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예멘 모카 하라즈 스페셜티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0

by 김은형



아침 8시에 커피를 마시고 시음 기를 쓴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오늘 아침은 지킬 수가 없었다. 어제 오후 늦게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으며 너무 긴장했더니 온몸이 경직되어 치료를 마치고도 한 참을 긴장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자동차 시동을 켜고 차 안에 잠시 멍하니 앉았는데 무지개 설탕 사장님 전화가 왔다.


“선생님! 달사장님이 선생님 드시고 싶은 것 뭐든 만들어서 배달해드리래요. 생강라떼 한잔하고 따끈한 치아바타에 버터 치킨 카레 찍어 드실래요?


당장 뻣뻣하게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따뜻한 공간과 따뜻한 차와 따뜻한 음식 이상의 것이 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푸드 스튜디오 무지개 설탕과 카페 하트 고잉은 우리 동네 마실 단골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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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서래수가 그렇듯 언제든 반겨주는 주인장들이 있고, 설령 무일푼으로 간다 한들 목은 축이고 돌아올 수 있는 신뢰와 사랑이 오가는 곳이다. 단 한 잔의 물을 대접받아도 감로수로 목을 축인 느낌이랄까?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의 파동이 무엇을 먹고 마셔도 삶의 치유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따뜻하고 달달한 생강 라떼를 마시고 오븐에서 금방 꺼낸 바삭한 빵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사후 경직된 짐승의 몸처럼 딱딱하고 뻣뻣했다. 길고 깊은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영하의 날씨에 108배 새벽기도가 참기 힘든 긴 고행처럼 느껴졌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단숨에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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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에서 깨자 목숨을 지키기 위해 1000일 동안 밤을 지새우며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늦잠에서 깨어난 ⌜아라비안나이트⌟의 왕비 셰에라자드(샤라쟈드)처럼 목이 말랐다. 마침 맛이 몹시 궁금했던 예멘 모카 하라즈(Yemen Mokha Haraz Specialty) 원두를 내렸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매캐하게 꽉 채워오는 강렬한 커피 향과 맛에 또다시 경직되며 삶에 유연하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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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커피는 아라비아가 커피의 본고장임을 유감없이 말해주는 커피다. 아라비아에서 향료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로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감동해서 바친 향료 중 하나가 커피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슬람인은 알라의 가르침대로 카펫에 둘러앉아 차와 커피를 나눠 마시는 특별한 예법을 통해 삶의 품격을 향상해 나간다.


그러나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한 맛의 자극은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코미디언 콜뤼슈(Coluche)의 포스터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응고된 얼굴“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나를 응고되어 경직된 또 다른 콜뤼슈로 만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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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꺼내 바로 입에 넣고 커피를 컵에서 반절을 덜어낸 뒤 다시 뜨거운 물을 채우고 나니 비로소 음미할 수 있는 삶의 농도가 된다. 아마도 시바 여왕에게 예멘 커피를 선물 받았던 솔로몬도 드립 커피에 물을 더 부어서 마시는 지혜를 발휘했거나 초콜릿을 입에 물지 않았을까? 하지만 진하고 매캐한 원두의 향과 달리 원두에서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듯 경쾌하고 신선한 쓴맛은 일품이다.


우리는 대체로 응고되고 경직된 감정을 쓰디쓴 커피 잔에 그득 채우고 살아간다. 스트레스받아 마시고, 피곤해서 마신다. 사실 경직된 얼굴이 자신 삶의 길이 된다는 것은, 관상 따라간다는 것은 이미 데이터의 과학이다. 일본의 유명 관상학자 미즈노 남부쿠가⌜절제의 성공학⌟에서 적게 먹고 비워내고 덜어내라고 한 말의 이치 또한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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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고 비워내며 넘치지 않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 지나치게 쓰고 진하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의 지혜는 곧 경쾌하고 즐거운 삶의 태도와 조화로운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와 짜증의 근원에는 넘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넘치는 욕망은 곧 채울 수 없는 깨진 항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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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서래수의 예멘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오늘 또 커피 한잔에 압축된 인류 문명의 한 조각의 지혜를 다시 배운다.

덜어내고 비워내고 여유 있는 태도로 함께 둘러앉아 커피 한잔 나눠 마시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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