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시간은 더 깊게 멀리 흐른다.

브뤼셀의 일상여행자 20. (2018.1.27.)

by 김은형

땅바닥만 바라보며 혼자 걷는 동양인은, 서양의 거리에선 눈에 확 들어오는 존재다. 물론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나처럼 거리에서 큰소리로 웃고 춤추는 사람이겠지만....


참 우연히도 브뤼셀 아파트 레오폴드파크 신호등 앞에서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비를 맞으며 빨간 신호등을 폴짝 건너는 작은 동양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휙 하니 그냥 그렇게 스쳤는데, 다시 네덜란드 암스텔담 고흐 뮤지엄에서 두 번째 그를 또 만났고, 또 휙 하고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브뤼헤 종탑을 내려오는데 그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우연이라도 이런 우연이 있나? 마침 종탑 안은 서로 밀착될 정도로 좁은 곳이기에 바로 그의 팔을 잡고


“ Do you remember me?” 했다.


그런데 그는 아예 갓 태어난 아기처럼 무지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상황 파악도 되지 않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하하.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것도 종탑의 그 비좁은 계단에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줌마가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너하고 브뤼셀 레오폴드파크 신호등 앞에서부터 암스텔담, 브리헤까지 세 번째 만나는 거라고 말하고 커피를 한잔하자고 하니 오케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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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쯤 종탑 아래서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함께 커피를 한잔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상하이가 집인데, 현재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유학중이란다.

핀란드의 겨울이 너무 무료하고 눈뿐이라 혼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인터렉티브 테크놀로지를 전공하고 있고 우리 딸과 동갑인 23세! 이번 여행은 정말 딸아이 또래들을 가는 곳마다 많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 오베르 쉬아즈에서 만난 상하이 여대생 영일이도 23세, 엊그제 브뤼셀에 놀러온 한국 대학생들도 23세, 세 번 우연히 마주친 핀란드 교환학생도 23세. 자신을 kai라고 불러 달라 말한다.



kai의 엄마도 상하이에서 고등학교 교사란다. 상하이 여대생 영일의 아빠도 고등학교 교사라고 했는데 참 우연치곤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일치였다. kai도 영어를 나만큼이나 못하는데다 수줍어하는 학생이라 많은 이야기는 어려웠지만, 한국의 홍상수와 박찬욱 감독 영화를 무지 좋아한단다. 앞으로 핀란드 유학생활이 4개월 정도 남았는데, 중국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막아놓아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이 여의치 않다고. 상하이에 오면 연락하라며 이메일을 건넨다. 한국에 오면 우리 딸도 소개시켜 주겠다며 행복한 웃음으로 헤어졌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대견하다. 우리 젊은 시절도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지금도 늦진 않다. 지금이 바로 내가 가장 젊은 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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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모두에게 똑 같이 흐르지 않는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적 시간 개념을 믿는 사람이다.

내 삶의 시간은 더 깊게 더 멀리 더 오래 흐른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각성된 자로 각성된 시간을 살기위해 난 끊임없이 정진한다.

깨어있기 위해. 내 삶과 내 존재를 오롯이 느끼고 향유하기 위해 더욱 각성된 자로 살아가고 싶다.

참 재미있고 신기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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