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단칼에 구시대와 단절하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 조치는 자연스럽게 사회시스템이 되어버렸다. 불과 두 달 만에 변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고립된 채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영위하는 것이 벌써 익숙하다. 아니 불편함이 없다. 축구경기장과 음악공연장, 시장과 술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어울리던 교류중심의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한순간에 집콕의 ‘격리’와 ‘고립’의 언컨텍트(uncontact) 세계로 접어들고 만 것이다.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타자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도덕성은 물론 ‘코로나의 전염성’ 이란 단순한 설정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단칼에 관계중심의 지난 세기와 단절했다. 피한방울 없이 이룩한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혁명적인 단절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던 벤담은 군대, 병원, 공장, 학교, 감옥 등에 감시자의 시선에 관계없이 효율적으로 감시효과가 발생하는 파놉티콘(pan0pticon)을 제안했다. 이를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자는 파놉티콘적 사회구조를 통해 권력을 군중에게 행사한다고 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도 <1984>에서 개인의 정보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될 현대 정보사회의 파놉티콘적 위험 가능성을 경고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어쩌면 아마존의 최대 고객의 최대 수익을 위한 “고객을 위한 고객 중심 서비스” 와 닮았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하고 가장 많은 제품으로 무엇이든, 언제든, 어디서든, 수익을 위해 빠르게 날아간다. 이제 비행기도 한산해진 하늘에 아마존의 상품을 배달하는 드론이 하늘을 나는 새보다 더 많아질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사태로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코로나 이후 일반 상점들은 문을 닫고 폐점하는 일이 속출한 반면 AI와 빅데이터 기반 기업들은 우리사회의 시스템과 생활양식을 기업의 성장과 비젼에 맞춰 재조정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네플릭스, 구글)은 코로나의 불황 속에서도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했음은 물론 주가도 매번 최고를 갱신했다.
온라인 플랫폼이 의식주를 책임진다.
구석기 시대에는 채집과 수렵 없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몰상식이었고, 신석기 이후에는 농업과 목축을 빼고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것이야말로 몰상식이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 기계문명 기반 산업구조 하에서는 공산품이 가득한 마켓에서 쇼핑을 놀이삼아 소비를 극대화하는 상품자본주의가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아마존과 같은 온디맨드(on demand) 비즈니스 업체들이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봇과 드론을 이용한 유통 혁명을 이루면서 마켓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온라인 플랫폼이 인류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최대 시장이 되었다.
식료품은 아마존 고(Amazon Go)에서 사고, 생필품과 옷은 아마존 닷컴에서 구입하면 모든 의식주가 단번에 해결된다. 어쩌면 아마존이 아니면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역설도 가능한 것이다. 두렵고 무섭지 않은가? 독과점의 역습?
미래 사회에서는 상품자본주의로부터 이탈하여 식량도 자급하고 생필품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 최소한의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 이상 자신만의 철학과 취향이 반영된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아마존스타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숨 막히고 재미없는 세계다. 인간 개체의 유니크함과 각 개체의 특별함이 사라지는 세계는 한마디로 불행이다.
우리 스스로 물건과 삶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우리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인공지능의 선택을 나의 선택으로 내면화하고 있고, 더 큰 줄기로는 거대 자본 권력의 이윤추구라는 독선적 선택을 나의 선택으로 내면화하며 통제당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선한가? ‘선한 영향력’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2007년 애플의 스마트폰 발표 이후 이미 세계는 미래사회로 진입했다. 연대기도 이제 ‘서기 2020년’이 아니라 ‘스마트폰 13년’으로 다시 써야한다. 이런 현실을 먼저 인식한 것은 과학기술혁신을 통한 생활양식의 구조적 변화로 이익을 창출하는 ICT 기업들이었다.
빌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제프베조스, 엘런머스크 등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시스템인 플랫폼기반 운영시스템의 확장에 주력해왔다. 아마존 매출의 35%가 아마존 AI가 추천하는 오늘의 추천 상품에서 일어난 매출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생각과 필요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양식을 구축해가는 것이 아니라 AI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불과 2달 만에 완전히 온라인 중심의 미래사회 시스템으로 진입함은 물론 구조화되었다. 사람들은 단 두 가지 이슈에 미친다. 사랑과 죽음이다. 사랑은 곧 탄생이고 삶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불행인 죽음이 있다. 만약 코로나로 병과 죽음이라는 공포의 코드를 작동시키지 않았다면, 이토록 급격하게 AI와 빅데이터 기반 플랫폼사회로 진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교적 변화가 빠르다는 미국의 경우도 교육정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50년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불과 2달 만에 학교 공교육이 사교육을 대변하던 온라인 교육의 패러다임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이제 이전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세상이 위험과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새로운 시스템이 다시 만들어진다. 이미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일상생활과 소비, 사회적 관계망의 구축이라는 미래사회 패러다임은 코로나 집콕으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임을 깨달았다. 이젠 미래가 아닌 현실을 말해야할 때이다.
세상은 이미 미래를 달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도 떨지 못하는 아이들의 등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우리가 아이를 맡기고 믿고 의지하던 교육의 장으로서 아직도 유효한가 ?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온라인 개학을 하고 온라인 학습을 한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적어도 학교를 가지 않고도 사교육의 장이라고만 생각하던 온라인교육이 공교육의 범주로 다시 구조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정의 부모들 중심으로도 교육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줬다는 면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학습지 숙제를 하고 검사를 받는 방식이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이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교감과 파동을 통해 세포단위에서부터 존재를 변형시키면서 이루어지는 영적 변화를 말한다. 존재가 서로 만나 교류하며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야 비로소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교육엔 항상 사랑이 기본 베이스가 될 때 온전한 기능을 한다.
코로나로 이미 스쿨혁명은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완수되었다. 이제 우리가 논의해야할 것은 지난 세기의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점이 아닌 21세기 디지털 기반 사회시스템과 교육 시스템 안에서 어떤 교육적 대안이 우리 아이들을 더욱 온전히 존중받는 존재로 만들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사회를 유지하며 평화와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담보 받는 교육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다.
AI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전부터 세계는 종교분쟁과 핵문제, 식량문제와 환경문제 등 해결과제를 뜨거운 감자로 쥐고 역사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핵과 종교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쩌면 상품자본주의 기반 착취구조일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는 상품을 소비하는 일개 한 마리 개미일 뿐인 것이다. 근대교육의 목표도 리더가 아닌 세금을 지불하는 피지배 시민양성에 있었다. 우리의 삶이 디지털과 빅데이터 기반 공룡 기업들의 먹이 사슬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상품에 의해 종속당하는 노예적 삶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교육이란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나가는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켜 가는 주인 된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 알아야 백전백승이다. 코로나 시대에 영성과 종교적 삶이 강조되는 이유인 동시에 인문학과 명상 등이 학교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매칭 되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선택’에 의한 유니크한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디자인해가는 배움
대학입학이 의미가 없어진 코로나 시대에도 학부모들은 일류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아이를 대신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교육한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은 사육과 다르다. 단순히 국영수사과를 온라인상에서 강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내 직업을 만들어서 1인 기업으로 혼자 일하는데, 평가가 왜 필요한가?. 평가가 사라지는 교육과정이라면, 평가를 목표로 구조화된 교육 시스템의 전면 폐기와 새로운 교육시스템의 구조화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교양과 삶의 철학과 기술을 배워나가도록 전면적인 수정은 필수다. 코로나 스쿨혁명의 이유다.
이제 아이들에게 필기구 아닌 농기구를 손에 쥐게 하고 탈상품주의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르쳐야한다. 지식 또한 그들이 새롭게 생산하여 새로운 백과사전을 써 가야한다. 모든 상식이 뒤집힌 시대임에 깨어있자. 그를 통해 독선적인 시스템에 통제당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는 인간됨의 자유함을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는 자존감으로 자신 삶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해야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의 아름다운 한 존재로 지속적으로 존립하고 진화해가는 것은 물론 당장은 우리 자녀의 생존의 문제임을 명심하자.
본서는 코로나 이후 교육의 대안을 라이프스타일 교육 관점에서 기획하고 제안한 교육기획서이다. 라이프스타일 교육이란 ‘자기선택’에 의한 유니크한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디자인해가는 배움을 말한다.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상황에 적절하게 변화하며 자신만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됨의 라이프스타일 교육은 코로나스쿨혁명의 핵심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