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을 돌리는 아침 27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2 - 94

by 김은형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2. 떫은 삶의 미숙함 (2018. 11. 11. 일)

새벽 기도 도반들과 콩나물 해장국으로 빼빼로 데이를 자축하고

한적한 휴일 거리의 안개를 지나,

또는 미세먼지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빨강 창틀과 도솔산 끝자락 숲의 노랑 단풍만으로 우리 집 다이닝룸은 호사스러움의 극치다.

나는 연노랑색 기모노를 로브처럼 헐렁하게 어깨를 넘겨 걸쳐 입고

나비부인이 아닌 자유부인이 되어 호사스럽고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신다.

혼자만의 고요와 적요가 숲을 간간히 뒤흔드는 새소리와 함께 내 안의 자유를 춤추게 한다.

오늘 아침 나의 금강권 돌리기는 새처럼 춤추는 자유와 함께한다.





잘 익은 감만 골라 쪼아 먹는 새들의 지혜가 놀랍다.

뭐든 잘 익은 것들은 끌림이 있다.


오직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자기 자신을 확신한다.


오직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떫은맛이 난다. 날아든 새들도 바로 떠난다.




지나친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멍하니 금강권을 돌리는 이 순간, 고요히 기모노 자락의 펼침만으로 나비부인이 되는 순간의 고요가, 앎도 없고 지나침도 없고 분주함도 없이 흐르는 한 시공의 먹먹함이

천천히 천천히 떫은 삶의 미숙함을 농익힌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3.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눈 내리는 밤. (2018. 11. 12. 월)

눈 내리는 밤이었다.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의 모습으로 호텔 사우나에 들어가셨던 창백한 아버지는

빛나는 청년이 되어 활짝 웃는 얼굴로 기운차게 나오셨고

소주가 드시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수술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소주를 반병 드신 아버지는 엄마와 우리를 위해 동무생각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마음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하지만 기운이 떨어지신 듯 곧 침대에 쓰러져 누워 오 쏠 레 미오와 베사메무쵸를 연이어 부르시다가 곤하게 잠이 드셨다. 그건 하나의 자장가, 아버지의 생과 삶에 대한 위무이며 스스로를 쓰다듬는 다독임이자 자장가였다. 눈 내리던 밤 가슴을 울리던 아버지의 삶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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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카와 히로시게의 간바라의 눈 내리는 밤이 아니라

경주 힐튼 호텔의 눈 내리던 마지막 밤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다가 10개월 뒤인 11월 19일 날 타계하셨지만

마지막으로 잡았던 아버지 손의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온다.


아버지 기일 새벽에 돌리는 금강권 한 번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한 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라시던 말씀과 함께

아버지는 떠나시고 우리는 남으니 다시 여섯 번의 겨울이 찾아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눈 내리는 밤 위로 눈처럼 소복이 쌓인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4. 정원과 구름과 Mark Rothko (2018. 11. 13. 화)

최양숙의 빨간 풍차(Moulin Rouge)를 들으며 금강권을 돌리는 동안

눈앞에 서서히 세 개의 천국이 열린다.

정원과 구름과 로스코 예배당.


1.정원/ 천국은 이슬람의 정원에서 차용되었다는 놀라운 앎을 준 『세계의 정원-작은 에덴 동산』

2.구름/ 운문을 수놓은 비단 조각지갑 위의 앙증맞은 구름이 도착하게 될 천국 어디쯤.

3.마크 로스코 예배당/ 묵상을 통해 삶의 에너지와 영혼의 회개를 담담하고 은은하게 천국처럼 경험하게 하는 『Mark Rothko』 작품집



삶과 죽음은 대조적이다.

그러나 조화롭다.


어젯밤 아버지 추모 곡이었던 최양숙의 빨간 풍차(Moulin Rouge)의 애잔한 감동이

금강권을 돌리는 오늘 아침은


천국을 찾아가는 앙증맞은 조각구름을 지나


60개의 오렌지나무가 있는 천국 같은 이슬람 정원을 지나


천국처럼 고요하고 은은한 로스코 예배당도 지나


파리의 물랑루즈에서 로트렉이 사랑한 라굴뤼와 쟌아브릴을 다시 춤추게 한다.



금강권을 돌리는 나도 함께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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