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에서 만난 이탈리안

브뤼셀의 일상여행자 15. (2018.1.26.)

by 김은형


유럽연합 앞 그랜드 센트럴 카페 신호등에서 나란히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서 있던 이탈리안이 내게 말한다.


“ Where are you going? ”

“ I’m going home ”

“ Do you want to walk together?”

“ Yes ”


이렇게 말해놓고 둘이 함께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대화를 너무나 당연하게 갑자기 길거리에서 만나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신호등만 건너면 바로 내가 묵고 있는 아파트였기에 나는 더욱 웃겼다.

고작 신호등을 건너는 인도를 함께 걷는 거다.


드디어 파랑 신호등이 켜졌고, 함께 길을 건넌 후 내가 집에 다 왔다고 하자, 이탈리안은 정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내가

“ 이게 리얼 월드라 가능한 일이야” 라고 말하자

이탈리안은

“ 나는 페이스북 등 쇼셜 네트웤을 사용하지 않아. 가짜가 싫어. 리얼월드가 아니거든 ”

“ 너두 리얼 월드의 사람이구나! 영화 매트릭스 봤어?”

“ 아! 맞아! 매트릭스에서도 리얼 월드의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나하고 맥주나 한잔 하고 헤어질래? ”

“ 오케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온 친구가 집에서 기다려서 15분 정도 시간 있어. ”

“ 문제없어, 나두 이탈리안 친구가 기다려. ”


우리는 신호등 바로 앞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 카페에서 와인을 한잔씩 하고 헤어지기로 하고 내가 술을 한잔 샀다. 그는 이태리 볼로냐가 집이라고 했고, 3박4일 동안 브뤼셀 친구 집으로 여행을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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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볼로냐가 집이라고 말하자 나도 모르게 볼로냐스파게티가 생각나면서 갑자기 처음 만난 이탈리안이 친밀하게 느껴졌다. 하하하. 이래서 아마도 광고 마케팅이 중요한가보다. 이태리 볼로냐를 몰라도, 볼로냐 스파게티가 연상되며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는 지역이거나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친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15분 정도 술을 한잔 하는 동안 이탈리안은 자신은 바이크를 좋아하고 네팔 트래킹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네팔 트래킹 이야기가 나오자 나의 인도여행기가 더해지며 또 대화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경험과 친숙한 단어, 익숙한 음식에 대한 추억 공유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아주 강력한 친구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우린 우주와 존재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현재, 여기, 바로 너와 내가 공명하고 있는 이 순간이 진짜임을 술 한잔으로 공감했다.

그는 현재 이태리에서 대형버스 운전을 하고 명상을 한단다.

앞으로 또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저녁 약속이 있었던 이탈리안과 나는 둘 다 15분 뒤에 카페에서 나와 악수하고 바이를 했다.

신호등부터 카페에서 술 마시고 헤어지기 까지 17분 정도의 만남.

그래도 가상현실이 아닌 리얼월드의 삶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아주 재미있는 만남이었다.


10분 동안 단숨에 몰트위스키 두 잔과 와인 한잔을 털어 넣고

세상을 향해 활짝 가슴을 활짝 연 상태로

우린 꽤 따뜻하고 깊은 포옹으로 서로에게 행운을 빌면서 헤어졌다.

아주 재미난 반전이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단편 소설로 ....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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