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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주디 Jan 19. 2022

든든한 후원자

우렁각시에서 매니저까지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잘 키우는 게 돈을 버는 거야라고 말씀하신 엄마는 내가 일을 하게 되면서 나의 우렁각시가 되었다.


나는 결혼 후 친정집 근처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지냈고, 큰아이를 낳고 키울 때 친정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수시로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을 봐주고, 집안일 못하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음식을 해다 주시거나, 베란다 청소를 해주고 가셨다.


내가 처음 맞벌이를 하고 싶다고 아이들을 봐달라고 했을 땐, 내가 자꾸 일하려고 해서 신랑이 능력을 못 키운다며.. 그냥 집에서 아이들이나 잘 돌보라고 하셨는데..

막상 내가 워킹맘이 되고 회사로 출근했을 땐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서 나를 도와주셨다.


어느 날은 냉장고 청소를 해놓고 엄마가 만든 반찬을 놓고 가시기도, 소파에 잔뜩 쌓아놓은 빨래를 개어놓고 침대 커버를 사 와서 바꿔놓기도, 아이들이 아플 땐 나 대신 병원을 데려가기도 하셨다.

엄마는 내가 회사에서 바쁠까 봐 연락도 없이 그렇게 우렁각시처럼 왔다 가셨다.


내가 퇴사를 하고 디지털노마드로 집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는 내가 집에 있는 게 좋으신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병원을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아빠에 대한 하소연을 하고 가셨다.


내가 출간제의를 받고 책을 쓴다고 했을 때는 항상 나에게 작가님이라며 책은 잘 쓰고 있냐고 하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리고 첫 대면 강의를 가게 되었을 때 엄마께서는 나의 매니저를 자청하며, 엄마가 꼭 데려다주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전업주부로 집에선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곤 했는데, 나는 워킹맘인 친구 엄마의 정장을 부러워했었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라도 오는 날이면 내가 보기에 가장 예쁜 옷과 구두를 신고 오라고 얘기하곤 했었고 엄마는  말대로 한껏 이쁘게 입고 학교에 오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번엔 엄마에게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어제 엄마께서는 한껏 차려입고 우리 집으로 날 데리러 오셨다.

코로나라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부츠를 신고 오셨고, 행사 때나 입던 모피코트에 아빠가 큰마음먹고 사주신 명품백과 크기가 엄청 큰 귀걸이를 하고 오셨다.


엄마의 모피코트에 빛나는 귀걸이는 잘 어울렸고, 가방과 신발도 모두 예뻤다.

엄마는 나에게 한숨 자라고 하신 후 내비게이션과 대화를 하며 나를 강의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엄마가 갑자기 난감해하며 크게 웃으셨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엄마의 부츠 굽 반이 떨어진 거였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 내서 웃었다.

코로나로 3년 동안 안 신고 모셔둔 신발의 굽이 삭아서 부서진 거였다.


엄마는 이거 비싸게 주고 산 신발인데 어쩌냐며 굽만 갈 수 있을까?라고 하셨고,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계속 웃게 되었다.


한쪽 굽 없이 밖으로 나가는데, 엄마가 마스크를 깜박했다며 마스크를 쓰는 순간 또 아이고 하며 난감해 하셨는데, 마스크를 쓰다가 귀걸이와 귀걸이 버클이 떨어져 바닥에 떨어진 거였다.


나는 바닥에서 귀걸이를 주어서 버클을 끼워드렸는데, 내가 버클을 반대로 끼어서 엄마는 귀걸이를 그냥 다 빼버리겠다며 또 크게 웃었다.


엄마는 당황해하며, 엄마 때문에 우리 딸 정신없겠다며, 걱정을 하셨지만 나는 엄마 덕분에 긴장도 풀리고 엄청 웃긴 추억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의 첫 강의를 지켜봐 주셨고, 영상으로도 열심히 나를 찍어놓으셨다.

엄마가 찍은 영상은 정신없이 왔다 갔다 나의 얼굴만 잡은 영상이었는데,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동영상을 찍어보신 거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엄마는 오늘 찍은 영상을 보내주셨고, 오늘 고생 많았다는 나에게 작가님도 고생했다고 보내주셨다.

엄마는 다음 주도 밤늦게 춥다며 매니저를 하시겠다고 하신다.

내가 중고차를 사고 운전을 다시 하기 전까지 엄마는 매니저를 해주겠다며 자처하셨다.


이번 주엔 엄마에게 예쁜 신발을 사러 가자고 해야겠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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