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2020년 11월 8일 일요일. 세계 예술 마을로 떠나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지난 수요일날 친구와 통영에 여행을 갔다가 <남해의 봄날>책방에서 친구가 선물한 책을 읽었다.
어쩌면 30대의 내가 꿈꾸던 삶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듯 펼치는 장마다 예술과 축제와 사람과 관계와 행복과 즐거움과 모험이 가득하다.
20년 늦은걸까? 아니면 20년 빨리 다시 시작하는 걸까?
설흔 두 살에 ‘지역축제 공연 프로그램 개발 연구’를 주제로 예술경영 석사 졸업논문을 쓰면서 ‘세계의 축제를 찾아서 세계여행을 다니겠다’는 꿈을 품었었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기계적으로 직장을 다니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월급쟁이로 가족들 생활비를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의 범위를 더 넓히며 꿈을 하나하나 접어 나갔던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결국 꿈꾸던 일들을 하나하나 접어가는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 새벽, 창창하게 젊은 30대 천우연 작가의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를 읽으면서 왜 나는 저 나이에 같은 꿈을 꾸면서도 떠나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회한이랄까?
둘러댈 핑계들은 많다.
아이가 어려서 학교를 다녀야했고, 남편은 공부를 했고, 친정과 시댁을 두루 보살펴야했고, 좋은 선생이어야했고, 봉사해야했고, 아팠고, 가진게 없었고, 가족모두 여행을 간다는 것은 너무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혼자 떠난다는 것은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할 일이 아니고.. 등등등.
그렇다! 모두 핑계일 뿐이었다.
나는 사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 보다는 좀 사정이 나아졌나?
용기 내어 걸어가고 있나?
내 삶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나의 본성대로 나의 니즈대로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나가고 있나?
이제 용기백배하여 핑계대지 않고 거인으로 살아가고 있나?
몸집만 거대하게 키우고 진짜 내가 들어갈 삶의 문은 작고 좁은 그대로는 아닌가?
모험을 즐긴다는 것도 하나의 장식에 불과하지 않나?
난 이런 사람이야! 라고 자랑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것과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 것은 다르다. 나약하게 인정욕구에 시달리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과는 완전히 결별해야 여한이 없음을 안다. 더 깊이 깊이 더욱 , 더더더더 깊이 나 자신 안에 들어가야 하고 나의 목소리에 귀기울여하고 그 안의 나를 끄집어내어 그로 살아가야한다. 나 자신에게 먼저 한계를 정해주지 말아야한다. 한계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내가 길들여져있을 뿐이다. 타자들의 말과 생각에 길들여진 주체는 내가 아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란, 세계란 없다. 내가 그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나의 현실이 되지 않을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라고 회한에 싸여있을 것이 아니라 대범하게 한발짝 먼저 내 디디며 필드로 다시 전진해 나가야할 때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충분히 훌흉한 선택이었다. 지난 시간의 나를 부정하고 아쉬워한다고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 바로 이순간에 또 새로운 선택을 하고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걸으면 된다. 아쉬움과 회한에 쌓여 자신을 자책하기 보다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설레임과 용기로 오늘, 지금을 다시 살아가면 되는거다.
또 새로운 한해를 계획하고, 또 다른 모험 속으로 그냥 퐁당 빠져버리면 되는거다.
매순간 닥치고 용기를 낼 것도 없이 그냥 내 본성과 직관의 흐름대로 눈치볼 것 없이 거침없이 살아나가면 되는거다. 그렇게 다시 또 시작하면 되는거다.
좋은 책을 쓴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아침! 뜻밖의 책을 선물한 친구 양희도 고맙고 남해의 봄날 출판사도 고맙고 천우연 작가의 쌩쌩한 젊음과 도전의 기록인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책에도 감사한 새벽이다.
한계란 없다. 다만 내가 행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과감하게 행동하자!
거침없이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