 그렇게 책임감 너무 갖고 일하지 마. 인생에 있어서 네가 제일 중요한 거야. 나 봐봐. 나 병가 가니까 내일 누가 해? 안 하잖아.... 돌아가면 나 그 일 또 시킨데... 후아... 정말 나 빠져도 그냥 멈춰놓으면 끝이더라.. 그러니 너무 책임감 갖고 일하지 마. 네 몸부터 먼저 챙겨!!

후배 : 네 알겠습니다.ㅠㅠ 오늘도 한잔 하고 들어가는 중입니다. 정말 힘드네요.

나 : 그래도 술은 적게 마셔 아니 마시지 않는 게 좋다더라. 지금은 이겨내는 것 같아서 좋지만 나중에 더 힘들어질 수 있어. 차라리 술 먹고 싶을 때 전화해! 수다 떨면 좀 나아질 수도 있어.

후배 :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출근하자마자 병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조만간 찾아뵈러 가야 할 듯합니다. 감사해요!  

나 : 그래! 언제든지 힘들면 연락하고! 내일 병원 잘 다녀오고! 힘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만났던 후배에게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 또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후배는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진단받았고 나처럼 약을 먹고 견뎌 나가고 있다

 후배가 말하길, 정말 경험해보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질병이라고. 그래도 물어볼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공황선배로 불려지고 있다.

 

 정신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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