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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Jan 13. 2020

고마운 나의 아내에게

#불안장애 남편을 둔 아내에게 쓰는 편지

 2019년,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나와 함께해준 아내에게, 그리고 불안장애 남편을 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네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결혼생활 4개월 동안 행복하기만 했던 그때, 나에게 다시 찾아온 불안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미안하다는 말은 오늘 생략할게! 더없이 미안 해질 테니까.   

 

 그때 기억나니? 2년 전이었을까? 내가 불안장애를 겪고 밥도 먹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가 몰래 우리 집에 와서 카레를 만들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퇴근하고 힘들었을텐데 나를 위해 밥을 해주러 온 너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해. 그 날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 덕분에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고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었어. 그리고 그때 나는 결심했지. 다시는 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웬걸, 결혼하고 다시 불안장애가 찾아오더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다시 불안에 무너지는 나의 모습을 너에게 보이고 만 거지. 몇 달 동안 퇴사병가에 대한 고민을 반복해서 너에게 말했던 것 같아. 계속되는 내 고민에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잘 들어줬던 너에게 고맙고 또 고마워. 그때 나에게 네가 했던 말 혹시 기억나니?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너는 무엇이든지 잘하니까'라고 말이야. 그 말이 나에게 용기가 되었고 그렇게 나의 선택은 휴직으로 이어지게 되었었지. 그때도 너는 흔쾌히 잘했다고 말했었고 너의 끝없는 배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휴직을 한 이후에도 너의 배려는 계속 이어졌었지. 네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할 때에도 내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너의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오늘은 뭐했어?'라는 말에 혹여 내가 눈치를 볼까 그 말을 하지 않았던 너의 모습. '집안일은 혼자 할 생각 하지 말고 같이하자. 지금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했던 너의 말들. 네가 정말 큰 사람으로 보이더라.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내 마음 한편에는 무서운 생각도 들더라. 나에게 늘 배려만 해주다 네가 힘들어질까 봐 말이야. 그렇기에 이 편지를 쓰면서 다시 한번 결심을 하려고 해. 네가 힘들 때 내가 옆에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좀 더 강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야.


 2019년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아. 결혼 덕분에 모든 힘을 결혼 준비에 쏟았고, 결혼이 끝나고는 나에게 다시 찾아온 불안장애에 온 힘을 쏟았고, 정말 쉴 틈 없이 지나간 2019년이었는데도 한 번도 힘든 내색하지 않았던 너에게 또 한 번 고맙다. 이제 복직이 3일 앞으로 다가온 나에게 '이제 곧 출근이네 ㅋㅋ' 하면서 나를 놀리는 너의 장난기 가득 찬 모습이지만 그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항상 날 웃게 만들어주고 응원해주는 너의 모습 덕분에 내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2020년,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되었으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우연히 TV SHOW에서 봤던 김미경 강사가 했던 말이었어. 결혼 하기 이전에는 부모님 밑에서 기초 지식을 쌓는 것이고, 모든 사람은 결혼 이후에 성장한다고 말이야. 우리의 성장한 모습은 어떨지. 5년 후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10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 나는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게 너와 함께여서 더 행복하고 설레는 것 같기도 해. 우리에게 다가온 2020년은 서로에게 조금 더 발전적이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 2020년도 잘 부탁해.

그리고 사랑한다. 나의 아내 시내야.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혼자 마음속에 병을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해 표현한다면, 조금 더 빨리 불안장애를 이겨낼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건강해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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