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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Jun 06. 2022

위로라는 것은.

'아픔'에 집중하기보다 '너'에 집중하는 일.

살면서 수만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색가는 아니나 그렇다고 떠오르는 질문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삶에서 답을 찾는 일. 어쩌면 그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기에 앞서 내 삶의 방향을 찾는 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과정이 더 흥미롭다. 그런 내가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 한 질문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위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였다.


위로. 한때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키워드. 아니.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키워드. 대놓고 위로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많은 책과 강연에서 위로를 말한다.  나를 위로하고, 너를 위로하고, 아이들을 위로하고, 친구를 위로한다. 위로라는 것에 대해 나 말고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입증하는 현상이다.(그래, 나만 궁금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위로에 대해 그렇게나 골몰히 생각하면서도 정작 위로가 핵심 키워드인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을 보면 너무 대놓고 위로, 위로, 위로하는 게 영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사람을 위로하는 일. 아. 어렵다. 그는 아이들도 잘 아는 사람이고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대놓고 나 슬퍼요, 나 힘들어요 하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이 더 애잔하고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를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초대했고 나는 음식을 준비했다. 첫째와 하교하는 길에 장을 보면서 "00아, 00가 이런 일이 있어서 슬플 것 같아. 그래서 엄마가 음식을 해서 같이 먹으려고 하거든. 그런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음식을 먹으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그게 많이 고민이 돼"라고 말했다. 말했다기보다 나왔다고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가득 차있다가 넘친 생각이 자연스레 밖으로 나왔다.


"엄마, 꼭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엄마가 준비하는 음식엔 사랑이 담겨 있잖아. 이 음식을 먹기만 해도 힘이 날 것 같아. 엄마가 00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00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하는 음식에 그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알 꺼야. 우린 그냥 계속 마음을 쓰면 돼"




박 혼비 작가님의 "다정 소감" 엔 이런 글이 있다.

<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

아이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떤 음식은 때론 간절한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위로란 무엇일까? 가볍지 않으면서도 무겁지 않아야 하는 것. 받으면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일회용 컵을 쓰는 편리함처럼 한번 내뱉고 마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간과 마음을 쏟아 만든 도자기 컵에 정성스레 내린 차를 대접하는 일처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


말을 하지 않고 옆에 가만히 있어주던, 팔 걷어 부쳐 해결방안을 찾아주던, 팔을 벌려 안아주던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방법적인 위로를 말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 어떤 방법이 위로가 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동안 상대방에게 차곡차곡 마음을 쌓았다면 어떤 방법이 되었든 그 마음은 간절한 기도의 역할을 한다. 그거면 된다. 위로는.


같이 식사를 한 친구가 집에 돌아가 문자를 보내왔다. 고맙다고.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음식에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특별히 00(아이)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아이가 내 마음을 알고 있지만 아픔에 집중하지 않고 나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배려가 참 고마웠다고.


정말 그랬다. 내내 '위로하는 일'에 집중하던 나와 달리 아이는'그 사람 자체'에 집중했다. 그의 마음은 괜찮을까, 어떤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집중했던 나와 달리 아이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걱정했던 우울한 분위기는 한순간도 연출되지 않고 여느 때처럼 함께 웃을 수 있었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상대방의 아픔에 집중하지 않고 너와 나의 관계에 집중하는 일. 위로가 필요한 상대 자체에 집중하는 일. 위로에 있어서 아픔에 집중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아이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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