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밍 Nov 13. 2019

7년 차 직장인의 휴직 이야기

휴직 1개월째 되는 날

 휴직한 지 정확히 1개월째 되는 날이다. 내가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데 2개월이 남았다는 말과 같다. 


 오늘 이 시점 휴직을 선택한 나에게 '휴직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7년 차 선임연구원이었고 1년만 더 지나면 책임 연구원 진급 케이스였다. 나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고 책임연구원으로 진급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런 내가 휴직을 선택함으로써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돈, 진급, 평가 말이다. 그러나 휴직을 선택하면서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건강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들. 그렇기에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휴직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휴직을 선택했던 이유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재밌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또한 나는 평생을 순탄한 길로 걸어왔다. 수능을 보고, 대학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다. 아무 어려움 없이 말이다.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순탄하지 않은 길로 걸어야 할 시기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픈 지금 그 길을 걸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너무 늦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늦지 않은 지금, 나는 순탄하지 않은 길로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휴직 1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휴직 1주 차의 첫날은 정말 좋았다. 늦잠 자고 싶은 만큼 잘 수 있었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수도 있었고 넷플릭스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시간과는 사뭇 달랐다. 회사에서의 하루는 무엇하나 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저녁이었다. 그런데 휴직 첫날은 왠지 모르게 하루가 1주일같이 길게 느껴졌다.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거 다하고도 시간이 남으니 말이다. 그러나 2일 차부터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은데 할 것이 없는 나는 계속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퇴사할까?', '퇴사하면 뭐 먹고살지?',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들은 계속 불안을 만들어 갔고 확장해 갔다. 그렇게 1주 차를 불안 속에서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그렇게 2주 차로 접어들어가는 월요일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나름 대기업이라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휴직에 들어간 직원들에게 상담을 해주겠다며 상담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상담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담사의 질문은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퇴사를 할 것인지 계속 묻는 느낌을 받았다. '휴직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요?', '휴직함으로써 진급, 평가 등 고민이 많았겠어요. 혹시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어요?'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 찝찝함을 남긴 체 다음 상담일정을 잡았지만 그 뒤로 상담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조금 힐링된 느낌을 받았다. 

 1주 차처럼 허무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장사였다. 자영업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나의 부모님은 장사를 하셨다. 카페, 가든, 스크린골프 등 다양한 일을 하셨고 아마도 그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기에 장사를 어떻게 시작할 지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고 장사에 대한 강의를 신청하여 듣게 되었다. 강연자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그는 20대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20개 이상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성공한 CEO였다. 그에게서 나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열정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의 나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생각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는 달랐다. 자기 사업이었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작은 부분부터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어도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그렇게 나의 불안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렇게 3주 차로 넘어갔다. '브런치를 시작해볼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던 그때. 나의 아내는 불안장애, 우울증에 걸린 너의 경험을 브런치 글로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글을 쓰게 되면서 나의 불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을 쓰는 과정에서 위로받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처음 글을 발행하기까지 수십 번을 다듬고 작성했다. 그렇게 작가가 되었고 나의 첫 글 '불안장애, 만신창이 7년 차 직장인'이라는 글을 발행했다. 1시간이 지났을까? 브런치에서 계속 푸시 메시지가 왔다. '조회수가 1,000회 달성했습니다', '조회수가  2,000회 달성했습니다'라고 말이다. 무슨 일인가 해서 봤더니 나의 첫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리게 되었다. 5년 전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 없는 성취감을 느꼈고 그 성취감은 나의 불안을 작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글에 공감하고 위로가 되었다는 댓글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고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싶어 글을 연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4주 차에 접어들면서 블로그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글을 쓰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휴직 4주 차인 지금, 브런치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면서 조금씩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휴직 1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나의 꿈은 '나의 꿈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던 나인데 지금 그것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삶에서 느끼는 여유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 이토록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 미리 알았더라면 고민하지 않고 휴직했을 것이다. 휴직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잠깐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전 02화 나는 왜 겁쟁이가 되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