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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주디 Feb 01. 2022

엄마의 김치찌개 비법

주방장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

결혼 18년 차이지만 아직도 내 음식이 늘지 않는 건 신랑 탓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입맛이 까다롭고 내가 해주는 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신랑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런 입맛에 비해 살이 찐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다.


신혼 초 나도 신랑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고,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었기에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었다.


영양사인 친구에게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배워서 나는 멸치와 다시마 마른 새우까지 넣어서 김치찌개 육수를 내었고, 김치찌개에 신랑은 돼지고기 넣는걸 안 좋아 하기에 참치를 넣어서 김치찌개를 끓인 적이 있다.



신랑은 그날 김치찌개가 비리다면서,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었다.

그러면서 김치찌개에 육수를 따로 내지 말라고 하였다.




며칠 후 친정에서 신랑과 밥을 먹었는데, 웬일로 신랑이 밥을 두 그릇이나 먹는 거였다.

그날 엄마께서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는데,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였다.


그리고 그날 밤 신랑은 나에게 장모님의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었다며, 나에게 장모님께 레시피를 물어보라는 거였다.


나는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의 김치찌개 레시피를 물어보았다.

엄마가 나에게 말해준 김치찌개 끓이는 비법은?

.

.

.

참치캔 2개와 다시다였다.

엄마는 참치캔 1개 말고, 꼭 2개를 넣으라는 거였다.

그리고, 다시다를 넣어야 감칠맛이 난다고 하였다.


우리 집엔 다시다나, 맛소금, 미원 같은 조미료가 없었고, 나는 몸에 좋다는 천연조미료를 쓰고 싶다며 말린 가루들을 사다 놓았었다.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의 음식 맛에 길들여있던 신랑은 내가 만든 음식은 싱겁고 맛이 없었던 거였다.


엄마는 그다음 날 우리 집에 다시다와 참치 캔들을 가져오셨고, 신랑에게 맛있게 김치찌개를 끓여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종종 우리 집에 올 때면 다시다를 가져다 놓기도 하셨다.


나는 건강식을 그렇게 옹호하는 편도 아니지만, 굳이 내 돈 주고 그런 조미료를 사야 하나 싶어서 마트에서 그런 조미료들을 사본적이 없었다.


내가 워킹맘이 되고 바빠지면서 신랑이 저녁을 차리고, 장을 보는 날이 많아졌는데.. 어느 날 부엌 싱크대에서 보게 된 마법의 가루들.. 그리고 내가 생전 보지 못했던 소스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노란 테이프는 벌써 신랑이 어딘가에 저 가루를 넣고 붙여놓은 듯하다.





우리 집엔 스파게티를 아주 잘 만드는 큰아이와, 요즘 베이킹을 연습 중인 둘째, 그리고 먹는데 진심인 배 나온 아저씨까지 요리에 진심인 사람들이 3명이나 있기에.. 나는 그 주방장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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