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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주디 Feb 02. 2022

층간소음 때문에 1층으로 이사한 건 아니었지만

그 동네라 행복했었다.

큰아이가 5살 둘째가 6개월 되던 해에 신혼집보다 조금 더 큰 평수의 1층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어리기에 층간소음 걱정도 없고, 뛰어놀기에도 좋다며 1층 집을 알아보고 오래된 아파트라 올수리 리모델링도 했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이사 가기엔 1층 매물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1층 집에서 12년을 살았다.

큰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초등학교로, 중학교 3학년 후반까지 그 집에서 다녔다. 둘째는 배밀이를 할 때부터 거의 초등학교 졸업까지 보냈다.


몇 번 이사를 계획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하지 못했고.. 그리고 더더욱 우리가 그 동네 그 집에서 떠나지 못했던 건 아이들의 친구들, 나의 동네 친구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이들 키우기엔 좋은 환경의 아파트였다.

아파트 근처에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가깝고, 공원과 도서관도 가까우며, 걸어서 갈 수 있는 대형마트들도 여러 곳 있는 오래된 신도시라 아이 키우기엔 좋은 동네였다.


1층에 살아서 좋았던 점은?

1층이라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도 좋았고, 아이들이 밖에서 놀면 베란다에서 지켜보기도 좋았다. 

1층이라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했고, 줄넘기도 할 수 있었다.

1층이라 아이들 친구들, 내친구들이 오다가다 들리기 좋았다.

1층이라 집 앞 화단의 나무들이 집 앞 정원같이 보였다.


그래서 큰아이는 매일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팽이놀이를 하고 놀았고, 나도 동네 엄마들을 초대해 함께 보냈기에 우리 집은 금방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딸 6살 생일날 유치원친구들과 가운데 자리 차지한 오빠




우리가 1층으로 이사 왔을 때, 우리 위층엔 7개월 된 쌍둥이 남자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있었다.

쌍둥이 아이들을 봐주는 분이 친정엄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 봐주는 이모님이셨고, 그 이모님께서 아이들을 지금까지 봐주고 계신다.


둘째들도 커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며, 2층 집 쌍둥이들은 우리 큰아이를 형이라고 잘 따랐고, 큰아이도 여동생보다 남동생들과 노는걸 더 좋아했다.


쌍둥이들이 커가면서 약간의 층간소음들이 있었지만, 우리 집 식구들이 예민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12년을 살며 그렇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시부모님께서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실 때면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사냐며, 빨리 위층으로 이사를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고,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도 나에게 위층 안 시끄럽냐며 본인은 1층에 못 산다는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2층 쌍둥이네 집에선 층간소음으로 시끄러울 텐데 미안하다며 가끔씩 과일을 사다 주기도 하고, 길에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과자를 사보 내기도 했고, 명절이면 선물상자를 가져다주었다.


나도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 신랑과 쌍둥이네 집에 줄 선물상자를 고르기도 했고, 시골에서 가져오는 음식들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사 오고 처음 맞는 명절 연휴 끝에 쌍둥이네가 생각나고, 그 동네가 그립다.


1층이 답답하고, 이사가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땐 1층에 갇혀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1층에서 12년 동안 좋은 추억도,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참 행복한 동네에서 살았구나 싶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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