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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멘토 Feb 01. 2017

05 명예는 어떻게 획득하는가 : 호메로스 2

나를 위한 고대윤리학 입문 by 박정민(연구공간 환대)

무엇에 분노하는가?     


전사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무엇보다 용기다. 그런데 영웅들은 용기를 발휘해서 무엇을 얻는가? 근본적으로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메넬라오스가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야 헬레네를 되찾는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 고된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하루의 전투를 마치고 진영으로 돌아와 피 묻은 몸을 닦으면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았을까? 학원과 도서관을 오가며 전투적인 일과를 마친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이따금 되묻듯이 말이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이 가장 중요시한 가치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작품 초반부의 가장 큰 사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다툼’이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1권 1행)     


<일리아스>를 여는 첫마디다. 시작부터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분노’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왜 분노에서 시작하는가?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는 언제 분노하는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손상되거나 침해당했을 때다. 늘 웃기만 하던 사람이 별안간 정색을 하고 언성을 높일 때 우리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걸 건드렸구나!’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알려면 그가 언제 분노하는지 보라. 

<아킬레우스의 분노>, 샤를 앙투안 쿠아펠(Antoine Coypel), 1737


아킬레우스는 왜 화가 났나? 사연은 이렇다. 고대 전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약탈이다. 아카이아 인들이 인근 도시를 약탈하면서 여자들을 잡아왔다. 그중 아가멤논이 차지한 여자 크뤼세이스가 하필 아폴론 신을 섬기는 사제의 딸이었다. 늙은 사제는 많은 몸값을 싸들고 아가멤논을 찾아와 딸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는데, 아가멤논은 모욕을 퍼부으며 그를 내쫓는다. 가엾은 노인이 아폴론 신에게 복수를 기도하자 아폴론은 아카이아 군에 역병을 내린다. 병사들이 역병으로 며칠째 쓰러지자 아카이아 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회의가 열린다. 예언자를 통해 앞뒤 사정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크뤼세이스를 돌려보내자고 아가멤논에게 권한다. 아가멤논은 마지못해 수긍하지만 총사령관인 자기만 전리품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대신 아킬레우스의 여자 브리세이스라도 자기 몫으로 내놓으라고 어깃장을 놓는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화를 내며 아가멤논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전쟁에서 빠지겠다며 회의장을 나가버린다. 

처음에 <일리아스>를 읽었을 땐 살짝 당황했다. 말하자면 이 영웅호걸들은 약탈해온 여자를  내놓아라, 못 내놓겠다 하다가 아예 판을 엎었다는 것이다. ‘겨우…… 이걸로 싸운 거라고?’ 그렇다. 인류의 고전이니 서구 문학의 걸작이니 해도 이들이 청동기 시대 마초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런데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사람이 화를 낼 때, 보이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다. 엄마가 아빠와 오빠한테만 닭다리를 줄 때 딸이 화를 내는 건 꼭 닭다리가 아쉬워서만은 아니다. 아킬레우스도 그랬다.      


“그대, 파렴치한 철면피여! 우리가 그대를 따라 이곳에 온 것은

메넬라오스와 그대를 위하여 트로이아인들을 응징함으로써

그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었소.

그런데 이런 사실은 염두에 두지도, 아랑곳하지도 않고

내가 피땀 흘려 얻었고 아카이아 인들의 아들들이 내게 준

내 명예의 선물을 그대가 몸소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다니!

…… 이젠 프티아로 돌아가겠소. 부리처럼 휜 함선들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낫겠소. 여기서 모욕을 받아가며

그대를 위하여 부와 재물을 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1권 158-171행)     


이들 전사들에게 전리품은 단지 재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용감하게 싸운 전사에게 주어지는 명예의 상징이다. 금메달이 단순한 금덩어리 이상인 것과 같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빼앗은 것은 아르고스 인들 앞에서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나중에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달래러 온 사절단에게 한 말을 보아도 그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인 양,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이 아르고스 인들 앞에서 내게 무례하게 대하던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화가 치밀어 오르오.”

(9권 646-648행)     


전쟁은 고된 일이다.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추위와 더위, 때로는 역병과 싸워야 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목숨까지 위태롭다. 그럼에도 호메로스의 전사들이 포기할 수 없었던 가치가 있다. 바로 명예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나선 것도 명예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명예가 최고 통수권자로부터 손상당했을 때,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군을 이탈해버린 것이다.     



보편적 가치인 명예     


본디 명예란 귀족적인 가치다. <일리아스>에서도 명예는 기본적으로 고귀한 신분을 지닌 이들이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명예는 단지 지체 높은 이들이 쓰는 감투만은 아니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받은 ‘명예의 선물’을 가리켜 ‘아카이아 인들의 아들들이 준 것’이라고 한다. 명예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그가 ‘피땀 흘려 얻은 것’이다. 재벌들이 대학에 돈을 주고 ‘명예 박사학위’를 사듯이 그렇게 옵션처럼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명예는 공동체의 인정을 통해 주어지고 유지되며, 그런 인정을 받으려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장면1     


이것을 잘 표현해주는 이가 트로이아 측 동맹군인 뤼키아 군의 수장 사르페돈이다. 아카이아 군의 진지를 공격하던 중에 사르페돈은 동료 글라우코스에게 선두로 나서서 적의 방벽을 향해 돌진하자고 제안한다. 사르페돈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글라우코스여,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뤼키아에서 

윗자리와 고기와 가득 찬 술잔으로 남다른 존경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신처럼 우러러보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크산토스 가의 제방 옆에, 

과수원과 밀밭이 딸린 아름답고 큰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지금 마땅히 뤼키아 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치열한 전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단단히 무장한 뤼키아 인들 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것이오. 

‘과연 뤼키아 땅을 통치하는 우리 왕들은 

불명예스런 자들이 아니구나. 그들은 살찐 작은 가축들을 먹고 

꿀처럼 달콤한 정선된 포도주를 마시지만, 힘도 뛰어난 자들이다. 

저렇게 뤼키아 인들의 선두 대열에서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12권 310-321행)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는 뤼키아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고귀한 이들이다. 그런데 사르페돈은 그렇기에 자신들은 “마땅히 …… 선두 대열에 서서 치열한 전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사르페돈은 자신을 지켜보는 뤼키아 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그의 명예는 뤼키아 인들의 인정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기 위해 지도자들은 마땅히 최선봉에서 가장 고된 일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사르페돈이 말하는 명예다.      


장면 2


이런 점에서 명예는 사사로운 허영심과는 다르다. 더 나아가 명예는 사사로운 집단감정조차 넘어서기도 한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결투 장면이다. 트로이아 최고의 전사 헥토르가 아카이아 군에 일대일 결투를 신청한다. 역시 싸움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아이아스가 헥토르와 겨룰 대표 선수로 선발된다. 두 사람의 무용(武勇)은 모두가 찬탄할 정도로 뛰어났다. 창으로 찌르고, 돌로 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칼을 뽑아들었을 때 양측에서 전령이 달려와 싸움을 중지시킨다. 날이 저물었으니 싸움을 미루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령이 말한다.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께서는 두 분 다 사랑하시며, 

두 분 다 훌륭한 창수들이오. 우리 모두가 그것을 보았소이다.”

(7:280-281)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에릭 바나 분)


여기서 전령은 ‘제우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무용을 아카이아 인들과 트로이아 인들 “모두가 …… 보았”다고 말한다. 아카이아 인들에게는 헥토르의 창술이, 트로이아 인들에게는 아이아스의 창술이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순간 적대관계를 떠나 두 전사의 빛나는 무용을 칭송한다. 결투를 마친 헥토르가 아이아스에게 선물 교환을 제안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탁월함을 인정한다는 표시다.       

 

“자, 우리 두 사람은 서로 훌륭한 선물을 교환하여 

아카이아 인들과 트로이아 인들이 더러 이렇게 말하도록 해줍시다. 

‘두 사람은 마음을 좀먹는 불화 때문에 서로 싸웠지만 

다시 화해하고 친구가 되어 헤어졌도다.’”

(7권 299-302행)     


헥토르와 아이아스가 우의를 다지며 선물을 교환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이 적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헥토르와 아이아스는 이후에 다시 맞붙어 싸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투를 통해 보여준 전사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상대편에게까지 인정을 받는 보편적인 미덕이 된다. 여기서 얻은 명예는 이렇듯 보편적인 인정을 획득한 것이다.      


장면 3     


아킬레우스와 최후의 일전을 앞둔 헥토르는 야수 같은 아킬레우스의 위용을 두려워한다. 이 때 동생인 데이포보스가 여분의 무기를 챙겨 들고 와서 헥토르의 용기를 북돋고, 헥토르는 이에 힘입어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와 싸우다가 막상 창이 필요해서 데이포보스를 찾았을 때 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아킬레우스 편에 선 아테네 여신이 데이포보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헥토르를 함정에 빠뜨렸던 것이다. 여신의 계략에 걸려든 사실을 안 헥토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다.   


<헥토르를 죽이는 아킬레우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630경

  

“아아, 이제야말로 신들께서 나를 죽음으로 부르시는구나. 

나는 영웅 데이포보스가 내 곁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성벽 안에 있으니 아테네가 나를 속였구나. 

이제 사악한 죽음이 가까이 있고 더 이상 멀리 있지 않으니 

피할 길이 없구나. …… 이제는 운명이 나를 따라잡았구나. 

하지만 내 결코 싸우지도 않고 명성도 없이 죽고 싶지는 않으니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게 될 큰일을 하고 나서 죽으리라.”

(22권 297-305행)     


다른 전사들처럼 트로이아 최고의 전사 헥토르도 용감히 싸우다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기를 바란다. 그런데 헥토르는 누구를 의식하고 있는가? 그는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적을 듣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기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헥토르의 이름이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알려졌으니 말이다. 헥토르와 어떤 이해관계도 맺고 있지 않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탁월함을 인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헥토르가 모든 당파성을 초월한 보편적 명예를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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