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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롱 Aug 02. 2020

복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반려견과의 이별

2개월이 지났지만, 솔직히 아직 힘이 많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https://brunch.co.kr/@melong/61


오랜만에 글을 적습니다.

오늘이 아이가 떠난 지 2개월 되는 날입니다. 오늘 정말 많이 힘드네요. 

솔직히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애기 사진을 보며 눈물이 흐르지만

인간의 삶 속 반려견의 공존이라는 글을 썼던 이력이 있는 만큼 그 맺음을 짓고자 합니다.

어쩌면 매달 2일이 저에겐 힘든 날이 되겠네요. 

DSLR을 사고 막 찍었던 2013년 어느날 




복순이가 저희 집에 오게 된 계기는 저 때문입니다.



말하기 쑥스럽지만, 중학교 2학년 사춘기를 심하게 앓아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매일 나날이 힘들었던 날이었고, 삶이 힘들어 하루를 힘겹게 살아갔던 암흑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찾아온 천사가 바로 복순이였습니다.


반려견은 감정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고 하죠. 그 말을 들었던 저희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곤 동네 사거리에 있는 애완견 집을 갔습니다. 


기억나는 건 딱 하나예요. 


저처럼 우울하고 외로워 보이는 덩치 큰(보통 애완견은 작은 유아견을 선호하고 가격이 더 높습니다) 분양이 안 되는 10개월 차 말티즈가 있었고, 그 아이가 절 바라보는 눈 빛 하나에 복순이를 선택했던 기억이요.


이름 그대로.

복을 많이 가져다 주라는 뜻의 복순이로 이름을 지었고

저희 집에 정말 많은 복을 가져다준 복덩이였습니다. 



참 저를 많이 닮았던 아이였어요.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고 하죠. 어떤 행동을 해도 저를 닮았고. 좋아하는 음식이며, 자는 자세이며, 누워있는 자세,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 모두 저를 붕어빵처럼 닮았었어요. 



햇빛을 좋아했고. 바람을 좋아했던 아이였어요. 



워낙 낯을 가리던 아이였고. 10개월 이전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모자를 쓴 사람만 보면 짖어대는 성향이 있어서 산책을 자주 못 시켰던 게 한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햇빛을 정말 좋아했고 바람을 맞는 느낌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느낌까지 내뱉었던 아이였어요. 


견주분들은 아이의 성향에 맞춰서 꼭 산책을 자주 시켜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사진 좀 찍힐 줄 알았던 정말 똑똑한 아이였어요. 


강아지는 색맹이라고 하죠. 흔히 근데 가끔 영상전화를 할 때에도 저를 지긋이 보는 게 너무 기특했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메라가 무엇인지 잘 알던 정말 영리하던 아이였어요. 말티즈가 지능이 높은 건 알았지만 어쩌면 전생에 사람이 아녔을까 싶을 정도로 저에겐 영특한 아이였답니다. 



꽃을 좋아했고, 털을 밀면 도비가 되고. 

엄마 품에서는 뒤에서는 든든한 사자가 되어주고 

갓난아기 마냥 아이가 되었던 아이였어요. 


꽃을 너무 좋아했었어요. 

향을 유독 잘 맡았던 덕분인지 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봄이 오면 항상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이였어요.

뒤에서는 엄마를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자가 되어주고

앞에서는 엄마품을 안겨하려는 갓난아기가 됐던 아이였어요. 


나이를 먹으니, 귀가 안 들렸는지 쫑긋한 귀가 매력적이었던 아이였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청각이 무뎌저셔, 귀가 쫑긋 스는 새로운? 현상이 생기더라고요. 

말티즈 나이를 구분 짓는 잣대가 귀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청각이 잘 안 들리는 만큼 귀를 세우고 다닌다고 하네요. 


이별을 직감했던 첫 번째, 5월

아이가 내게 보내준 시그널 : 음식 거부 


저희 복순이는요 정말 많은 수술을 견뎌온 노견입니다.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게 아닐지 라는 저희들의 자책도 있어요. 상상임신을 해서 아기를 못 가지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중성화 수술을 너무 늦게 해 주어서 그만큼에 따른 고생도 많이 하였고. 최근에는 이빨 잇몸이 녹아내려 치아 발치라는 큰 수술을 견뎌낸 정말 뚝심 깊었던 아이였습니다.


이렇게 힘든 수술을 견뎌 낼떄에도 놓지 않았던 건 음식이에요.

어떻게든 고기를 주어먹었고, 어떻게든 사료와 간식을 훔쳐먹다시피 꼭 먹던 아기가 밥을 안 먹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밥을 먹더라도 다 쏟아내고 물도 못 먹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 후 바로 전주로 내려갔어요. 

그동안 다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간 점은 선생님께 죄송하지만(수액을 안 놓아주셔서) 사람이 밥을 먹지 못하면 수액을 맞아야 회복하듯 수액이라도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서, 수액 맞는 5시간 동안 아이를 지켰습니다. 


강아지는 수액 맞는 속도가 정말 느립니다. 덩치가 작은 만큼 빠르게 맞으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정말 조금씩 수액이 들어갑니다. 이 자리를 비뤄, 저날 아이와 제가 편하게 수액을 맞을 수 있도록 진료실을 내어주신 전주 평화동에 위치한 하루 동물병원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려요.


수액을 맞고 아이가 웃더라고요.

너무 다행이다 생각했고

너무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바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요. 


아래에는 어쩌면 몇몇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이별을 확실시했던 두 번째, 6월 2일 

아이가 내게 보내준 시그널 : 숨을 잘 못 쉬고 헐떡거리고 배뇨. 


6월 1일, 어머니께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왔어요. 

월요일 아침에 연락을 받곤 심장이 출렁였습니다.


아기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1일 퇴근하고 바로 내려가려고 하였지만 여동생이 보살펴 준다는 말에 퇴근길에 기차표를 취소.


그러고 4시간쯤 지났을까요.

저녁 9시쯤 여동생이 동영상을 보내줬는데.


아이가 울고 있고 카메라만을 응시하고 있는데

안 내려가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택시를 타고 용산역으로 가서 KTX를 타고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밤을 지새웠고 모든 가족이 있던 새벽 시간


새벽 1시, 1차 발작을 하고

새벽 2시, 괄약근이 풀리고 떨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 또 배뇨를 했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잠깐 제가 잠들고, 출근을 위해 5시쯤 일어났을 때

제가 일어난 걸 보고는 그때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모든 가족이 한대 있는 그때 떠났으니까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면서 버텨내기에 

너무 힘들어해서 안락사까지 고민했지만

제발 내가 올라가기 전에, 편하게 잠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끝없이 했습니다.

아이가 발작할 때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끝없이 버티려 하고 끝없이 생명의 줄을 놓지 않으려고 버팁니다.

사랑한다. 

이 말 한마디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심장이 멎어도 정신은 살아있어요.

닦아줄 때에도 끝없이 말을 해주세요.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어떤 증상이 있는지, 준비하는 견주분들께선 아래 영상을 통해 

제가 느낄 수 있었던 마지막 증조들을 공유코자 합니다. 


아이의 경련, 배뇨 불편한 장면이 있으니 주의 부탁드려요.


강아지는 당신밖에 모르는 바보입니다.
당신이 세상의 전부이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염치 불고하고 부탁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아이가 평안할 수 있도록 짧아도 좋으니 기도해주시면 정말 어떠한 표현으로도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마음입니다. 


복순아, 내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가진다면 꼭 내 자식으로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기다릴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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