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일상여행자 12화
인도의 음료 중 가장 사랑받는 음료는 아마도 짜이 다음엔 라씨일 것이다. 그런데 바라나시 가트 주변의 짜이집과 라씨집은 다른 지역 시장과 달리 외국인이 정말 많다.
특히 바라나시 가트 주변 시장 안에 있는 라씨집은 거의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수준이다.
라씨가 맛은 물론이고 스타일도 좋다보니 여행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매일 외국인으로 북적거렸다. 하긴 생각해보니 나도 외국인이었다. 그곳에선 한국인 여행객들이 만나서 서로 여행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하고 다른 나라 여행객들과도 쉽게 친구가 된다.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매일 라씨를 먹으러 갔고 갈 때마다 만난 러시아 예술가가 있었다. 우연히도 그는 만날 때마다 나와 똑같은 팔찌를 하거나 같은 색의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거나 옆에 앉아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인도에 6개월째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엔 한 달 예정으로 왔지만, 인도가 너무 좋아서 6개월째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단다. 그냥 있었겠는가? 그림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는 인도에 와서는 겐지즈강을 그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그림엔 겐지즈강이 아닌 하늘의 천체와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이게 정말 강이야? 했더니. 그가 말하길 강에 담긴 우주를 그린 거란다. 같은 강을 보았는데, 이렇게 다른 스케일로 봐도 되는 건가? 그리고 이렇게 우주적인 새로운 창조물을 내놓아도 되는 건가? 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영성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원래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했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존재가 사무실 안에 먼지 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사표를 쓰고 나왔단다. 그리곤 인도로 직행해서 겐지즈에 담긴 우주를 바라보며 새롭게 숨쉬기 시작했단다. 러시아에는 6개월 뒤에 돌아갈 예정이지만 그것도 그 때 가봐서 결정할 거라고 말했다.
암튼 인도를 떠나던 날 새벽에 가트에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이름도 모를 우주적인 전자 악기를 두드리며 겐지즈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명상에 잠겨있었다. 사람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도 있구나.. 그것도 남자가...
러시아인들이 멋진 걸까? 내가 만난 러시아인들이 멋졌던걸까? 파리 관람차안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도 엄청 멋졌었다. 하하하.
러시아의 멋진 사람이 그들 뿐인가?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트옙스키 체호프 나보코프 칸딘스키 샤갈 차이코프스키 등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본고장 아닌가? 무엇보다 춥고 긴 밤이 가득한 동토의 사색이 낳은 상상력 왕국! 코로나로 집콕하며 콘텐츠를 더 많이 쏟아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에 의한 집중과 몰입?
그가 보여준 그림 속 겐지즈강의 우주적 스케일은 아마도 그가 새벽에 명상하는 동안 빠져들었던 제 3의 우주였나보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깊은 명상에 빠져있는 그의 등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 소란스러운 나도 그의 고요 앞에 적막해졌다. 그는 이미 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겐지즈의 깊은 풍요와 고요 속에 빠져 평화롭게 유영하는 우주적 물고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