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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elt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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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Feb 11. 2021

밤빛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들에게


밤빛 (Night Lights)

그녀가 원룸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며 목이 긴 스탠드를 처분했는데, 큰 키만큼이나 밝았던 그 아이를 내보내고 나니 마땅히 쓸만한 수면등이 없어졌다. 아쉬운 대로 주방 후드에 달린 주황색 등을 켰다. 그 색과 온도가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꽤나 자주 그 등을 켰다. 그 빛 아래에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며 긴 밤을 밝히곤 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그녀를 바라보며 영원하길 바라던 밤들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밤을 좋아했다.

날 때부터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던지라, 낮의 가려지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이 내겐 쏟아지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고요하고 붉게 물든 밤은 내겐 또 다른 세계였다. 수많은 것들에 둘러 쌓여 보이지 않던 것이 그 야간 등 아래에선 선명히도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밤과 야간등이 만든 그 시공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처음 혼자 잘 때 날 지켜준 야광별들’

‘밤새 가사를 적던 19살의 새벽녘’

‘주방등 아래에 웃음기 많던 엄마와의 순간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작가였던 그녀는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았고 나도 그녀를 따라 늦게 잠들곤 했다. 그녀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 스탠드와 주방등만 밝히고 글을 썼는데, 가끔은 그 아래에서 아버지나 놀러 온 사촌누나와 맥주를 한 잔 하곤 했다. 잠이 없던 내게 장난스레 맥주 한 모금을 건넨 적도 있다. 그때 처음 먹은 맥주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쓰다며 찡그리는 날 보고 웃던 가족들의 모습마저도.


몇 없는 흐릿한 추억들이지만 아직까지 그 파편들이 선명히 빛나는 까닭은 그것이 오롯이 우리에게만 빛이 닿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만 바라보았고 서로에게만 귀 기울였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소음과 자극에 무뎌져 소중한 순간마저 스쳐 보내게 된다. 가끔은 무엇이 소중한지 마저도 잊고 만다. 나는 그럴 때면 야간 등을 켠다. 밤과 빛이 만들어낸 시공간 아래에서 서로만을 바라보고, 서로에게만 귀 기울이고, 서로만을 느낀다.


아직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수많은 밤빛들처럼. 이 순간도 영원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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