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쿨혁명 1-2
빅데이터, AI는 자본과 상품으로 라이프스타일을 통제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은 빅데이터를 선점하여 신, 사랑, 소비, 섹스에 초점을 맞춰서 엄청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유발하라리는 이러한 디지털기반 사회에 대한 경고로 자신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기술이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목표를 결정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알아갈 수 있을까?
온라인 세계가 가상현실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가 가상현실일까?
코로나 이전부터 온라인 중심의 사회를 준비해오던 ICT기반 공룡기업의 CEO들은 자신들의 학습경험을 통해 교육이 디지털기반 과학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오히려 학교를 자퇴한 사실이 자부심이었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는 그들의 말은, 기존의 지식인 상식을 단순히 학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지식화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엘런머스크 등은 모두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생산자였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교육 또한 지식생산자로서의 포지션이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학설이 얼마나 많은가? 앎과 지식은, 그리고 세상은 모두 변한다가 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제프 베조스, 마크주커버그는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리고 온라인 안에서 그들의 생각과 뜻대로 만들어지는 그들만의 제국을 새롭게 창조하고 조직화 했다. 바로 온라인 플랫폼 시스템이다.
온라인 세계가 가상현실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가 가상현실일까? 온라인 솔루션 자체가 코로나 시대 세계의 운영시스템이다. 시스템을 만든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려면 새로운 교육이 있어야한다. 저자의 2019년 저서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아이의 미래가 되다』 62페이지의 다음과 글은 어쩌면 코로나스쿨혁명은 이미 2007년 스마트폰 발표 이후 준비되어 온 프로젝트였다는 시사점을 확인하게 한다.
에듀테크 벤처 투자가 2008년 이후 2018년엔 년 1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교육 혁신이 국가기관이 아닌 개인 기업 활동에 의해 아래서부터 흔들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유튜브 등에서 무료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 기획자들은 더 많은 구독자를 얻어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더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온라인 사교육의 질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그 외 에듀테크 기업들이 내놓은 기계학습들은 유발하라리가 말한 기계학습의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역설 같겠지만, 기계학습의 큰 위험성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량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다는 것. 그로 인해 학습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엄마의 라이프스타일이 아이의 미래가 되는 이유는 늘 반복적인 삶의 패턴을 함께 하기에 닮아가는 것인 것처럼 학생중심기술에 의한 기계학습이라 할지라도 기계적인 학습패턴은 기계를 닮아간다. 기계적이다. 물론 그조차도 알고리즘 설계에 의해 평균 수준 이상은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로켓배송, 새벽배송의 환상을 경계해야하는 이유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인간의 자유까지 통제하는 최고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자유의 통제를 너무 거대 담론적으로 접근하지는 말자! 지금 당장 내가 입고 싶은 옷이 Dior 드레스라고 해도, 어젯밤 샤넬을 검색했다면 내 눈앞엔 계속 샤넬 드레스만 펼쳐지게 되고 자주 보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본래 입고 싶었던 Dior 드레스를 잊고 샤넬 드레스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자체가 인간의 심리를 따라간다. 이 또한 자유의 통제다. 세뇌다. 앞서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의 주장처럼 만약 모든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데이터 소유를 규제해야함은 물론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우리 자신 스스로가 먼저 깨어 있어야한다. 명상과 인문학과 수행적 관점의 교육으로의 혁신이 절실한 이유 중 하나다.
만약 코로나 이후에도 기존의 교육과정과 방법 및 목표 아래 교육이 진행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데이터 기반 플랫폼 회사인 4대기업과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노예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구조화 해놓은 상품과 자본의 매트릭스에서 ‘안전함의 가상현실’을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교육 아닌 사육이다. 그리고 사육의 안전함은 착각이다.
“이들은 앱과 상품과 기업을 평가할 때도 매출액보다는 그것을 통해 모을 수 있는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는다. 데이터야말로 미래에 생활을 통제하고 형성하는데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결정, 심지어 의료 보장과 육체적 생존을 위한 것조차 모두 네트워크에 의존한 다음에는 어쩔 수가 없다. 21세기에는 데이터가 토지와 기계를 누르고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부상할 것이고, 정치는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투쟁이 될 것이다. 너무 많은 데이터가 정부나 소수 기업에 의해 통제되면, 그 결과는 디지털 독재가 될 것이다. ” (유발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2018,480, 487~488쪽)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 컬리의 새벽배송과 아마존 직구를 경계해야할 시사점은 어쩌면 빅데이터의 수집이 아니라, 기계문명의 편이에 따라오는 인간의 무기력화와 고립일지도 모른다. 그와 더불어 물건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들의 삶이야말로 족쇄 찬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추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편리를 위해 타자의 고통에는 둔감한 사람들, 남의 불행위에 나의 행복을 쌓는 무심함은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편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옳은 것도 아니다.
꼭 남해에서 새벽에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아침에 배달해서 먹어야만 건강해질까? 밤잠과 새벽잠을 못자는 택배원들의 잠자는 삶의 권리는? 그리고 부모가 없는 밤을 두려움에 떨며 새우잠을 자는 아이들의 결핍된 마음은? 늘 일음일양, 한 곳이 밝으면 한 곳이 어두움을 눈치 채고 균형을 잡아야한다. 우린 꽝꽝 언 동태찌개만으로도 건강하고 씩씩한 삶을 유지해왔다. 그조차도 호사스러운 사건이었다. 얼리지 않은 영양소 풍부한 생선이 아니라도, 우리 삶은 그동안 충분히 싱싱하고 풍만했다.
코로나 이후 진짜 무서운 적은 코로나의 새로운 유행에 따른 펜데믹보다 사람들이 통제와 격리에 익숙해지면서 인간 고유의 특징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고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 자유를 잃는 것이다. 집콕의 홈족과 미시적 행복론에 입각한 혼족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편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옳은 것도 아니다. 택배 기사님이 배달해주는 1.5리터 생수 한 팩으로 나는 살찌고 그는 말라간다, 나에게는 한 팩이지만 택배 기사님은 그 무거운 물을 수십 개를 날라야한다. 운동이 아닌 가혹한 노동이다. 내가 편한 것이 꼭 좋고 옳은 일만은 아니다. 가끔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도 가치롭다. 나의 불편함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수 정도는 동네에서 우리 스스로 사다 먹자.
인간은 고독사로 멸종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키에르 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 고독이다. 어쩌면 혼족과 홈족의 경계 어디쯤에서 인간은 고독사로 멸종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코로나로 우리는 그 위험의 경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통제와 격리와 고립이 무엇일지에 대해 우린 이미 그 징후를 눈여겨보고 경계해야만 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단순히 입시에 치중한 교육이 문제가 될 수 없음은 이것만으로도 명확히 증명된다.
코로나 이전 시대의 교육의 문제를 문제 삼아 그것을 해결하는 차원에서의 교육을 코로나 시대에 논한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코로나 이후의 사회에 대해 다각적으로 전망하고 직시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시된 새로운 시대의 니즈에 맞는 파격적인 변혁의 교육담론이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시하려면 눈을 떠야하고 눈을 뜨려면 새로운 직관적 앎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 스쿨 혁명 이후의 대안이 절실한 것이다.
교육이란 농사와 같은 것이다.
완전히 새로 갈아엎고 다시 시작해야한다. 교육이란 농사와 같은 것이다. 썩은 종자는 아무리 씨를 뿌려 물을 줘도 절대 싹을 틔울 수 없다. 기존의 교육과 신념체계 자체가 바로 이미 썩은 씨앗이다. 특히 미시적 자기 선택에 의한 비혼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의 개체수가 더 줄어드는 상황이 가속화되면 인류종족 보존 자체의 위험이 닥친다.
세계적인 플랫폼 기반 거대 기업들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대상화하기에 탈상품화와 데이터 규제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깨어 있는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상 속 라이프스타일교육이 미래교육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