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8
뜻밖에 눈이 내리는 아침,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려던 계획을 급 변경한다.
오늘 아침 눈처럼 뜻밖에 도착했던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내추럴 (Panama Esmeralda Geisha Natural). 카페 서래수 단골손님 중 한 분인 C 선생님이 “최상의 커피 맛을 느껴보세요.”라는 톡과 함께 뜻밖에 <메타버스 스쿨 혁명> 원고 마무리 응원 선물로 보내주신 커피였다.
뜻밖에 커피가 도착했던 10월 19일쯤,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상태였다. <메타버스 스쿨 혁명> 원고 퇴고가 6회 차 당도했고, 6개월째 혼이 나간 눈빛과 의식으로 지루하고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하던 차였다. 책이 나온 뒤 기특하게도 베스트셀러로 올라서고, 한 달 만에 1쇄가 다 팔려 2쇄가 나오며 전문작가로 데뷔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150만 원의 돈이 입금된 통장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2019년 북코칭으로 시작한 첫 책의 실패로 3000만 원 빚을 졌고, 2020년엔 열등감에 시달리며 미친 듯이 브런치 북 네다섯 개를 발행했으며, 2021년 작년엔 퇴직한 지 3년이 다되도록 한 일이 뭐가 있냐는 어이없는 비난까지 받으면서 갱년기의 모진 호르몬과 싸우며 <메타버스 스쿨 혁명>을 쓰고 있던 차였다. 뜻밖의 커피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뜻밖의 위로와 치유란 그렇듯 뜻밖에 불쑥 우리 삶의 한 복판으로 스며든다.
아마도 20년 전쯤 겨울이었나? 오늘처럼 뜻밖에 아침부터 큰 눈이 내렸고, 남편과 싸우고 학교에 출근해서 우울해하는 내게 선배교사가 칼국수를 사겠다고 했다. 시야가 온통 하얗게 가려질 정도의 눈 속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앞으로 뛰어들면서 눈이 멎는가 싶더니
“ 이 우산 쓰고 가요! 나는 다 왔어요!”
하면서 자신이 쓰고 온 우산을 내 손에 쥐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것이었다.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정도의 급작스러움이었음은 물론, 천사가 60대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내게 와서 삶의 모진 눈보라로부터 날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들어왔다.
그때부터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고 따뜻해지며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우연이 내겐 마치 천사의 다독거림처럼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따듯함이었던 것이다.
2021년 10월 19일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간단한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시음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최고의 커피라는 말이 맞다. 정말 신선하고 맛있다. 과일맛이 난다는 말이 맞다. 시지도 달지도 않은 딱 그 맛! 그 정도! 그 느낌! 그 커피! ”
커피 시음기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왔던 때였던지라 50g 정도를 샘플로 남겨놓았다가 거의 세 달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 커피를 내렸다. 로스팅 한지 시간이 꽤 지난지라 처음 마신 그 느낌이 살아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20여 년 전 부산 커피하우스와 10여 년 전 진주 플라워 카페에서 마신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의 감회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그땐 커피 값을 알았지 커피 맛을 몰랐다. 비싸고 특별하다니 한번 마셔보자는 허세였다. 어쨌거나 오늘의 커피는 내려졌다. 약간 걱정스럽게?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나는 뜻밖에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 최고의 커피라는 말이 맞다. 정말 신선하고 맛있다. 과일 맛이 난다는 말이 맞다. 시지도 달지도 않은 딱 그 맛! 그 정도! 그 느낌! 그 커피! ”
뜻밖에 내린 눈과 뜻밖에 변치 않은 커피 맛에 뜻밖의 추억까지 소환해낸 오늘의 내 삶이 참 감사하다.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내겐 이처럼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수를 마시는 것이다.
“ 최고의 삶이라는 말이 맞다. 정말 신선하고 멋지다. 과일 맛이 난다는 말이 맞다. 시지도 달지도 않은 딱 그 맛! 그 정도! 그 느낌! 그런 멋진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