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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Oct 01. 2019

독일 와인 여행 5

브라우네베르크

4일 차

피슈포르트의 시골 밥상


시차의 영향이 남아있어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에 비가 조금 왔었는지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먼지 한 점 없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초목이 말끔히 세수하고 우리한테 인사한다고 믿고 신나게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깨끗하게 다림질한 식탁보를 펼치고 따뜻한 빵 바구니를 갖다 주셨다. 식탁보 다림질이 얼마나 귀찮은지 아는 사람들로서 잠시 감동에 젖어 있다가 뷔페 테이블로 가보았다. 정성껏 차린 조식 메뉴에는 텃밭에서 따거나 손수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아주머니가 만든 잼들, 치즈, 아저씨가 만든 소시지... 이 분들은 슈퍼맨 슈퍼우먼 커플이신가!


따뜻한 빵, 따뜻한 계란
홈메이드 치즈와 텃밭에서 딴 채소
주인 아주머니갸 직접 만든 잼들, 정원에서 따온 블루베리와 블랙베리, 토마토
강가에서 즐기는 시골 밥상


소시지는 주인아저씨 작품, 돌은 포도밭 출신



돌멩이가 든 물병이 신기해서 아주머니에게 용도를 물어보니 포도밭에서 가져온 돌이고 그 물이 숙취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숙취는 없었지만 자수정 물을 두 잔이나 들이켰다. 신나게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조식까지 포함된 숙박비가 너무 싸서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마르쿠스 몰리터 와이너리Weingut Markus Molitor, 벨렌Wehlen

피슈포르트에서 20분 떨어진 브라네베르크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서 짐을 내려놓았다. 겔렌-코르넬리우스라는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숙소였지만 일단 다른 와이너리 구경을 하러 나섰다. 마르쿠스 몰리터 와이너리는 와인도 궁금했지만 아름답고 현대적인 건물을 보고 싶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와이너리를 현재의 주인이자 와인메이커인 마르쿠스 몰리터가 1984년에 인수해서 2009-2012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건축 관련 상을 받기도 한 건물이다.


현대적이면서도 단아한 외관과 우아하고 절제된 실내


시음했던 10여 종류 중에서
도착했을 때에는 전문가로 보이는 그룹과 엘프 외모의 젊은이들 한 팀이 시음 중이었지만 나중에는 우리만 남았다.


마르쿠스 몰리터의 와인은 로버트 파커에게 100점을 받은 이후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했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된다. 와인은 여러 스타일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모젤 와인 치고는 과일향이 좀 강하고 화려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균형 잡히고 미네랄이 단단한, 간이 딱 맞는 느낌이랄까?






프리츠 하그 와이너리Weingut Fritz Haag, 브라우네베르크Brauneberg


구글맵은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라고 했지만 차로 갔다. 역시 좀 늦었지만, 매우 자세하고 친절한 안내와 설명, 시음을 경험했다. 프리츠 하그의 우아하고 산뜻한 와인은 우리나라에 수입된다.


우리를 기다리던 프리츠 하그 와이너리의 잔들


브라우네베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밭 Juffer



라벨을 보면 우선 와이너리 명칭인 프리츠 하그, 수확년도, 그 아래에 Brauneberger Juffer라고 표기되어 있다. Brauneberg + er = '브라우네베르크에 있는' 이라는 뜻이며 Juffer, 그리고 Juffer Sonnenuhr은 포도밭 이름이다. 그 아래 Riesling은 품종, Auslese는 늦게 수확한 포도, 즉, 더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한편 상단 오른쪽 와인의 Trocken 은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이라는 뜻이다. 독일 와인 라벨은 이런 식으로 읽으면 된다.


옌스 슈패터Jens Später씨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 포도밭 주인이 미혼이 딸 셋에게 포도밭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딸 셋은 결혼도 안 하고 밭을 가꾸었고, 맛있는 와인이 나는 그 밭은 유퍼Juffer, 즉 처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Sonnenuhr조넨누어는 해시계라는 뜻인데, 움푹 파여 햇빛을 모으는 장소에 해시계를 설치했던 곳이다. 과거에는 식사 시간을 알려주던 조넨누어는 매우 흔한 포도밭 이름이다. 한편 브라우네베르크는 갈색 언덕이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모젤 지방은 위도가 높고 워낙 추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포도가 완전히 발효되기 전에 추위가 닥쳐 포도의 당분이 모두 발효되지 않고 당분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아우스레제는 그래서 대체로 약간 달달했다. 그렇다고 주스나 아이스와인처럼 단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드라이 와인이 세계적으로 대세이다 보니 모젤에서도 드라이한 스타일로 많이 만든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리고 현대 양조 기술의 도입으로 자연스럽게 드라이 와인이 되기도 한다. 드라이한 와인은 트로켄이라고 표기할 때가 많다.


와인에서 살짝 단맛이 나면 보통 오프 드라이off-dry라고 하는데 나는 모젤에 가기 전까지는 단맛 나는 와인을 싫어했다. 달달이를 먹고 싶으면 초콜릿이나 캐러멜을 먹었고, 술이라고 하면 드라이해야 제맛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모젤에서 당도가 약간 남아있는 리슬링을 맛보고 나서 나의 편견, 아니 편음주가 점판암 조각처럼 부서졌다. 이가 시리도록 새콤하고 강렬한 미네랄 맛에 방점을 찍는 한 수가 잔당이었다. 또한 리슬링에서 느껴지는 살구, 레몬, 사과, 복숭아 등 과일향과도 절묘하게 잘 어울렸다. 음식 없이도 혼자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만한 완전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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