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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Jul 21. 2019

아빠가 가셨다

수레바퀴 아래로

아빠가 가셨다. 몇 달 전에. 영원히.

설 연휴 직전에 응급실에서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입원하셨다. 곧 두어 달 시한부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진짜 아빠는 그때 이미 보내드렸었다. 연명치료 거부 약정서에 서명하면서 나와 동생들은 이미 아빠 없는 딸들이 되었다. 아빠라는 기둥 없이 홀로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시시해져 버린 중년에 접어든 나는 내 기둥뿌리가 뽑히는 체험을 했다. 마지막을 향한 그 어둡고 괴로웠던 길은 다음에 들추어보겠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아직은 좀 괴로우니까.


내 나이에 아빠는 인생 클라이맥스에서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를 잠깐 밀 수 있었던 것뿐... 아니 밀고 있다고 착각하셨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바퀴 근처 어디에 있어도 움직임을 거스르거나 주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들은 잠시나마 바퀴 굴러가는 방향을 바로 잎에서 보면서 탁 트인 시야를 즐기며 시류를 즐길 수는 있다. 수영할 때 물의 흐름을 타는 것처럼. 하지만 세게 밀던 능력자들이 한순간에 리듬을 놓쳐 밑에 깔리기도 하고 중심축이라고 자부했던 이념들은 낡아서 떨어져 나간다. 신념이나 사람이 적폐가 되기도 하고 재조명되기도 하면서 역사는 굴러간다.


세상은 변하고 아빠는 가셨다. 나도 변한 것 같다. 유전자는 그대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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