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그 글에 담긴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리 독특한 표현과 수려한 문장력이 있더라도 결국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스토리로부터 나온다.
가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별택시(김연우)’는 독특한 스토리와 표현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취중진담(전람회)’ ‘달팽이(패닉)’ ‘거위의 꿈(인순이)’ 등, 뻔한 표현과 주제이지만 독특한 스토리로 우리에게 울림을 준 곡은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이런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좋은 글감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지인의 이야기, 책이나 영화 등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글감을 찾는 안테나를 항상 켜고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막상 가사를 써야 할 때 압박감과 초조함 때문에 이런 안테나가 제 역할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미리 안테나를 세워두고 여러 글감을 모아 차곡차곡 메모해둔다. 중요한 포인트는 단순 키워드뿐 아니라 당시의 상황,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함께 적어두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몰입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평소 안테나를 세우고 적어둔 메모들을 첨부한다.
(특별한 형식 없이 떠오르는 대로 메모)
표면장력 / 비 오는 날 창에 맺힌 물방울을 보다가 / 비가 나의 슬픔이라면 얼마나 맺혀야 흐를까/ 수많은 눈물들 /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빗방울
빈 의자 / 텅 빈 카페 누군가 빼놓은 빈 의자를 보다가 / 네가 떠난 빈 의자, 아직도 네 자리인 듯이
원래 그랬어 / 네가 떠난 후 / 무채색 하루, 어제와 같은 내일, 아무 맛도 없는 식사 / 네가 없어서 변한 게 아니라 널 만나기 전 나는 원래 이랬었구나
내가 고교 문예동아리에서 글을 배울 때, 수필 작가셨던 문학 선생님이 처음 내준 숙제가 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이야기를 적어올 것.’
그 당시 동아리원 모두 이 숙제를 받고 토해내듯 힘겹게 글을 써냈다. 이 숙제가 어려웠던 건 그 내용도 있겠으나 독특한 동아리의 수업방식 때문이었다. 그 방식이란 동아리원 모두가 써온 글을 낭독하고 비평을 하는 ‘합평’. 동아리원 중 처음 글을 쓰는 이들도 있었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이도 있었다.
이 방식으로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신 것은 바로 온전히 자신을 글에 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당당히 드러내는 것. 결국 나를 포함해 글로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몇 명은 글을 완성시켰고 그로 인해 한차례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작사는 거의 외주 방식이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덜 필요로 한다. 오히려 개인의 사건이나 감정에 묶여서는 다양한 작업을 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소설에 공감하는 이유는 지어낸 스토리라도 그 안의 감정은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감정을 전해야 하는 노랫말을 써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두려운 사람이 쓴 가삿말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그 가수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가 가사를 쓰기 위한 첫 단추이다. 그 단추를 잘 꿰어낸다면 소재고 스토리고 술술 나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저런 인풋을 통해 내면을 풍부하게 채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비단 가사가 아니더라도 모든 글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와 다듬어지는 것이므로.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