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7

by 김은형


어제는 금이 간 어금니 치료를 하러 동네 단골 치과에 갔다. 마침 간호사가 중학생인 아이 졸업식에 다니러 가서 원장님 혼자 치료를 하고 계셨다. 신경치료를 위해 어금니에 마취 주사를 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2년 전 함께 갔던 쿠바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음악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을 불렀던 80년대 그룹 ‘다섯손가락’의 리더가 사촌동생이시란다. 그뿐 아니라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용인 수지에 공연도 하고 드립 커피도 마시는 카페를 작년에 오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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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엊그제 동네책방 우분투북스에서 사 온 일본 교토 로쿠요샤 카페의 3대에 걸친 커피의 역사와 이야기를 그린 <커피일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로쿠요샤 카페 창업자인 미노루의 셋째 아들의 외동아들인 군페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자가배전 원두를 블랜딩 하며 커피 맛의 다양성이 이루어내는 하모니에 착안하여 ‘마시는 음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 그러고 보니 커피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맛의 차원들에 음양과 높낮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때에 따라 변주되면서 다양한 맛의 리듬을 만들어내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리드미컬한 음악적 파동으로 다가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감각의 다양성이 너와 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우리의 미각이란 우리의 시각과 마찬가지로 서로 참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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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데는 시각과 미각의 다름뿐이겠는가? 오감은 물론 두뇌와 신체의 화학작용은 물론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서도 우린 기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하나의 상식과 정답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른다.


이를테면 콜롬비아 커피 하면 당나귀 콘치타를 타고 신선한 100% 콜롬비아산 원두를 배달하는 커다란 모자를 쓴 후안발데스를 생각하며 커피는 역쉬 콜롬비아! 를 외치는 것과 같은 편향성이랄까? 사실 콜롬비아 커피라고 해서 모두 좋은 커피는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 조연 배우상’을 탔다는 것이 꼭 한류 열풍의 반증만은 아닌 것과도 같다고 해야 할까? 배역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끝끝내 마스터다운 집요함과 꾸준함으로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한 배우 오영수라는 사람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드디어 58년 만에 꽃을 피운 것은 아닐까? 커피 또한 같은 생두라도 마스터에 따라 그 맛의 차원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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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Colombia Supremo Vallenato)를 마신다. 어제 친구 생일 축하로 마신 콜롬비아 슈프리모와의 차이가 궁금해져서다. 발레나토는 바예나토라고도 하는데 '계곡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진 콜롬비아의 춤곡을 말하기도 한단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 커피는 시에라 네바다산 중턱에서 생산되는 콜롬비아의 3대 스페셜티의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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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커피 맛이 참 묘하다. 어제 친구들과 함께 마신 커피는 로스팅한 카페가 다르기에 맛이 달랐다고 할 수도 있고, 같은 콜롬비아 슈프리모라 하더라도 다른 품종의 커피일 수도 있으나 카페 서래수의 마스터가 로스팅한 같은 봉지의 커피를 마시는데도 마신 시점에 따라 그 맛이 각각 다르다. 무슨 이유일까?


오늘 마신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는 지난 11월 초쯤 <메타버스 스쿨혁명> 책이 발간되어 카페 서래수에 갔던 날 책 발간 축하 선물로 주셨던 원두를 커피 시음 기를 쓰려고 조금 남겨두었던 원두였는데 처음과 맛이 달랐다.


2개월쯤 지나면서 원두의 성질이 변화된 이유도 있거니와 커피 드립퍼를 칼리타와 하리오를 쓰다가 2주 전 카페 서래수 마스터가 주로 이용하시는 멜리타 드립퍼를 이용해서 커피를 내린 것도 맛의 차이에 큰 요인이 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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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마실 때는 너무 드라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아침 마신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는 그야말로 산열매의 시고 새콤새콤한 맛의 향연이다. 불과 이틀 전에 커피 원두의 감각을 과일 맛 하나로 일원화하는 감각에 반기를 든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나였던가? 하하하. 오늘은 바로 수정하고 정정한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는 시에라 네바다산 중턱 계곡 옆에서 자라는 귀엽고 작은 열매들, 딱 커피체리 과육의 새콤함 그대로의 맛이다. 물론 열매를 직접 맛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느낀다. 맛이란 본디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눈과 귀와 코와 손끝의 촉감까지 합해진 종합적인 정보가 하나의 맛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느끼고 상상하는 대로 그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래서 나는 카페 서래수의 커피를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일가>에서 로쿠요샤의 3대 군페이가 말한 것처럼 카페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가 아니라 집과 카페를 넘어서 좋아하는 장소에 모여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마스터가 드립 한 커피를 마시며 더욱 ‘맛있어지는’ 커피를 경험하는 곳이란 말은 틀림없는 말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커피를 마시고도 이렇듯 다른 감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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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삶이 변한다는 것이 진리라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같은 원두라도 커피맛이 달라진다는 것 또한 진리 아닐까? 어쩌면 커피 시음 기를 쓰는 자체가 모호한 짓은 아닐까? 하지만 단일한 어떤 감각을 찾기 위해 커피 시음 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감각하고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서래수 커피라는 매체를 통해 나 자신을 읽고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오늘은 나도 콜롬비아 슈프리모 발레나토 커피처럼 맑고 청량한 계곡 소리와 바람에 맞춰 발레나토 춤을 추는 작고 귀여운 체리열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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