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을 돌리는 아침 3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10-12

by 김은형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10. (2018. 8. 21.화)

바쁜 새벽이었다. 힘겨운 아침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과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청 앞 작은 공원 앞에 차를 세우고

오늘 아침도 금강권을 돌린다.

지나가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의 눈길이 내게 잠시 멈춘다.

나는 문득 지금 금강권 돌리기를 정확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불안이 밀려든다.

금강권을 돌리는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최코치님의 말대로 동영상을 먼저 자세히 보고 다시 금강권 돌리기를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일 거다.

우리는 대체로 판옵티콘의 죄수들처럼 가려진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하면서 타자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이 검열에서는 누구도 자유롭거나 행복할 수 없다. 내가 나를 기준으로 삶의 기준을 잡지 않는다면, 타자의 눈과 입과 귀에 기준을 잡는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금방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평가자가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은 늘 자신을 극점으로 몰아간다. 인정받기 위해서. 타자의 표정위에 우리 삶의 뿌리를 박고 행과 불행의 그네를 탄다. 평가자가 전문가가 아니라할지라도, 단순히 나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깨에 긴장감이 돌고 편하지가 않고 운동에 집중할 수 없다. 아니, 더 멋지거나 예쁘게 보이기 위해 긴장한 불편한 마음상태가 된다. 모두 눈꼽도 떼지 않은 눈으로 운동을 나온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스쳐가는 그들을 흘깃 거리고 보이지 않는 관찰자들까지도 신경을 써가며 금강권을 돌린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나의 태도자체가 스스로도 냉소가 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의 여름 공기는 이종호흡을 하기엔 더없이 좋다. 집안에서 금강권을 돌리고 이종호흡을 하는 것과 야외에서 금강권을 돌리고 이종호흡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무슨 일이든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감수해야한다. 어쩌면 이 자체가 삶의 이치일까? 금강권 돌리기 이제 겨우 10일째, 신체적인 변화보다는 머릿속에 생각이 더 복잡하게 많이 들어차는 것 같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11. (2018. 8. 22.수)

늦잠을 잔 덕분에 950개의 금강권을 틈 날 때마다 학교에서 돌린다.

댄서스 넥스트 국제 무용제가 막을 내렸고 나는 죽을 만큼 피곤하다.

가을이 오려면 아주 아주 먼 한여름의 신록이 도솔산 전봇대 너머 가득하다.

난 마치 매듭 풀린 헬륨풍선처럼 이리 저리 튕겨지며 부서질 듯 가볍게 부유한다.

걷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을 부유하며 바스러지는 느낌이랄까?

카이스트에서 진행하는 명상 강좌를 찾아간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연주와 명상으로 피로로 고갈된 내 영혼의 창고를 채울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 잠시 차안에서 쉰다.

아 ~~~~

이런!

영원한 현재!

지금!

바로 여기!

나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12. (2018. 8. 23.목)

아라 말리키안 (Ara Malikian)의 Summer Vivald를 들으며 금강권을 돌린다.

새벽에 비발디를 듣는다는 것은

마치 새벽이슬 가득한 숲을 요정처럼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맨발로 뛰는 기분이랄까?

지겨워지는 단순한 반복적인 신체 활동에 음악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무대를 뛰며 뒹굴며 연주자들과 웃음으로 호흡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라 말리키안의 연주는 한자리에서 고정된 채로 금강권을 돌리는 내게 품격 있는 바로크적 몸놀림에 대한 상상력과 움직임을 준다. 나도 아라 말리키안처럼 무대를 구르며 뛰며 웃으며 땀흘리며 그들의 푸른 무대 한켠에 서서 금강권을 돌리는 상상으로 약간 재미있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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