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모포트 삽입~5일 차, 부정맥으로 죽을뻔했다. 갤럭시 워치가 날 살렸다
혈액암 림프종 투병기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본 글은 의학적 소견이 없습니다.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1. 최대한 많은 분들을 만나 뵙기.
2. 집 청소 꾸준히 하기
3. 오래된 제품들 버리고 정리하기
4. 냉장고 정리하기
5. 집에서 위험한 날카로운 것들 동선 정리하기
6. 회 많이 먹기
7. 먹고 싶은 거 원 없이 다 먹기
8. 보고 싶은 거 다보기
9. 하고 싶은 거 다 하기.
10. 정자 동결하기
사실 10번의 경우도 항암 전날 또 했다. (총 4번)
과하다 싶을 수 있겠지만..
1차 항암 시작 전, 마음을 다스릴 겸 머리를 자르고
발 관리를 받으러 부티끄에 갔다.
갔더니 어쩌다 보니 불임 이야기가 나왔고.
동탄에 있는 곳이 잘한다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기 때문에 잘 안될걸 알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연락을 받아서 병원의 배려로 추가 동결을 진행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치료가 완료되고 돌아오지 못한다면
안전하게 2세를 가질 수 있는 안전자산은 넉넉히 확보했다.
동결이 안전한 건 맞는데
실패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동의서에 무시무시한 조항이 있다.
"자연재해, 화재, 침수 등에 따른 소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평소보다 반절도 안 되는 양으로 동결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집 근처에 한 곳 동결을 해놔서 맘 편이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항암 전날,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한 트럭 가득, 자정 12시 금식 전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먹이겠다고 전쟁 출정하는 군대처럼
올라오셨다. 그리고 또 농협을 와서는 이것저것 구매하고 또 구매했다.
한우에 전복에 버섯에...
사실 죄송하지만
한우 전복보다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는..
생각이 많아지는 전날이었다.
첫 항암 시작 날짜였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큰마음을 먹고 아산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각은 7시 10분쯤, 주차를 하고 들어갔는데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5층, 암병원 주사실 앞으로 6-8개월 동안 찾아와야 하는 곳이 되어버리는구나.
주사에 대한 두려움은 둘째 치고, 케모포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자리를 배정받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데, 마취에 대한 노티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거 같다.
어떻게 어떻게 옆 아저씨를 건너뛰고, 다음 타임에 케모 진행을 하게 됐다.
케모포트 전, 엉덩이 주사로 항암환자분들이 버틸 때 맞는 아주 강한 진통제를 맞고 넘어갔다.
링거는 아니었지만 부디 잘 퍼져서 케모포트 진행할 때 덜 아프도록 함께 해주시라 기도했다.
10분 정도 지났나, 케모포트를 넣기 위해 이송 선생님이 오셨다.
숙수수수숙 지나갔는데, 기계가 완전 최신식이더라.
마취가 시작됐다.
아주 촘촘하게 수놓듯이 정말 많이 마취를 했다.
그리고 바로 느껴진 기분 나쁜 숨참, 심장으로 케모포트 관이 들어왔나 보다.
정말 기분이 끝까지 나빴는데 참고 또 참았는데 얼라.. 마취가 점점 풀려간다
스템플러랑 꿰매는 게 아직 반절도 안 지났는데 아픔이 서서히 느껴진다.
진짜 마취가 안 되는 체질이구나 생각이 들더라.
케모 시술이 끝남과 동시에 금식이 풀려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던..
그렇게 케모를 박고 왔더니, 바로 항암 시작이다.
전처리? 같은 약을 좀 넣더니 바로 빈 크리 뭔가를 넣는다
코가 싸할 거라나 뭐라나
엄청난 속도로 뭔가 들어온다.
느껴진다.
아…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지나갔는데 다음은 맘 테라(리툭시맙)이다.
이 녀석을 6시간을 맞아야 하는데. 그만큼 약이 독하다는 거겠지.
맞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나
뭐야 괜찮네
싶었는데 물을 먹더니 목이 아프다.
목이 부었나 보다.
바로 말씀드리니, 접종을 중지하고 기도 확장제 같은 약을 넣어주신다.
그리고 좀 있다 다시 투약 시작
그 이후로는 약에 대한 부작용은 따로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 오전 7시 10분, 나온 시간은 오후 4시 50분
실제 진행시간만 치더라도 준비시간 3시간, 투약시간 6시간 도합 9시간 정도가 걸렸다.
2차부터는 2시간 정도 준다는데.. 쉽지 않긴 하다.
사실, 접종 후 2일 차까지는 피곤함과 잠+약+잠+약에 있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일 차쯤, 갑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가 안정적일 것이고
지금 아니면 고향집 찰떡 이를 보지 못하겠거니 싶었다.
어머니도 4일에 일이 있으시니,
1차 항암 2일 차,
그렇게 고향집에 내려왔다.
아직 백혈구 수치가 아주 안정적이겠지만
부모 마음이 다 같겠지만
부모님이 난리가 나셨다.
동생 방을 싹 다 소독하고 치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방에서 코로나 때처럼 격리? 가진 행 됐다.
밥 먹고 들어가고
밥 먹고 들어가고
화장실 가고
댕댕이는 들어오겠다고 삐지고..
오지도 않더라.ㅋㅋ
미안..ㅠ
반지의 제왕 드라마 버전을 보면서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게임도 한판 하고
투약 2일 차가 지났다.
rcvp 투약 3일 차
소론도가 쓰다.
처음에 소론도약을 환우 톡방에 올렸을 때 반응이
별로였는데
먹을만한데?..
싶었지만 3일 차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먹을 때 일단 혀에 닿으면 무조건 쓰고
먹고 나서 1시간 동안은 기절이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를 하루에 20알씩 먹어야 하니.ㅠ
그럴 수 있다.
3 일차 저녁, 동생과 10년 만에 집 앞 공원을 걸었다.
많이 좋아졌더라..
문제의 3일 차
새벽 내내 소론도의 영향인지
잠을 못 잤다.
오후 1시쯤 일어났을까
밥 먹으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덜컥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왔는데
심장이 이상하다.
화이자 백신 접종했을 때 느낌이라 너무 같아서
익숙했는데 그 경도가 어쩌면 스무 배 삼십 배 이상의 통증이 느껴졌다.
'어 이거 죽겠는데'
놀래서 아무 소리 말라하고 심호흡 또 심호흡을 했다.
너무 이상해서 물 한잔 마시고 누워있다가
소론도를 조금 일찍 먹자 생각해서 4시쯤 먹고
또 누웠다.
저녁을 먹으려고 일어났던 오후 5시 30분쯤
느낌이 이상하다.
사람에겐 본능이라는 게 있다.
어, 이거 큰일 나겠는데 싶은 본능 말이다.
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최악을 생각하곤 모든 짐을 싸곤
상급병원을 가자 말씀드리니 놀라신다.
근데 이때 안건대
내 워치가 없어졌다.
집 위치로 뜨는데 보이 지를 않는다.
일단 급한 데로 아버지 워치를 빌려 ecg 기능을 했다.
맥박이 90에서 178 183까지 널뛰기를 한다.
기계 문제가 아니다.
혈압도 110/50이 나오고 비정상이라는 걸 수치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진짜 ㅈ되겠구나 싶어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도 처음에는 가볍게 보더니, 항암 하는 병원으로 가는 걸 권장한다고 하여서
보내려고 하기에
'제가 못 버틸 거 같은데요'
한 말씀드리니 심전도 기기를 끌고 오셔서 맥박을 재시고는 표정이 심각해지셔서는
6명이 붙어서 내 온몸에 기계를 부착하고 심폐소생실로 옮겼다.
아버지 표정은 거의 패닉
나도 패닉
???????????... 방금까지 가라고 하셨던 분들이 왜... 이러는 거지
혈관 라인 잡고 그런 거까진 오케이 하겠는데
손목 정맥에서 아프기로 유명한 응급실 바늘로 생피를 뽑아가시려고 한다.
사람이 아프면 비명도 못 지른다고
너무 아파서 가만히 있었다.
피를 뽑고 부착을 하니 머리 위에 있는 기계에서 연신 경보음이 울린다.
응급실을 자주 간 사람은 알겠지만 경보음에도 단계가 있다.
1. 이상함
2. 얘 좀 많이 이상함
3. 얘 죽어 빨리 와
연신 2번이 울린다.
뭐 얼마나 날뛰길래 이난리야 하고 봤는데
110->178 -> 133 -> 145 -> 155 ->98
러닝 할 때도 130이 안 나오는데
이상하긴 이상했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두려워지기 시작하는데
저쪽에서 과장님은 아버지에게 심각하면 심폐소생술까지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조용히 이야기하시던데
다들 리더라..
별생각이 다 들었다.
'죽는 건가'
'케모포트 소독을 내가 잘못해서 감염된 건가?'
"과장님 저 죽어요?"
부정맥 의심되는데, 약 들어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한번 봅시다.
진단받아도 이 정도의 긴장은 없었다.
머리맡에서는 계속 경보음이 울린다.
정말 돌아버리겠더라.
심호흡을 하고 또 하고 또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머리에서 열이 도는 느낌이 든다.
심장이 제 역할을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이때부터 마음이 놓였다.
근데 병원에서는 사설 응급차를 불러야 한다며 퇴원을 안 시켜줬다.
이유는 간단
부정맥 경고가 꺼져야 하는데
처음보다는 맥이 안정적이게 됐지만
이 정도 상황이면 기차 타고 가다가 언제 심정지 와서 뇌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
먹는 약을 주셔서 먹고 보자고 하셨는데 30분 정도 지났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무언갈 끄고 오신다.
"선생님 저 죽어요? 이걸 왜.."
"일단 사인하시고요, 재워드릴 거니까.."
심부전 환자에게 하는 거라며.. 재워놓고 심장에 전기충격을 준다고 한단다.
별걸 다하는구나 진짜 싶어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근데 그때
'삐빅'
마침 오신 의사 선생님
이게 왜 정상이 뜨죠?
약이 들었나 보다.
심장충격을 안 해도 된단다.
차든 기차든 올라가도 된단다.
맥박이 80 단위에서 유지되는 게 내 눈에도 보이고
노이로제 걸릴 거 같던 경보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짐을 싸고 나와서 고향집에서 급하게 짐을 챙겼다.
아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살은 안 빠졌지만
나오기 진전 찍은 셀카
죽다 살아난다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투약 4일 차
오후 7시부터 잠을 못 잤다.
부모님이 제일 놀라셨을 거 같은데
아버지가 그렇게 패닉이 오신 걸 태어나서 처음 봤다.
응급실에서 나한테 행해지는 걸 보고 많이 놀라셨던 거 같은데
가슴이 아파서 혼났다. 강한 아빠도 저렇게 여리구나 싶었다.
장담하는데 응급실에서 나한테 행해진걸 어머니가 봤으면 기절하셨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아버지가 온 게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헥 헥"
"아빠, 11시 40분 기차예요. 아들 살아있잖아 괜찮으니까 정신 차려요 심호흡"
" 아 그래? "
전주에서 익산역으로, 그리고 익산역에서 수서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놓였지만
많은 이슈가 있었다.
이슈가 있는 점은 따로 기재하지는 않겠다.
응급실에서 충분히 모두 고생하시고 모두가 힘든 일을 하고 있기에 기재하지는 않겠지만
비정상적인 프로세스로 어머니와 아버지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점만 적어본다.
확실한 건, 항암치료로 인한 부정맥은 아닌 거 같고
원래 있던 부정맥이 다른 여러 요인으로 인해 수면 위로 올라온 거 같다고 하신다.
상세한 건 17일, 외래를 통해 상담을 나누겠지만
이전 병원에서 먹었던 약효 덕분인지 5일 차 오전까지 무난하게 버텼다.
부정맥인 거 같다 판단되어
부정맥 약을 받고 나왔다.
약을 계속 먹고 있어서 그런 건지
일시적인 부작용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이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심장에는 문제가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소 심박이 90-100대로 높았다.
비만의 영향이 있고 평소 숨도 많이 찼는데
80대로 정상으로 잡혀있는 걸 보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생각해야 하나.
약을 받고 돌아오는 길
올림픽대로에서 백제문화행사가 있었다.
아침부터 수백 명의 시민들이 러닝을 하는 걸 보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하루빨리 나아서 같이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장어와 김치찌개를 먹고는
기절했다. 하루 종일 자고 또 잤다.
죽음이라는 경계를 어쩌면 넘었다가 돌아온 거일 수도 있다.
병간호하고 마음 졸였을 부모님에게 감사드리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
두려움 마음을 잡고자 응급실에서.
진단 후 듣지 않았단(울음이 나와서) 3개월 만에 찬송가를 들었다.
물론 지금도 듣고 있다.
찬양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버틸 수 있음에 감사드리는 날들이었다.
여담이지만, 1주 차가 안된 텀이라 그런지
백혈구와 다양한 수치들은 아직까진 정상수치였다.
다음 주부터는 후드득 떨어지겠지.
2차에서도 머리가 빠질 거고..
잘 이겨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