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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Nov 14. 2021

1. 마지막 엔지니어

화성으로부터 온 타임캡슐

'K'는 사막을 걷고 있다.

고글과 전신을 덮은 후드를 뒤집어쓴 K의 뒤로 기괴하게 녹슬어있는 기계 고철이 산처럼 쌓여있다.

거대한 고철더미와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 탓에 K는 평소보다 더 왜소해 보였다.

그 거대한 짐을 끌어주던 K의 '감성뿐인 쓰레기', 무한궤도 수레가 점차 느려졌다.


 -드륵, 드륵, 탁탁.


짐수레 엔진에서 요란한 쇳소리가 들리고 이내 멈추고 말았다.

K는 한숨을 푹 쉬고는 곧바로 수레로 돌아가 엔진을 두들겼다.

조작부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K는 결국 짐칸에 있던 공구를 꺼내 들었다.

수차례 뜯겨 거의 원형이 되어버린 육각볼트들을 풀고 엔진부를 열자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하... 감성은 개뿔. 이젠 충전식으로 바꿔야 하나.'


K는 필터 대신 끼워둔 헝겊의 모래를 털고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수레는 수차레 괴성과 검은 연기를 뱉어 내더니 이내 힘없이 털털거렸다.

K가 스트롤을 돌리자 수레의 무한궤도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돌아가는 무한궤도를 보며 K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포크레인을 떠올렸다.




그 낡은 포크레인은 포크 끝이 모두 삭아 부러져 있었고 무한궤도는 모양뿐인 싸구려 장난감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의 장난감을 아버지가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기절하듯 잠든 그의 모습은 K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가장 멋진  모습이었다.

K는 그 낡은 포크레인을 언제나 품에 끼고 살았다.

아침이면 K의 가슴팍에 궤도 자국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반년 뒤, K의 아버지는 실종되었다.


혼자 남은 K는 집안의 모든 기계를 분해했다.

아버지가 쓰던 중장비, 가전, 심지어 전자공구마저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쉬지 않고 분해를 마친 K는 자신이 분해한 모든 것을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철과 기계들, 그 체계적이고 정밀한 움직임을 볼 때면 K의 가슴에 새겨진 궤도 자국이 뜨겁게 달궈졌다.

시간이 흐르고 K는 원래 부품이 아닌 다른 것을 넣기 시작했다.

두 기계를 하나로 만들거나, 각 기능별로 떼어내기도 했다.

새로운 기능과 형태를 가진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K는 몇 안 되는 구시대의 기계를 수리하며 살아남았다.


그러나 엔진의 시대가 끝난 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AI가 등장했고

무한에 가까운 시뮬레이션을 거쳐 탄생한 로봇들은 점점 정밀해졌다.

기업의 주주들은 과학자를, 엔지니어를, 경영인을 해고했다.

그들이 그들이 생산한 제품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봇은 오직 로봇에 의해서만 개발되고 생산되고 수리되었다.


한편,

구시대의 기계와 그걸 사용하는 노인들의 수명도 다해가는 중이었다.

기계는 이제 고물상에서나 볼 수 있는 고철로 취급되었다.

K는 고물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시대의 기계는 적어지고 부품 수급이 어려워졌다.

K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모았다.

쌓인 부품이 적어지자 K는 떠돌이 행상이 되었다.

아이들은 K를 '퇴물'이라 부르고 어른들은 '괴짜'라 무시했지만

K는 언제나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도착하자마 필터를 구해야겠어.'


해안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의 고글에 반짝이는 윤슬이 쏟아졌다.

텅 빈 사막엔 그와 무한궤도가 남긴 길 한 줄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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