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룬 것 하나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힘
2021년은 나의 20대로서의 마지막 해이다.
나는 나이에 대해 의식을 하지 않고 사는 편이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볼 때면 내가 몇 살인지 계산하느라 한참 생각하다 그냥
“93년생이에요.”
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covid19로 인해 2020년, 나의 스물여덟이 거의 삭제되다시피 지나가버렸고,
또 올해가 20대의 마지막이라고 하니 그에 대한 감상이 남다르긴 하더라.
나는 주변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
개개인이 모두 다른 삶을 산다고 믿어 ‘보통’이라는 말을 꺼리긴 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모습을 ‘보통’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보통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음악을 한답시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학력 스펙 경력을 쌓지 않았다. 그저 홀로 음악을 만들고 업로드하는 것이 전부였다. 또, 예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교력인데 나는 사람을 만나면 피곤해지는 성격인지라 몇 없는 인맥마저 금방 놓치곤 했다.
일찍 취업을 했다면 팀 내 후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나는 이제야 회사와 계약을 맺어 첫 앨범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앨범이 잘 되기는커녕 어마어마한 빚만 남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아마 ‘백수’ ‘니트’ ‘한량’ ‘불효자’ ‘낙오자’ 등으로 비칠 것이다.
(주변 어른들의 시선은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불안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계속 동기를 유지하고 포기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들려줄만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글을 적는다.
나는 사람이 살아갈 때 스스로 과업을 짊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든 세상을 위해서든.
스스로에겐 삶에 대한 동기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고, 그런 개인의 과업들이 모여 사회를 조금 더 나아지게 한다고 믿는다.
일찍이 정했던 나의 과업. 아니, 야망은 바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세상에 족적을 남기겠다.>
작은 우물에서 가장 높이 뛰던 개구리가 할법한 생각이었다. 나는 우물을 벗어 난 개구리가 자신뿐일 것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넓었고 우물은 넘쳐났고. 개구리는 그저 개구리일 뿐이었다.
(지금 와서 느낀 점이지만 섣불리 세상에 나오기보단 조금 큰 다른 우물에서 자신감을 키우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렇게 넓은 세상으로 나온 나는 높이 뛰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노력했고 그렇게 또 무언가를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시선. ‘낯설게 보는 능력’이었다. 나는 이 능력을 작가인 어머니를 통해 터득했고, 남들과 다른 삶을 통해 키워나갔다.
(돌이켜 보면 그 능력 스스로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곳을 찾아간 것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짊어진 나의 과업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자.>
예술은 모두의 안에 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 음악과 글 사진 어떤 것이 되었던, 내가 가진 시선을 비추는 어떤 도구로든 그것을 깨우고자 마음먹었다.
물론 성인군자의 마음으로 내 모든 걸 베풀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물질과 존경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베풀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세상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만의 창작물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시선의 가치를 제시할 수단은 차고 넘친다. 큐레이팅 서비스를 할 수도 있을 테고, 에디터로서 활동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시선을 날카롭게 갈고닦고자 노력중이다. 그것을 표현할 수단이 지금은 글인 것이다.
사진, 영상 콘텐츠, 글, 기타 프로젝트 기획 등에서 이 능력을 시험해보고 있다. 실제로 인디 뮤지션으로서 작사/작곡뿐 아니라 퍼스널 브랜딩, 앨범 및 콘텐츠 기획 마케팅 등에서 그 시선을 발휘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능력은 그 능력이 발휘될 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거기에 더해 동기를 부여해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줄 과업이 더해진다면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 나는 아직 어리고 이룬 것 하나 없는 풋내기 일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성공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그저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법,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와 같은 분야에서 성과가 없어 포기해버린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 중에는 또 다른 길을 찾아 삶을 개척해나간 친구가 있는 반면, 계속해서 포기와 도피를 반복하는 친구도 있다. 그 둘의 차이가 바로 저 과업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패가 포기보다 더 값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실패에 맞서 버티는 것은 누구라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 실패를 반복하는 데 있어 당신만의 과업은 실패에 휩쓸리지 않게 도와줄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